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재·신약 품은 바닷속 작은 우주 열수공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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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조차 닿지 않는 차갑고 어두운 심해, 그중에서도 독특한 광경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닷속 작은 우주’로 불리는 ‘열수분출공(이하 열수공)’이다. 과학자들은 열수공 주변이 지구에서 생명체가 태어났을 때의 원시바다 환경과 비슷하다고 추정한다. 그래서 열수공의 생태계를 연구해 지구에서 생명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비밀을 풀려고 한다.
또 열수공에는 인간에게 중요한 자원이 풍부하다. 다양한 국제회의 현장에서는 바닷속 고부가가치의 ‘광물자원’과 ‘생물자원’을 둘러싸고 자국의 이익 실현을 위한 논쟁과 행위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전 세계 공통된 자원보고의 첫 번째로 꼽는 곳 또한 심해 열수공 지역이다.
2㎞ 넘는 심해에서 300℃ 열수 치솟는 ‘활화산’
열수공은 말 그대로 뜨거운 물이 솟아나는 구멍을 말한다. 해저 화산활동으로 인해 300℃가 넘는 뜨거운 물이 검은색 연기처럼 콸콸 솟구쳐 오른다. 바닷속 온천인 셈이다. 바다는 깊숙이 들어갈수록 햇빛이 닿지 않아 수온이 점점 낮아진다. 수심 1000m로 내려가면 수온이 1~2℃일 정도로 차갑다. 그런 심해에서 열수공이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해저 지각의 틈새로 스며든 바닷물은 마그마와 닿으면서 가열된다. 이때 주변의 구리, 철, 아연, 금, 은, 유황, 망간 같은 금속 성분이 녹아든다. 이러한 성분을 품은 뜨거운 바닷물은 다시 지각의 틈새로 솟아오른다. 이 과정에서 뜨거운 물이 주변의 찬물과 만나고, 물속에 녹아 있던 금속이온이 침전하면서 열수공이 만들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침전물이 쌓여 열수공의 높이가 굴뚝처럼 수십m에 이르는 것도 있다.
열수공이 내뿜는 뜨거운 물은 바닷물 속에 녹은 금속 종류에 따라 검은 연기나 흰 연기처럼 보인다. 이를 각각 ‘블랙 스모커(Black Smoker)’, ‘화이트 스모커(White Smoker)’라고 부른다. 강한 산성의 열수에 다량으로 녹아 있던 아연, 납, 철 등의 금속이 차갑고 염기성인 바닷물과 섞이면 검은색 황화성 광물로 분리돼 나온다. 반대로 열수에 녹아 있는 성분에 바륨, 칼슘, 규소가 많이 포함된 경우에는 분출물 색이 흰색을 띤다.
보통 지구 대기압에서의 물은 100℃가 되면 끓어서 수증기로 변한다. 하지만 수압이 높은 심해에서는 끓는점이 더 올라가기 때문에 300℃라는 높은 온도에서도 끓지 않아 기체가 아닌 액체 상태로 뿜어져 나온다. 수압은 수심이 10m 깊어질 때마다 1기압씩 높아지므로 2000m 깊이에서는 200기압까지 올라간다. 이는 지상에서 느끼는 기압의 200배나 되는 무게로 손바닥에 무게 3톤인 코끼리 약 7마리를 올려놓은 것과 맞먹는다.
열수공은 1977년 해저 2700m에서 처음 발견됐다. 이후 현재까지 발견된 열수공은 약 300개. 대부분 태평양에 모여 있고 대서양에 10여 개, 인도양에 4개가 있다. 인도양의 4개 중 1개는 2018년 7월 한국해양과학기술원이 발견했다. 우리나라가 심해에서 열수공을 발견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미국·일본, 독일·일본이 공동으로 찾아낸 것이 각각 1개, 중국이 1개였다. 한국이 한국형 해양연구선 ‘이사부호’를 이용해 독자적으로 네 번째 발견에 성공한 것이다.
열수공은 저마다 환경이 다르다. 때문에 발견되는 생명체 역시 다르다. 사람 팔뚝만 한 두께로 2m까지 자라며 소화기관이 없는 관벌레가 가장 흔하다. 눈 없는 새우, 어른 신발만큼 큰 조개, 황화철과 여러 금속으로 이뤄진 비늘을 가진 비늘발고둥 등을 비롯해 이름 모를 생물들이 살고 있다. 이렇게 다양한 생명체가 독자적으로 진화해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열수공 주변은 심해의 오아시스나 다름없다.
심해 생물체에서 새 물질 추출해 의약품 개발
육지에서는 식물이 햇빛 에너지로 광합성을 해 영양분을 만들고 그런 식물을 다른 동물들이 먹어 생태계가 유지된다. 그런데 빛이 닿지 않아 광합성을 할 식물이 없는 열수공에서는 생물들이 어떻게 에너지를 얻으며 살아갈까? 이곳 생물은 광합성 대신 황화수소라는 화학에너지를 연료 삼아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 비밀은 황화박테리아와의 끈끈한 공생에 있다. 이 박테리아는 바다의 플랑크톤만큼 많고 열수공에서 펑펑 쏟아내는 물질에는 황화수소가 잔뜩 들어 있다. 관벌레는 자신의 몸속에 자리 잡고 사는 황화박테리아에게 황화수소를 공급한다. 대신 황화박테리아는 황화수소가 산화될 때 나오는 에너지를 이용해 바닷물 속의 이산화탄소와 결합시켜 탄수화물을 만든다. 이를 관벌레에게 제공한다. 탄수화물은 생명체 대부분이 사용하는 영양분이다. 게나 조개 같은 생물은 아예 황화박테리아를 먹어서 에너지를 얻는다.
황화박테리아의 화학합성으로 생태계가 유지되는 열수공에는 산업적으로 유용하게 활용할 자원이 다양하다. 금과 은 같은 귀금속을 비롯해 구리, 아연, 납처럼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유용광물이 많이 쌓여 있다. 희유금속인 인듐과 셀레늄의 자원 잠재력 또한 상당히 높다. 이 때문에 미국, 프랑스, 일본, 중국, 독일, 한국 등은 최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해 열수공의 광물을 캐내기 위해 심해를 조사하고 있다. 기본 자원으로 활용하거나 신소재로 개발하기 위해서다.
또 열수공에서는 기존에 발견되지 않았던 신종 생명체가 계속 발견되고 있다. 이들 생명체의 단백질, 유전자 등을 조사하면 신약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은 열수공에서 발견한 신종 생물에서 10여 종의 항암 물질과 면역 관련 물질을 찾아내 신약 개발에 사용했다. 화이자, GSK 등 다국적 제약기업에 기술이 이전되기도 했다. 일본 역시 열수공 신종 생물에서 발견한 효소로 당뇨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우리나라도 한국해양과학기술원 연구팀이 확보한 인도양 열수공의 신종 생물에서 새로운 물질을 추출해 의약품 개발에 사용하려는 연구를 하고 있다. 열수공의 무궁무진한 광물·생물자원을 통해 신약 개발은 물론 지구 생명체 탄생의 비밀이 벗겨지길 기대한다.
김형자
편집장 출신으로 과학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과학 칼럼니스트. <구멍으로 발견한 과학>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희유금속
철이나 구리 등의 일반 금속과 달리 매장량이 적고 한 곳에 집중돼 있으며 추출이 어려운 금속을 말한다. 리튬, 규소, 니켈, 인듐, 몰리브덴, 세슘 등이 속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해외수입 의존도가 높다. 전기차 배터리에 많이 사용되는 니켈·리튬처럼 반도체, IT, 자동차, 철강 등 주요 산업의 핵심 소재로 많이 사용되는데 산출량은 적어 공급 불안정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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