안팎 넘나들고 평면·공간 가로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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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니 서, ‘Within Me’, 장판지 위에 만년필로 드로잉, 190×45cm(각), 2020
격세지감이다. 우리나라 국민이 해외여행을 자유롭게 갈 수 있게 된 해는 1989년. 불과 33년 전이다. 그전까지 여행을 목적으로 하는 여권은 아예 발급되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해외여행은 꿈도 꾸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요즘 텔레비전 프로그램엔 우리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외국인이 출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나라 사람이 해외여행을 좋아하는 것처럼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도 그만큼 많아졌다는 방증이다. 공부하러 우리나라 대학에 온 유학생,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나라로 이주한 외국인도 흔하다. 미술계 분위기도 사뭇 달라졌다. 최근에 해외 유명 갤러리가 앞다퉈 서울에 분점을 내고 있다. 이런 추세에 비춰볼 때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화가 지니 서도 특별히 주목되는 작가다.
▶지니 서, ‘Her Side of Me’, 2020. 드로잉 작품 ‘Within Me’를 8폭 병풍 형식으로 만들었다.
코리안-아메리칸 화가의 안과 밖 이야기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난 지니 서는 외국에서 성장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성인이 돼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다. 1998년 우리나라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국민학교 5학년 때 의사인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 갔다. 대학에선 생물학을 전공했지만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이민자로 성장한 배경과 생물학을 전공한 경험은 지금까지 작업 세계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여전히 자신을 ‘코리안-아메리칸’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에선 동양인–한국 여성으로 보이고 우리나라에선 종종 미국인으로 여겨질 때가 있기 때문이란다. 언제 어디서나 50%만 인정받는 중간 지대에 놓여 있다는 정체성에 대한 인식이 작품에 반영됐다. 안과 밖을 넘나들고 평면과 공간을 가로지르며 ‘울타리’ 이쪽저쪽을 자유롭게 오가는 콘셉트를 보여주는 작품의 탄생 배경이다.
무엇보다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조형 요소는 ‘선(線, line)’. 대학 시절 인체 해부를 하면서도 그림을 그렸고 현미경으로 세포조직을 보면서도 그림을 그렸다. 이때 경험한 세밀한 선의 표현이 추상회화로 발전한 것이다. 조선시대 망건(網巾)과 서양 여성이 사용한 코르셋 형상을 선으로 표현한 초기작에 이런 경향이 보인다. 만년필로 감각적인 선을 섬세하게 표현한 최근 드로잉 작품에도 비슷한 감성이 묻어난다.
▶지니 서, ‘Wings of Vision’, 시트지, 3.6×60~100m, 2017.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면세구역 19개 파빌리온 외벽에 설치된 작품이다.
일관된 내용, 다채로운 형식
무엇보다 지니 서 작품이 매력적인 이유는 내용은 일관되면서도 형식은 다채롭다는 점이다. 작품에 반영된 메시지는 초지일관 변함없다. 하지만 그것을 표현하고 구현하는 형식은 변화무상하다. 공간과 경계, 안과 밖, 울타리, 움직임 같은 추상적인 개념이 주제지만 이것을 풀어내는 방식은 다양하다.
작은 드로잉부터 캔버스 페인팅 작업, 칼로 종이를 오려내 구멍을 뚫는 작업, 또 그것을 공중에 매달아 공간 속에서 입체로 표현하기도 한다. 가죽끈, 철망, 빨대 같은 플라스틱 관(管), 구리판, 장판지 등 평범하지 않은 재료를 활용한 작품도 선보였다.
특히 건물 유리 벽면에 시트지를 붙이는 설치 작업은 벽화 작품에서 발전한 것이다. 2017년 개장한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 설치된 대형 프로젝트 ‘윙스 오브 비전(Wings of Vision)’이 대표적인 예다. 전체 길이가 무려 1.5km에 이른다. 면세 구역 내 벽면에 시트지를 붙여 만들었다. 터미널 동쪽은 푸른색, 서쪽은 오렌지색 계열로 나눠 꾸몄는데 이 색은 새벽부터 해 질 녘까지 미묘하게 변하는 하늘과 구름의 빛깔 변화를 상징한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탑승 구역으로 들어온 승객의 설렘과 호기심을 몽환적 분위기로 연출했다. 규모가 큰 설치 작업에 도전하게 된 데는 건축가 남편의 영향도 한몫했다. 국보 78호·83호 반가사유상이 상설 전시되는 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을 설계한 최욱 건축가가 남편이다.
이준희 건국대 현대미술학과 겸임교수_ 미술대학을 졸업했지만 창작에서 전향해 몇 년간 큐레이터로 일했고, 미술 전문지 기자로 입사해 편집장까지 맡아 18년 8개월 동안 근무했다. ‘저널리스트’로 불리는 것보다 여전히 아티스트에 가까운 ‘미술인’으로 불리기 원한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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