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칫상에 빠지면 섭섭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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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관 잡채밥
▶홍복 고추잡채
/잡/채/
잔칫상에 빼놓을 수 없는 음식 중 하나는 잡채(雜菜)다. 특히 최근 외국인들에게 각별한 인기를 모으는 음식이기도 하다. 해외 유명 한식당에는 늘 잡채가 매출의 커다란 축을 담당하고 있다.
사전적 의미로 잡채란 갖은 채소와 고기를 채 썰어 볶은 후 버무린 음식이다. 원래 태생부터 잔칫상에 오르던 고급 요리였다. 재료도 많이 들고 손도 퍽 많이 간다. 평소 가정에서 잡채를 해 먹기는 녹록지 않다. 많은 것이 풍족해지고 주방용품도 편리해진 요즘도 이 정도니 예전엔 어땠을까?
400여 년 전엔 잡채를 잘 만들어 출세한 이도 있었다. 조선시대 문신 이충(李沖 1568~1619년)은 광해군 때 집에서 만든 잡채로 임금의 마음을 사로잡아 정이품 호조판서의 자리까지 올랐다고 한다. (정초본 138권)에 따르면 잡채상서(雜菜尙書)란 말이 등장한다. 이는 임금에게 잡채를 가져다 바치고 제수받은 상서(판서)를 이른다.
에 따르면 “그는 진기한 음식을 만들어 사사로이 궁중에다 바치곤 했는데, 왕은 식사 때마다 반드시 이충의 집에서 만들어 오는 음식을 기다렸다가 수저를 들곤 했다. 당시에 어떤 사람이 시를 지어 조롱하기를, 사삼 각로 권세가 처음에 중하더니 잡채 상서 세력은 당할 자 없구나”라고 적었다. 참고로 호조판서는 지금의 기획재정부 장관 격이다. 얼마나 대단한 맛이었을까?
어쨌든 당시의 잡채는 지금의 당면 잡채와는 다른 것이다. 등 문헌에 따르면 숙주와 무, 도라지, 오이 등 갖은 나물을 익혀 무친 요리가 잡채다. 여기다 식초를 넣어 먹는다고 적었다. 일종의 나물 모둠이다. 잡채의 한자 뜻과 일치한다. 17세기(1670년쯤)에 등장한 한글 조리서 에는 잡채의 상세한 조리법을 기록했는데 수많은 나물과 함께 꿩고기와 버섯 등이 다양하게 들어가니 요즘 잡채 형태와 비슷하다.
잡채에 지금처럼 채 썬 고기가 들어가는 것은 근대에 들어서다. 고종 때 김기수가 쓴 에 등장하는 잡채는 고기와 채소를 가늘게 썰고 콩을 섞어 버무린다고 했다.
여기에 자연스레 당면(唐麵)이 들어가게 됐다. 고구마 녹말로 만든 당면은 원래 화교들이 집에서 만들어 팔았는데 1919년 황해도 사리원에 세워진 대형 당면 공장 덕에 생산량이 크게 늘었다. 밀국수보다 값이 싼 당면은 인기가 좋아 순식간에 퍼졌다. 어떤 요리에나 당면을 넣어 양을 늘리는 게 그때의 ‘당면 과제(?)’였다. 1924년 발행된 요리책인 에는 “잡채에 당면을 넣으면 좋지 않다”고 나온다. 이미 잡채에 당면이 들어가기 시작한 후였다는 뜻이다.
우리는 잡채라 쓰지만 중국에선 자후이(??)라 부른다. 번체자로는 잡회(雜?)다. 회는 모아서 익히는 조미, 즉 볶음을 뜻하니 여러 가지를 넣고 볶은 음식이란 뜻이다. 잡(雜) 자는 지금 우리말에서 그리 좋지 않은 이미지로 쓰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다양함(variety)을 의미하는 좋은 뜻이다.
중국 잡채의 조리 원리는 우리 잡채와 비슷하지만 다양한 나물보다는 부추나 풋고추, 피망, 고수, 청경채 등 특정 채소와 러우슬(肉絲)을 많이 쓴다. 각종 재료를 돼지기름에 빠르게 들들 볶아낸다. 재료가 워낙 광범위하다 보니 잡채는 정말 다양하다. 고추잡채(靑椒肉絲), 부추잡채(?菜雜菜), 칭장러우슬(京醬肉絲)은 물론 중국 음식점에서 익숙한 음식인 팔보채 역시 잡채의 한 종류다. 그냥 집어 먹는 요리로도 좋고 밥이나 꽃빵(花捲)을 곁들여 먹기도 한다.
달콤하고 짭조름하면서도 기름기와 채소를 모두 채울 수 있는 잡채. 재료도 많이 들고 손도 많이 가는 잡채를 누군가 해준다면 사실 어떤 벼슬이라도 내리고 싶다. 광해군처럼.
전국의 잡채 맛집
★군산 서원반점
주문 즉시 밥과 잡채를 따로 볶아 뜨거운 잡채밥을 낸다. 다소 진한 양념을 한 당면잡채를 볶음밥에 얹어준다. 절묘한 궁합이다. 뜨거운 잡채는 오히려 칼칼한 맛이라 볶음밥의 느끼함을 감싼다. 아삭하게 볶아낸 채소와 부드러운 고기가 당면과 잘 섞여들었다. 따로 내주는 짬뽕 국물 역시 명불허전 군산의 것이다.
★공주 간식집
산성시장 ‘간식집’엔 고기 부스러기와 당면이 들어간 잡채만두가 있다. 직접 빚은 두툼한 만두를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바싹 지져내어 매콤한 고추장소스에 찍어 먹는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워 보기에도 입맛을 당긴다. 빵가루를 묻혀 튀겨낸 잡채크로켓보다 잡채 맛을 더욱 잘 느낄 수 있다.
★서울 홍복
남대문 인근에서 중식 연회를 하기에 좋은 중식당. 코스와 단품 메뉴를 다양하게 갖췄다. 아삭한 피망을 매콤하게 볶아낸 고추잡채도 잘한다. 강한 화력으로 고기와 채소를 볶아 함께 집어 먹으면 식감 대비가 좋다. 부드러운 고기에 피망 향이 잘 배어들어 깔끔한 맛을 낸다.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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