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질기게 희망을 품는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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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적인 사건에 대한 뉴스 기사들을 한참 읽다 보면 이따금 마음이 냉소로 가득 차버리는 날이 있다. 그렇게 인류애가 파사삭 식어버릴 때면 세상이 더 나아질 거란 희망이 막연하게만 느껴지고 패배주의에 잠겨버린다. 대충 맛있는 것 먹고, 재밌는 콘텐츠나 소비하고, 단순하게 내 행복만 생각하며 살고 싶어지는 것이다.
물론 나의 일상적 행복도 중요하다. 일상에서 받은 위로로 힘을 낸 개인들이 모여야만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 하지만 소확행만 찾아서는 우리에게 궁극적인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못한다.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받는 사회적 동물이기에 개인 안에서만 행복을 찾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세계인의 일상을 바꿔놓은 감염병 대유행(팬데믹)이나 기후위기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지구인은 누구도 없다는 것만 생각해 봐도 그렇다. 팬데믹의 근본 원인이 환경 문제로부터 시작했기에 환경 보호와 기후 위기에 관심을 갖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물론 그런 개인 단위의 노력만으로는 기후 위기를 완벽히 극복할 수 없을지 모른다. 내가 아무리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고,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채식을 하고, 착한 소비를 위해 노력한들 거대 기업들이 나서지 않는다면 뭐가 크게 바뀔까 싶어질 때가 있다. 사회의 영향력이 너무 거대해 그 안에 있는 자신이 작고 무력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와 같은 태도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개인들로 가득 찬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얼마 전 이태원 사고 소식을 접한 누리꾼들이 사건 직후 구급대가 도착했는데도 여전히 길에서 춤추고 노래를 부르던 사람들을 보고 인간에 대한 회의감까지 느낀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물론 현장에는 몇몇 몰지각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들려오는 제보를 찬찬히 살펴보면 실제로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한마음으로 발 벗고 나선 시민들이 대부분이었다.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있다. 부정적인 쪽만 보고 쉽게 냉소에 잠기는 건 쿨한 게 아니라 희망을 갖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두려워하는 회피적인 태도이다.
긍정심리학의 창시자인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은 <낙관성 학습>에서 자신이 25년의 연구 끝에 확신하게 된 사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습관적으로 불행을 예견하는 사람은 그 예언이 적중해 실제로 더 많은 불행을 겪게 된다고 말이다. 냉소주의자가 모인 사회는 비관적으로 변하고 긍정주의자가 모인 사회는 낙관적 에너지가 흐를 수밖에 없다.
포기하고 냉소하는 것은 참 쉽다. 끈질기게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어렵고 용기 있는 행동이다. 오늘을 희망으로 시작하는 강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부디 지켜낼 수 있기를 바란다.
댄싱스네일 일러스트레이터 겸 작가_ <쉽게 행복해지는 사람> 외 두 권의 에세이를 썼고 다수의 도서에 일러스트를 그렸다. 매일 그리고 쓰는 자가 치유를 생활화하고 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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