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석 꽉 차는 날 빨리 왔으면… 아시안게임 함께 출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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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시청 여자 육상단은 2022년 열린 전국육상경기선수권대회, KBS배 전국육상경기대회, 고성통일 전국실업육상경기대회 육상 400m 계주에서 1위를 휩쓰는 등 최고의 기량을 뽐냈다. 왼쪽부터 유지연, 김다정, 유정미, 김나연 선수
안동시청 여자 육상단 ‘무적 핑크군단’
전국체육대회가 10월 7일부터 13일까지 울산에서 열린다. 2022년 103회째를 맞는 전국체육대회의 특징은 비인기 종목 중 하나인 ‘육상’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여자 육상은 선수들의 인지도가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통해 높아지면서 인기 종목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400m 계주에서 금빛 질주 중인 안동시청 여자 육상단은 ‘무적 핑크군단’으로 불리며 인기몰이 중심에 있다. 2022년에만 제76회 전국육상경기선수권대회, 제50회 KBS배 전국육상경기대회, 2022 고성통일 전국실업육상경기대회에서 대회신기록을 세우며 1위를 차지했다.
전국체육대회를 앞두고 막바지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김나연(28), 유정미(29), 김다정(33), 유지연(27) 선수를 9월 27일 안동시민운동장에서 만났다. 대회가 코앞인 만큼 격한 강도의 훈련보다는 보강 운동과 근력 훈련 등으로 체력과 컨디션을 끌어올리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들은 “400m 계주 금메달이 목표”라며 “가급적이면 45초대인 팀의 기록을 44초대까지 단축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전국육상경기선수권대회 출전 당시 모습 | 안동시청
“넷이 수다 떠는 것 자체로 팀워크가 굳건”
가장 먼저 이들에게 인기를 실감하는지 물었다. 김나연 선수는 “최근 들어 부쩍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는데 얼마 전 미용실에 갔더니 어떤 분이 우리 팀의 계주 영상을 보고 있었다”며 “그 자체도 신기했는데 더 잘하라고 응원해주니 감회가 새로웠다. 더 분발해야겠다는 의욕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유지연 선수는 “육상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학교 운동회나 동네 체육대회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많았는데 요즘 들어 대회 때 기자도 찾아오고 유튜브 촬영도 하는 걸 보고 인식과 저변이 확대됐음을 체감한다”며 “잘 뛰든 못 뛰든 내가 뛴 영상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록 경신과 훈련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400m 계주는 개인 기량뿐 아니라 결속력(팀워크)도 중요한 종목이다. 좋은 성적의 비결로 결속력을 꼽는 이유다. 비결은 뭘까? 김다정 선수는 “숙소 생활을 함께하고 있어 일상이 곧 팀워크다. 넷이 성향이 비슷해 눈빛만 봐도 통한다”고 말했다.
유지연 선수는 “넷이 수다 떠는 것 자체로 팀워크가 굳건해진다”고 웃으며 덧붙였다. 유정미 선수는 “수다 못지않게 평소 배턴터치 훈련도 자주 하는 편”이라며 “평소대로 한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우리나라는 ‘육상의 불모지’로 통한다. 마라톤처럼 지구력을 요하는 종목과 달리 순간적인 힘을 내야 하는 종목에서 매우 취약하다. 과거엔 체격 조건에서 오는 한계라고 여겨졌지만 우리나라는 같은 아시아권인 중국과 일본에 비해 성적이 좋지 못하다. 국제대회에서 육상은 가장 많은 메달이 걸려 있지만 우리나라는 ‘노 메달’에 가깝다.
메달은 고사하고 올림픽 출전 티켓 확보조차 버거운 종목이고 올림픽에서 예선 통과만 해도 대단한 성적으로 인정받는 현실 앞에서 육상의 인기가 시들한 건 당연할지 모른다. 전국 단위 대회나 국제대회가 국내에서 열려도 주목하거나 경기장을 찾는 이들이 많지 않고 방송에서 중계하는 경우도 드물다.
김나연 선수는 “외국에서 대회가 열리면 경기장에 관중석이 꽉 찬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광경을 보는 일이 하늘의 별 따기”라며 “경기장에 관중이 꽉 들어차고 텔레비전에서 육상대회를 중계하는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정미 선수는 “최근 들어 많이 나아지고는 있지만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중국와 일본이 육상 종목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배경을 벤치마킹(본따르기)해 우리나라에 적용한다면 조만간 ‘한국 육상은 안 된다’는 말이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안동시청 여자 육상단 ‘무적 핑크군단’은 전국체육대회 400m 계주 금메달을 목표로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다정, 김나연, 유지연, 유정미 선수 | 문화체육관광부
끊임없는 도전 속에서 얻는 값진 성취
축구, 야구, 골프, 농구 등 인기 종목은 지방자치단체뿐 아니라 기업들의 후원과 지원이 끊이지 않는다. 그만큼 선수층도 두텁고 실업팀도 많으며 해당 종목 선수를 꿈꾸는 유망주도 넘쳐난다. 전지훈련 등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 체제를 갖추고 있어 세계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낼 확률도 높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육상은 지자체 지원 없이는 자생적으로 팀을 꾸려 운영하기 쉽지 않다. 대다수 지자체가 팀을 운영하며 기업 소속 육상팀은 마라톤 등 일부 종목을 제외하곤 극히 드물다. 2010년대 이후 스포츠과학 접목 등으로 육상 종목의 경기력이 향상되긴 했지만 다른 종목에 비해 투자가 부족하고 선수 자체도 워낙 적다 보니 가시적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정부 차원의 장기적인 육성 대책과 지원이 절실한 이유다. 김다정 선수는 “세계의 벽이 높지만 그 벽을 깨고 싶은 마음은 다 똑같다”며 “장기적인 투자, 체계적인 훈련과 꿈나무 육성 등이 뒤따랐으면 한다”고 말했다.
세계무대의 벽이 높은 건 현실이지만 장기적 안목에서 육상 종목을 육성한다면 우상혁 선수의 성공에서 보듯 우리나라 육상의 위상도 높아질 것이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이제부터라도 현장에서 열심히 훈련하는 선수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강조하는 이유다.
비인기 종목 육상선수로서 겪었던 설움이나 고충은 없었을까? 역설적이게도 애초부터 비인기 종목이어서 그런 기억은 거의 없다고 했다. 김나연 선수는 “설움이나 고충이 없었다고 해서 육상 선택 자체를 후회한 적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죽을 힘을 다해 훈련을 마치고 난 뒤 구토를 할 땐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운동을 이렇게 힘들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고 말했다.
김다정 선수는 “외국 선수들과 비교해 ‘우리나라 선수들은 왜 이렇게 못하냐?’고 할 때 섭섭한 마음이 든다”면서 “그럼에도 꿋꿋하게 올림픽 출전과 메달을 위해 훈련하는 선수들을 격려하고 응원해주면 더욱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동시청 여자 육상단은 2022 고성통일 전국실업육상경기대회 400m 여자 계주 대회신기록을 세우며 1위를 차지했다. | 안동시청
“부상과 슬럼프는 일상… 목표가 있어 극복”
육상은 기록 경신이라는 자신과 싸움을 계속해나가는 고독한 운동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선수 생활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로 끊임없는 도전 속에서 얻는 값진 성취를 들었다. 유정미 선수는 “최고 기록을 경신했을 때 느끼는 희열은 여러 난관에도 불구하고 육상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설명했다.
운동선수에겐 부상과 부진(슬럼프)이 고질병처럼 따라다닌다. 안동시청 선수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김다정 선수는 허리, 유정미 선수는 발목, 김나연 선수는 종아리, 유지연 선수는 엄지발가락 부상으로 힘든 시기를 겪을 때가 있었다.
특히 2022년 안동시청에 입단한 김나연 선수는 2018년 종아리 근육이 파열된 뒤 2년간 운동을 중단해야 했다. 그는 “운동을 포기하다시피 했는데 안동시청에 온 뒤 몸과 마음이 회복되고 기록도 좋아지고 있다”며 “슬럼프 기간이 길어 힘들었지만 이를 극복해가는 과정에 동료들이 있었기에 더 큰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정미 선수는 “22세 무렵에 발목 수술을 했는데 재활 기간만 6개월이 걸려 너무 힘들었다”며 “이후 안동시청으로 이적이 큰 도전이었는데 잘한 선택이다. 지금껏 좋은 성적을 낸 전환점이 안동시청 입단”이라고 말했다. 실제 유 선수는 2022년 열린 육상대회에서 100m와 세단뛰기 종목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최고의 기량을 뽐내고 있다.
김다정 선수는 “몇 년 전 허리 부상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대구를 오가며 주사 치료를 받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회복 이후 이렇게 선수 생활을 지속하고 있으니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유지연 선수는 “2년 전부터 부상으로 운동과 치료를 병행하다 보니 운동이 하기 싫어졌다. 무엇보다 다친 몸을 다치기 전으로 끌어올리는 게 힘들었다”며 “2022년 안동시청 입단 이후 400m 계주뿐 아니라 개인 종목인 100m와 200m에서도 1, 2위를 차지하는 등 만족할 만한 성적을 내고 있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전국체육대회 400m 계주 외에 개인 종목 메달 목표”
전국체육대회 400m 계주 금메달과 별개로 이들은 개인 종목에서도 메달을 노리고 있다. 멀리뛰기와 세단뛰기 종목을 병행하는 유정미 선수 외에 김나연, 유지연, 김다정 선수의 개인 주 종목은 100m, 200m 단거리다. 2022년 열린 전국육상경기선수권대회, 고성통일 전국실업육상경기대회에서 이들 모두 1~3위에 입상한 전력이 있어 주변의 기대가 크고 메달 수상 가능성도 높게 점쳐지고 있다.
유정미 선수는 “개인적으로 멀리뛰기 종목으로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메달 도전을 하는 게 목표”라며 “우리 팀의 400m 계주 기록이 우리나라 신기록인 44초60대에 근접해지고 더 나아가 우리 모두가 국가대표 단일팀으로 아시안게임 무대를 밟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비인기 종목이지만 안동시청 무적 핑크군단의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이들에겐 전국체육대회를 발판 삼아 2023년 중국 항저우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 출전 기회를 얻고 메달 획득까지 노려보겠다는 의지와 포부가 가득하다. ‘육상 불모지’인 우리나라에서 이들은 한 줄기 빛이고 이들이 있기에 우리나라 육상의 미래는 밝다.
김다정 선수는 “우리가 힘을 얻고 운동을 계속할 수 있는 버팀목은 국민들의 사랑과 응원”이라며 “세계의 벽이 놓지만 잘하려는 마음은 다 똑같다. 더 큰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유지연 선수는 “정부의 지원, 국민들의 성원과 관심이 이어진다면 우리나라 육상도 세계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날이 올 것”이라며 “초심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줄 테니 끝까지 응원을 아까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김미영 기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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