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작가가 된 세 자매 그들은 결국, 이야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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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브론테
‘제인 에어’는 최초의 여성 성장 소설이다. 이 소설을 쓴 샬럿 브론테는 ‘커러 벨’이라는 중성적인 필명으로 소설을 발표했다. 샬럿 브론테에게는 두 여동생, 에밀리와 앤이 있었다. 세 자매 모두 시와 소설을 쓴 문학가였다. 둘째인 에밀리 브론테가 쓴 소설 ‘폭풍의 언덕’은 후대에 고전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안타깝게도 그는 30세 나이에 요절했다. 막냇동생 앤 브론테 역시 29세에 사망했다. 샬럿 브론테는 38세에 세상을 떠났다. 무엇이 그들의 짧은 삶을 문학으로 불태우게 만들었을까?
뮤지컬 ‘브론테’는 여자가 글을 쓸 수 없었던 빅토리아 시대에도 묵묵히 글을 썼던 브론테 자매의 삶에 상상력을 더한 이야기다. 한 통의 편지가 세 자매에게 도착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기간 3월 4일~6월 2일 장소 링크아트센터드림 드림1관
공연 KBS교향악단 제800회 정기연주회
KBS교향악단은 1956년 12월 20일 초대 상임지휘자 임원식의 지휘로 제1회 정기연주회를 가졌다. 68년 만에 맞이하는 800번째 무대다. 이번 공연은 피에타리 잉키넨 KBS교향악단 음악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소프라노 조수미가 협연한다.
일시 3월 28~29일 오후 8시
장소 KBS홀(2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29일)
연극 러브레터
연극 ‘러브레터’는 50년에 걸친 시간 동안 편지를 매개로 서로의 인생과 사랑을 이야기하는 작품으로 무대에는 오로지 앤디와 멜리사 역의 두 배우만 존재한다. 앤디 역에 배우 정보석과 박혁권, 멜리사 역에 배우 하희라와 유선이 캐스팅됐다.
기간 4월 4~27일
장소 LG아트센터 서울 U+스테이지
전시 유토피아: 노웨어, 나우 히어
김초엽의 SF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속 단편 ‘공생가설’을 각색한 전시가 진행된다. 3차원(3D)아트, 디지털 콜라주, 모션 그래픽 등 다양한 작업 방식으로 만든 7인의 작품 200여 점이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된다.
기간 3월 29일~10월 13일
장소 그라운드시소 성수
도서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김창완은 2000년부터 23년간 아침 라디오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를 진행했다.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는 김창완이 라디오 청취자들에게 답한 편지와 오프닝을 엮은 책이다. ‘어그러진 일상에 실망할 것 없고 매일매일 만들어지는 졸작들도 그 자체로 예쁘다’는 김창완의 인생 철학이 담겼다.
저자 김창완(웅진지식하우스)
도서 공부가 설렘이 되는 순간
‘공부를 통해 얻어야 하는 것은 성적이 아니라 성취의 경험이다.’ 수학 30점에서 전국 모의고사 11등이라는 성취를 이뤄낸 교육 스타트업 스몰빅클래스 조승우 대표의 공부이야기다.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찾아야 공부가 설렘이 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저자 조승우(포레스트북스)
유슬기 기자
박스기사
인터뷰 | 박목월 미발표 시 166편 공개한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
고치고 또 고치며 쓴 시 46년간 고이 간직
“아버지께서 ‘뭐하러 했노?’ 하실까 걱정된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박목월, ‘나그네’ 중)
박목월(1915~1978)은 자연을 소재로 한 서정시를 남긴 시인이자 교육자다.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해방 직후 시집 ‘청록집’을 펴내 청록파 시인으로 불린다. 한국시문학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시인 박목월의 장남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가 3월 12일 부친이 남긴 미발표 시들을 공개했다. 시인의 사후 46년 만에 미발표 작품들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시인의 미발표 작품을 공개하는 데 46년이 걸렸다.
아버님이 (미공개 원고를 생전에) 발표하기 싫어서 하지 않으신 건가 싶고.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어길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아들이기 때문에 문학적 평가를 객관적으로 할 수 없는 입장이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뭐하러 했노?’ 하실까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박목월 시인이 생전에 남긴 작품이 많지는 않다.
아버지가 노트를 쓴 과정을 어린 시절부터 봐와서 잘 안다. 밤에 써놓고 고치고 또 고치고 하셨다. 그런 것들이 노트 속에 순서대로 다 나타나 있다. 부친은 생전에 시집 내는 걸 매우 어려워해서 시집도 몇 권 못 냈다.
그럼에도 원고를 간직하고 있었는데?
우리 집처럼 이사를 많이 다닌 집도 없다. 경주, 대구, 서울로 옮겨 다니고 6·25전쟁을 맞았고 피란 갔다가 다시 올라오는 변고도 겪었는데 그때마다 어머니가 부친의 노트를 보따리에 싸 가지고 다녔다. 시인의 아내로서 이 노트들을 잘 보관해야겠다는 일념이었을 것이다. 부친이 작고한 뒤에도 20년 동안 장롱 밑에 잘 넣어뒀다.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다.
지금도 부친의 글을 떨려서 잘 못 읽는다고?
그럼에도 공개를 결심한 이유는 박목월은 전 생애가 시에 얽히지 않은 시간이 한 번도 없었다. 우리 시인 중에 시를 중간에 관두거나 쓰러지고 한 분이 많은데 목월은 해방 후 암흑기에서 시작해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시를 안고 살아간 한국현대문학 1세대의 인물이다. 이 사실이 기억되면 좋겠다.
유슬기 기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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