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바라보는 겸허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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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마디 말보다 외마디 감탄사가 훨씬 감동적일 때가 있다. 장황한 설명이나 화려한 수식어가 덧붙은 말보다 더 선명하고 진실하기 때문이다. 노랫말 없는 노래가 그렇다. 국악인 김소희, 안숙선 명창의 ‘구음(口音) 시나위’가 좋은 예다. 인간 희로애락이 함축적으로 담긴 소리의 진수다.
간절함, 애절함, 원통함, 절규, 후련함…. 형언할 수 없는 다의적 감정이 뒤섞인 영혼의 울부짖음이다. 준비하거나 꾸미지 않은 채 감정에 따라 즉흥적으로 내뱉어진 읊조림. 가히 귀곡성(鬼哭聲)이라 할만하다. 마음 깊은 곳에서 발현된 간결한 울림은 이처럼 강렬하다.
구음 시나위가 진지한 한국식 창법이라면 상대적으로 가볍고 경쾌한 서양식 노래도 있다. 뜻 없이 흥얼거리는 ‘허밍(humming)’이 그렇다. 이 역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노랫말이 없다. 입 벌려 소리 내지 않고 그저 ‘으~ 음~ 흠~’ 콧소리를 낼 뿐이다. 기분 상태와 감정이 자연스럽게 묻어 나는 원초적 소리다. 이 또한 군더더기 없는 감정의 결정체다. 미술에서 보면 추상화가 이런 경우다.
추상을 초월한 정서적 회화
1947년 출생한 여성 화가 차명희는 추상회화에 천착한다. 노랫말 없는 노래를 부르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눈에 보이는 대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거나 사실적으로 재현하지 않는다. 그림과 싸우거나 경쟁하려 들지 않는다. 주체인 나-화가와 객체인 대상-그림은 결국 하나란 것을 알고 있다. ‘내가 그림이고, 그림이 곧 나’라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일찍이 깨달았기에 가능한 경지다.
차명희에게 자연과 그림은 인간이 극복하거나 싸워서 이길 대상이 아니다. 반면, 서양 회화는 대상을 정복하려는 투쟁의 역사다. 3차원 공간에 존재하는 세상 풍경을 2차원 평면 위에 옮겨 그리겠다는 목표가 뚜렷하다. 무모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전통적인 동양 그림은 애초부터 그 무모함을 초월했다. 눈에 보이는 세상-자연은 공간 속에 실재할 뿐, 그림이 아무리 사실적이라 할지라도 결국 허상이고 환상일 수밖에 없음을 이미 인정한 셈이다.
서양미술사에서 본격적인 추상회화의 시초로 미국인 화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이 자주 거론된다.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이라고 불리는 잭슨 폴록의 추상표현주의 화법에 대해 중국 미술평론가 판디안은 이렇게 말한다. “화가는 화폭을 행동의 장소로 삼는다. 이때 그림은 화가의 행동에 대한 기록이다. 그리고 작품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그림을 그리기 이전 구상(構想)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행동 전체 과정”이라고.
이어서 그는 차명희 작품을 ‘정서적 회화’라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잭슨 폴록으로 대표되는 서양의 추상표현주의 화풍과는 엄격히 다르다고 진단한다. 덧붙이기를 “서양의 추상적 예술이 물질적인 형식을 반영한 것이라면, 차명희의 동양회화가 반영한 것은 총체적인 시공 관념이다. ‘오직 뜻만 이해할 뿐, 말로 다 전할 수 없다(只可意會, 不可言傳)’는 심령적 경지다. 그의 그림은 하늘과 땅, 자연을 관조하며 영원한 것을 관조하고 있다. 작품 속에 표현된 것은 자연 만물의 생동하고 멈추지 않는 생기와 기상이다”라고 평한다.
우연에서 출발한 필연
차명희의 그리기 방식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넓은 붓으로 바탕색 칠하기와 그 위에 목탄이나 붓으로 선을 긋기다. 이런 방식으로 색을 칠하고 선을 긋고, 다시 지우고 그리기를 여러 차례 반복한다.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관객 또한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듯 오랫동안 바라봐야 한다. 그림과 교감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그러다보면 단순한 것 같지만 무궁무진한 표정을 담고 있는 그림임을 알게 된다. 똑같은 선이 하나도 없다. 꼬리에 꼬리를 물며 특정한 형상이 연상된다. 그 속에 삼라만상이 다 들어있다. 눈 쌓인 들판, 부드러운 바람, 반짝이는 윤슬, 고요한 물결, 흔들리는 식물…. 상상력은 씨앗이 되어 무궁무진한 형상으로 발아한다.
흰색에서 검은색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회색. 절제된 컬러와 재현을 초월한 몸짓에서 나온 무작위적인 붓질의 흔적. 곰삭은 삶의 성찰에서 비롯된 결과다. 무심한 듯 툭툭 내던진 선은 필연을 향한 우연의 출발이다. 이 모든 것이 작가 차명희의 그림을 결정짓는 요소다.
“인생을 살다 보니 참 보잘것없고 사소한 것 같아요. 획기적이고 대단한 것보다는 소소한 일상이 더 좋아요. 그림도 마찬가지더군요. 화도(畵圖) 위에 치밀하게 그린 선보다 연습하듯 장난치듯 무심히 그린 선에 더 좋고 애정이 가요.”
가사 없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처럼 형상 없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내공이 느껴지는 말이다.
이준희 건국대 현대미술학과 겸임교수_ 미술대학을 졸업했지만 창작에서 전향해 몇 년간 큐레이터로 일했고, 미술 전문지 <월간미술> 기자로 입사해 편집장까지 맡아 18년 8개월 동안 근무했다. ‘저널리스트’로 불리는 것보다 여전히 아티스트에 가까운 ‘미술인’으로 불리기 원한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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