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예의 레퀴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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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는 순간 죽음은 예정돼 있다. 하여,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그러나 너무 이른 죽음은 예외일 수밖에 없다. 비통하고, 애통하다. 언제부턴가 죽음이 흔해지면서 ‘죽음의 예식’도 즉흥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형식적인 장례식이 끝나면 예외 없이 화장터로 향한다. 장례 절차도 갈수록 즉흥적이다. 제대로 된 레퀴엠이 울려 퍼지는 장례식을 찾기 힘들어졌다.
이태원 사고로 희생된 이들을 위한 분향소에서 조용히 울려퍼지는 노래가 있었다. 어떤 노래로도 위로가 되지 않지만 이 노래에는 분명 치유의 힘이 있다.
‘나의 사진 앞에서 울지 마요. 나는 그곳에 없어요/ 나는 잠들어 있지 않아요. 제발 날 위해 울지 말아요/ 나는 천 개의 바람 천 개의 바람이 되었죠/ 저 넓은 하늘 위를 자유롭게 날고 있죠.’
죽은 이의 넋을 기리는 진혼곡
세월호 당시에 추모곡으로 울려 퍼지던 팝페라 가수 임형주의 ‘천 개의 바람이 되어’가 우리 시대의 레퀴엠으로 쓰이고 있다. 안식이라는 뜻의 라틴어인 레퀴엠은 죽은 이의 넋을 기리는 진혼곡을 말한다.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대표적인 진혼곡이다. 베르디의 <레퀴엠>이나 가브리엘 포레의 <레퀴엠> 등 많은 클래식 명곡들이 있지만, 우리가 듣고 부르던 노래 중에도 품위 있는 레퀴엠으로 쓸만한 노래들이 많다.
1981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한양대 상경대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정오차가 ‘바윗돌’이라는 노래로 대상을 받았다. 광주 출신인 그는 광주일고를 졸업 후 군 복무를 마친 복학생이었다. 그러나 이 노래가 수상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금지곡이 됐다. 방송에 출연했던 정오차가 노래 제목의 의미를 묻는 말에 “광주에서 죽은 친구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만든 노래”고 “바윗돌은 친구의 묘비를 의미한다”라고 답한 것이다. 전두환 군사정부가 5·18민주화운동으로 희생된 청년 열사를 기리는 노래를 그냥 놔둘 리 없었다.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 인적 없던 이곳에/ 세상 사람들 하나둘 모여들더니/ 어느 밤 폭풍우에 휘말려/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은 바위섬과 흰 파도라네.’
광주 출신 가수 김원중이 부른 ‘바위섬’도 5·18민주화운동 때 희생된 친구들을 위해 만든 진혼곡이었다. 1980년 5월 대학생 신분으로 현장에 있었던 김원중은 안타깝게 희생된 친구들을 위해 이 노래를 만들고 불렀다.
‘사랑하고 헤어짐도 물거품이네/ 그대의 아픔 그대의 괴로움/ 내 눈 속에 부딪혀 피눈물 되네/ 기나긴 세월 당신과 함께/ 무지갯빛 사랑으로 살고 싶었네/ 아아아아 차가운 저 먼 곳으로 당신을 두고 가네/ 만나고 헤어짐도 허망하여라.’
국악을 바탕으로 한 음악극 <한네의 승천>에 나오는 ‘한네의 이별’도 품위 있는 진혼곡으로 손색이 없는 곡이다. 이 곡의 작곡가인 김영동이 국악가요로 발표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도 했다. ‘사랑가’와 ‘어디로 갈거나’ 등의 노래와 함께 지금 들어도 그 한의 정서가 고스란히 전해오는 명곡이다.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절실
오랜 시간 우리네 삶 속에 녹아든 진혼곡도 있다. 군대에 다녀온 남자들이라면 취침시간마다 들었던 트럼펫 솔로곡이 그것이다. 현충일을 비롯해 국가적인 추모 행사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국군장병을 위해 묵념을 하면서 구슬프게 연주되기도 한다.
이 트럼펫 곡에 얽힌 슬픈 실화가 있다. 1862년 미국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중대장 엘리컴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숲속에서 상처를 입고 신음 중인 남군 병사를 치료해준다. 그러나 이 병사는 끝내 숨을 거둔다. 시신을 수습하던 엘리컴은 그 병사가 자기 아들임을 알고 통곡한다. 아들은 아버지 몰래 남군에 지원했던 것이다. 아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악보가 바로 그 진혼곡이었다. 엘리컴은 아들의 장례를 치르면서 군악병에게 부탁하여 트럼펫으로 이 곡을 연주했다.
버트 랭카스터, 몽고메리 클리프트, 데보라 커 주연의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에도 이 곡이 흘러나온다. 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인간을 억압하는 폭력에 저항하는 군인들의 얘기를 그린 영화다. 극 중에서 나팔수이기도 한 육군 일병 프루윗(몽고메리 클리프트)이 희생당한 동료를 위해 진혼나팔을 분다.
이태원 사고 사망자들에 대한 다양한 방식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고 죽음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가끔은 <레퀴엠>을 들으면서 차분하게 우리네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도 필요하다.
오광수 대중문화평론가(시인)_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문화 분야에서 기자로 일했다. 저서로는 시집 <이제 와서 사랑을 말하는 건 미친 짓이야>, 에세이집 <낭만광대 전성시대> 등이 있다. 현재는 문화 현장에서 일하면서 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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