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컵 쓰면 뇌 신경세포에 악영향? 과불화화합물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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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해 마시는 사람이 많다. 출근길은 물론 점심 식사 후 한쪽 손에 일회용 종이컵을 들고 거리를 누비는 직장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녹차 등 음료를 마실 때도 종이컵 사용은 일상이다. 하지만 이젠 일회용 종이컵을 사용할 때 주의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안전성평가연구소(KIT)의 연구에서 일회용 종이컵에 함유된 특정 화학물질이 사람의 뇌 신경세포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뇌 신경세포 형태 변화 일으키거나 사멸
많은 사람이 일회용 종이컵을 사용하는 것은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편리함은 이로움과 다르다. 종이컵은 과불화화합물(PFAS·Perfluoroalkyl substances)로 코팅돼 있어 편리함 이면에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과불화화합물은 특정 화합물의 이름이 아니다. 탄화수소의 기본 골격 중 수소가 불소로 치환된 형태, 즉 하나 이상의 완전히 불소화된 메틸기(-CF3) 또는 메틸렌기(-CF2)를 가진 모든 고분자 화합물을 일컫는 이름이다. 여러 개의 탄소(C)와 불소(F)가 강하게 결합돼 있다.
이렇게 화학적으로 강하게 결합된 안정된 구조는 자연 상태에서 쉽게 분해되지 않는다. 우리 몸속에도 축적되면 오래 잔류한다. 미국의 전체 인구 중 98%의 혈액에서 과불화화합물이 발견됐다는 연구도 있다. 이 때문에 과불화화합물을 ‘영원한 화학물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과불화화합물은 코팅제로 널리 쓰이는 물질이다. 어떤 물건에 원치 않는 물질의 침입을 막으려면 겉면을 얇은 막으로 덮는 ‘코팅’이 필요하다. 과불화화합물은 기름을 밀어내는 특성이 있다. 방수성 또한 뛰어나다. 마찰과 고온에도 잘 견딘다. 따라서 기름을 차단하기 위한 프라이팬이나 물의 흡수를 막으려는 방수의류·종이컵·소방용품에 쓰인다. 또 자외선차단제와 같은 화장품, 콘택트렌즈 세척제, 전자부품의 난연제, 반도체 공정에서의 냉매·세척제 등에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인공 화학물질인 과불화화합물은 일상생활의 편의를 위해 1940년대부터 전 세계의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개발됐다. 1947년 미국의 다국적 제조기업 3M이 처음으로 생산했다. 지금까지 세계에서 개발된 과불화화합물은 600만 종이 넘는다. 처음 개발될 때는 인체나 환경에 무해한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고유한 잔류성 탓에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1만 4735종의 과불화화합물을 독성 화학물질 목록에 올려두고 있다.
과불화화합물 중 가장 광범위하게 생산되는 것은 과불화옥탄산(PFOA)과 과불화옥탄술폰산(PFOS) 등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사람 체내에서 과불화옥탄산과 과불화옥탄술폰산의 반감기(양이 절반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는 3.5~4년으로 체류 시간이 길다.
과불화화합물이 체내에 적은 양이라도 쌓이면 간을 손상시키고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이며 면역력을 약화시킨다. 호르몬 생성에도 영향을 주고 신장암·정소암과 같은 각종 암을 유발한다. 또 다이어트를 할 때 요요현상을 촉진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안전성평가연구소의 가민한 박사팀은 과불화화합물이 뇌 신경세포에까지 악영향을 끼친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뇌 조직을 떼어내 배양한 ‘초대배양 피질 신경세포’를 관찰한 결과 과불화화합물에 노출된 신경세포에서 형태학적 변화가 일어났고 신호전달과 네트워크 기능에도 영향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초대배양 세포는 떼어낸 조직에서 세포를 분리해 배양한 세포를 말한다. 또 전사체(세포 또는 조직에서 어느 순간에 발현 중인 RNA의 총합)를 분석한 결과 과불화화합물 종류에 따라 신경세포의 불균형을 유발하거나 사멸을 일으키는 등 신경세포에 미치는 영향이 각기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 사용을
가민한 박사팀 연구에서는 탄소사슬이 각각 7개(C7)인 과불화헵탄산(PFHpA)과 8개(C8)인 과불화옥탄산 두 종류를 관찰했다. 그랬더니 과불화헵탄산은 신경세포 수상돌기 가지의 수를 증가시켰다. 또 억제성·흥분성 신경세포의 불균형을 일으켰다. 반면 과불화옥탄산은 오히려 수상돌기 가지의 수를 감소시키고 세포 독성을 유발해 신경세포를 사멸했다.
이 같은 신경세포의 변화는 과불화화합물이 뇌 신경학적 질병과 연관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2023년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과불화옥탄산을 인체 발암성이 확인된 ‘1군 발암물질’로 지정한 바 있다. 연구팀의 연구결과는 환경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케모스페어(Chemosphere)’에 게재됐다.
과불화화합물의 오염은 복잡한 문제다. 과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과불화화합물이 건강에 미치는 잠재적 영향에 대한 이해도는 깊어졌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고 관리할 방법은 아직 마땅치 않다. 과불화화합물을 분해하려면 400℃ 이상의 고온에서 소각해야 하는데 소각 과정에서 일부가 연기를 통해 대기 중으로 방출되기 때문에 완전 분해가 이뤄지지 않고 매립해도 약 30년 후 다시 침출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물론 지금 대기 중에 배출된 과불화탄소의 총량은 적다. 과불화탄소 전체가 지구온난화에 미치는 영향도 이산화탄소 전체가 미치는 영향의 0.3%에 불과하다. 하지만 현재 대기 중에서 산업계가 보고한 양보다 두 배나 많이 관측되고 있고 반도체 산업 또한 계속 성장할 것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환경적 측면에서 과불화탄소를 국제적으로 규제하는 것이 필요하다. 유럽연합(EU)은 2025년부터 반도체 산업 등에서 과불화화합물 사용을 엄격하게 규제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와 함께 우리도 일상에서 각자 할 수 있는 작은 노력을 해야 한다. 일회용 종이컵 대신 텀블러를 지참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김형자
편집장 출신으로 과학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과학 칼럼니스트. <구멍으로 발견한 과학>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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