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과 네잎클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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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금오름에서 가을을 나는 사람들│우희덕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계절을 오독하면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여행이든 나들이든 밖에서 활동하기 가장 좋은 시기에 가만히 책을 붙들고 있는 건 인간적이지도, 자연스럽지도 않다. 미학적인 언어처럼 아름답지도, 무한한 상상처럼 자유롭지도 않다. 가을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그 투명함이 어디서 오는지, 왜 잠자리가 코스모스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지 알고 싶다면 잠시 책을 덮어두자. 가을은 방학으로 생각하고 대신 미세먼지가 극성인 봄, 태양이 이글거리는 여름, 칼바람이 부는 겨울을 독서의 계절로 명명하자. 가을에 야외 활동도, 독서도 포기할 수 없다면 전국 각지의 책방을 거점으로 여행을 떠나는 게 절충안이 될 수 있다.
제주로 이주하며 소장하고 있던 책들을 대부분 기부하거나 폐기했다. 삶과 문학에서 떼어 낼 수 없는 영원한 주제는 아이러니인데, 책을 처분하고 나니 책이 다시 필요하게 됐고, 다시 읽어야 했고, 몰랐던 책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게 됐다. 처음에는 책을 대량으로 구입하기 위해 헌책방을 찾았는데, 글이 잘 써지지 않아 오래된 책들을 뒤적이며 이야기를 찾았는데, 정작 이야기는 책 밖에 있었다. 책 내용과 무관하게 책방 주변에서 하나둘씩 이야기가 펼쳐졌다.
‘동림당’은 제주에 있는 헌책방 중에 압도적으로 많은 책을 보유하고 있다. 그만큼 관리 요소가 많은 곳이다. 유쾌한 장년의 남자, 무슨 얘기든 막힘없이 이어가는 사장님에게서 오랜 시간 책방을 지탱해 온 내공이 전해졌다. 지금까지 그 어떤 책에서도 보지 못한, 이성 중심 사고 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말까지 듣게 됐다.
“와, 책이 엄청 많네요?”
“독서에는 책이 좋죠.”
“…….”
이곳에 진열된 책에서 비상금으로 추정되는 지폐가 다량 발견되기도 했는데, 누군가 돈이 든 책을 팔았다는 것도 기막히고, 그걸 발견한 손님이 판매자를 찾아달라고 스스로 밝힌 것도 대단했다.
‘구들책방’은 함덕해수욕장 인근에 위치해 있다. 여행자들이 유명 관광지에 와서도 책방을 찾는다는 걸 알려준 곳이다. 이곳에서 양귀자의 을 구입했는데, 책 속지에 명문 의과대학 이름과 학생 이름이 적혀 있었다. 문득 그것이 사실일까, 아니면 그저 자신의 바람을 새긴 것일까 의문을 갖다 포털 사이트에 그 이름을 검색했는데, 학생은 20여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모 의과대학 교수가 되어 있었다.
‘그늘중고책방’은 그야말로 소규모 책방이지만 마음이 가는 곳이다. 연로한 할머니가 작은 공간을 지키고 있는 것도 마음이 쓰였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를 이곳에서 찾았다. 한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발견해 보물을 찾은 기분이었는데, 책 속에 짙은 초록을 간직한 네잎클로버가 들어 있었다. 이게 무슨 행운인가 싶어 휘파람이 절로 나오던 그때, 가만 보니 그것은 네잎클로버가 아닌 세잎클로버였다. 왜 책 속에 들어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흔하디 흔한 세잎클로버였다.
나는 세잎클로버 잎 가운데 하나를 조심스럽게 둘로 나눴다. 헌책방이 오래 유지되길 소원하며 네잎클로버의 행운을 가장 오래돼 보이는 책 속에 남겨놓았다. 그리고 이야기를 가져왔다.
우희덕 코미디 소설가_ 장편소설 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벗어나 본 적 없는 도시를 떠나 아무것도 없는 제주 시골 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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