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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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 보렴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 사이로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 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2. 밤늦은 항구에서
그야말로 연락선 선창가에서
돌아올 사람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이제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마는
왠지 한 곳이 비어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최백호 작사·작곡, 1995년)
어둠이 뉘엿뉘엿 내려앉은 부둣가, 궂은 비가 옷깃을 적신다. 포구로 돌아오는 연락선 뱃고동 소리도 잦아들었다. 반백의 한 사내가 터벅터벅 걸어온다. 비에 젖은 코트를 털며 선창가 2층 쇠락한 다방의 문을 연다.
사내 몇몇이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해진 가죽 의자에 앉아 있다. 탁자 위에는 도라지위스키가 안주 없이 놓여 있다. 허벅지까지 트인 긴 자주색 드레스에 붉은 립스틱을 칠한 중년의 마담이 웃음을 흘리며 다가온다. 사내들이 마담에게 농을 던진다.
중년의 사내는 구석에 정좌한다. 조용히 중절모를 벗고 정물처럼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비는 무심해서 도무지 잦아들 생각이 없다. 사내의 표정 또한 무심하지만 짙은 주름살이 희미한 조명에 반사한다.
옛날식 다방의 퀴퀴한 실내 스피커에서는 에이스 캐논의 색소폰 연주곡 ‘로라’가 흐른다. 우수에 젖은 블루스의 리듬이 사내의 축축한 어깨 위에 내려앉는다. 그는 누구인가, 왜 여기에 왔는가, 누구를 무엇을 생각하는가.
노랫말은 이런 선창가의 소묘다. 시적으로 정제되거나 미학적으로 승화되진 않았다. 그러니 그냥 키치(kitsch)적 정서라고 해두자.
뻔하고 통속적이고 싼 티 나고 복제의 냄새가 풍기지만 그래도 뭔가 좀 ‘있어 보이는’ 게 키치다. 지난 시절, 이발소에 걸린 밀레의 ‘만종’ 모사품과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가 새겨진 액자가 우리 시대 대표적인 키치였다.
궂은 비, 옛날식 다방, 가짜 향의 위스키, 색소폰 소리, 새빨간 립스틱, 뱃고동…. 시각도 청각도 후각마저도 키치적이다. 여기에 첫사랑, 실연, 청춘, 미련, 잃어버린 것, 다시 못 올 것, 같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 가사에 얹어진다. 사내는 뱃고동 소리에 가버린 세월이 문득 서글퍼지고, 짙은 색소폰 선율에 젊은 날 실연의 기억이 떠오르는데 이제 와 생각하니 그 실연도 달콤했노라 회상한다. 가슴 한 곳은 텅 비어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인과관계와 기승전결이 없는 그냥 ‘왠지’이며 ‘새삼’이며 ‘실없는’ 것이다.
이게 중년의 정서다. 한국 중년의 정서는 이렇게 다분히 키치적 분위기에 기대 있다. 대한민국의 중년은 대체로 고단하고 핍진한 세월을 살아왔다. 그 지나온 세월은 나이 먹어서 어느날 ‘문득’, 어디에선가 ‘홀연히’ 떠올라 파노라마처럼 흐른다. 그것도 ‘옛날식 추억’일까.
최백호가 작사 작곡하고 부른 ‘낭만에 대하여’는 한국 사회의 산업화 과정에서 생존과 성공만을 향해 달려온 지금의 중장년, 그 내면에 잠겨있는 상실감과 허전함의 토설이다. 이 노래만큼 멜랑콜리(melancholy, 우울)하고 페이소스(pathos, 비애)를 주는 노래는 찾을 수 없다.
이 노래는 나이가 들수록 사무친다. 27년 전인 1995년에 발표됐음에도 이 노래의 생명력은 질기다. 언젠가는 누구나 다 늙어서 다시 못 올 것이 생길 테니까, 이 노래는 아마도 사망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이 노래와 함께 늙어갔다. 나이 50이 넘으면서부터 이 노래는 변함없는 18번 자리를 지켜왔다. 노래방서 이 노래를 부르면 첫사랑의 추억이 입안 가득 고여온다. 나는 중얼거린다. “내 늙음이 내 과오는 아니야. 알아? 내게도 첫사랑이 있었다고!”
남루한 사내든, 인텔리풍의 사내든 나이든 사내가 이 노래를 부르면 왠지 연민의 정이 솟는다. 그래서 이 노래의 전염성은 치명적이다. 그를 보듬어 안아주고 싶은 여자가 있다면 그 여자는 누군가의 ‘첫사랑 그 소녀’였을 것이다.
이 노래를 제대로 안주 삼으려면 알콜 도수가 높은 술을 마셔야 한다. 가슴으로 털어 마시는 소주나 목구멍에 찌릿하게 넘어가는 위스키가 제격이지, 와인이나 막걸리는 어울리지 않는다.
‘도라지위스키’를 아는 사람은 이제 거의 없을 것이다. 1956년부터 1976년까지 나온, 소시민의 고급한 욕구를 대체해준 가짜 양주였다. 일본 주류 업체인 산토리에서 만든 ‘도리스 위스키’(Torys Whisky)가 밀수돼 인기를 끌자 부산의 국제양조장이 일본에서 수입한 위스키 향료와 색소, 주정을 배합해 도리스 위스키의 이름을 본뜬 저렴한 모조품 도라지위스키를 내놓았다. 그걸 마셔본 적이 있는 사람은 이제 60대 후반이나 70대쯤 나이가 됐을 거다. 하지만 감각은 기억한다. 온몸의 세포가 술에 취한 듯 일어선다.
‘낭만에 대하여’ 가사는 포크만큼 세련되거나 의식적이지도 않고, 보통의 트롯처럼 다소 그렇고 그런 노랫말도 아니다. 올드하지만 그에 어울리는 서정적 품위가 있다. 세미 트롯이라고나 할까. 이 노래가 세월이 가도 사랑받는 건 그런 지점 때문이다. 가사는 적당한 회한과 체념이 뒤섞여 ‘관조적’이기도 하다. 인생이란 게 무언가. (꼭 사람이, 사랑이 아니더라도) 결국은 모든 것과의 만남과 헤어짐 아닌가. 남아있는 건 추억과 감각뿐이다.
이 노랫말의 특별함은 열린 엔딩에 있다. 대중가요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생략형이다. ‘대하여~’라는 미완의 문장 다음 구절은 온전히 감상자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그렇다고 굳이 완결할 이유는 없겠다. 삶은 0과 1이 아니다. 삶은 공식이 분명한 디지털의 공간이 아니라 애매모호한 아날로그의 세계가 아닌가. 낭만은 종결이 아닌 여운에 있다.
노래 ‘낭만에 대하여’ 이후 낭만은 비로소 ‘대중성’을 획득했다. 디지털 시대에 사라져가는 낭만을 소환했다. 이 노래는 중장년의 고단한 삶을 ‘낭만’이란 카피로 감싸 위로하고 보상했다. 그게 이 노래의 힘이고 미덕이자 최백호의 대중가요사적 업적이다. ‘멋진, 어른의 노래’다. 어른도 때론 울고 싶은데, 최백호가 대신 울어주었다.
◆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언론과 글쓰기를 강의했고, 언론중재위원과 신문윤리위원을 지냈다. hkb821072@naver.com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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