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도시의 여름이 아름다운 것은 연꽃이 피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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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 운천저수지에 핀 연꽃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광주의 여름이 아름다운 이유는 연꽃이 있기 때문이라고.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의 ‘어느 도시가 의미있는 것은 그곳에 사랑하는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을 내 식으로 바꿔본 것이다. 누군가의 가슴에 의미를 주는 것은 단지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소한 풍경도, 뜻밖에 경험한 우연한 친절도 한 도시를 기억하게 하는 중요한 모티브다. 운천저수지의 연꽃은, 고향이지만 떠난 지 오래돼 낯설기까지 한 광주를 다시 가고 싶은 도시로 만든다. 올해도 연꽃이 흠뻑 피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넓은 잎사귀 사이로 드러난 귀한 자태를 보고 있자니 담장 너머 부잣집 정원을 훔쳐본 듯 조심스럽다.
신명연(1809~1886)의 ‘연화’는 운천저수지의 연꽃을 옮겨놓은 듯하다. 어찌나 잘 그렸는지 실물보다 더 아름답다. 연꽃은 두 송이다. 활짝 핀 연꽃과 이제 막 개화를 시작한 몽우리진 꽃이다. 활짝 핀 연꽃은 푸르스름한 연잎 위에 놓아 절정의 순간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게 했다. 몽우리진 꽃은 앞쪽에 비스듬히 배치했다. 뒤쪽의 연꽃이 지고 난 후에도 개화는 계속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화면은 배경을 생략한 채 연꽃만으로 가득 채웠다. 채도를 낮춘 잎사귀의 푸른색과 유백색의 꽃잎이 수수하다고 느낀 순간 붉은색이 꽃잎 끝에서부터 물들기 시작한다. 하아, 저런 색을 올릴 수 있는 작가는 가슴 속에 무슨 생각을 품고 살까. 신명연의 작품들을 볼 때마다 늘 그런 궁금증이 사라지지 않는다.
신명연은 아버지 신위, 여섯 살 위의 형 신명준과 함께 중국의 새로운 화풍을 받아들여 19세기의 화단을 청신하게 바꾼 인물이다. ‘연화’처럼 감각적이면서도 산뜻한 화풍은 당시 청나라에서 유행하던 새로운 사조였다. 그래서 신명연의 그림을 ‘신감각파’로 분류하는 학자도 있다. 이런 화풍은 그의 아버지 신위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신위는 1811년 서장관으로 베이징에 다녀온 뒤 중국 측 지식인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했고 시서화삼절로 중국에도 그 이름이 알려졌다. 물론 중국서화도 상당량 소장하고 있었다. 신명연은 신위의 가르침을 받으며 10대부터 화가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연화’에서 보이는 맑은 담채와 몰골법, 섬세한 색채와 정교한 필선은 청대에 강남지역에서 유행한 운수평(1633~1690) 화풍의 특징이다. 신위의 소장품 중에는 송·원대의 작품도 있어서 신명연은 그 시대의 작품을 모방한 작품도 여러 점 남겼다.
그러나 신명연의 기량은 단연 화조화에서 돋보인다. 중국에 직접 다녀온 신위는 오히려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화풍을 견지한 반면 아버지가 가져온 그림을 본 아들 신명연은 새로운 화풍을 받아들이는 데 거침이 없었다. 청출어람이다. 열린 감성으로 작품을 풀어갈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호조참판이었던 아버지와 달리 서얼이었던 자신의 신분이 경직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줬을까. 서얼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양반보다 양반스럽게 살고자 했던 이인상 같은 작가가 있는 것을 보면 꼭 신분이나 처지가 화풍을 결정하는 절대적 요인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타고난 품성일까.
운천저수지를 걸으면서 작년에 핀 연꽃이 올해 또다시 꽃대를 올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런저런 생각이 두서없이 스쳐간다.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불러들이고 스스로 사유하게 하는 연꽃의 힘. 나는 언제 연꽃 같은 삶을 살았던 적이 있었나. 잠시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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