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미지급은 아동학대 제도가 바뀌면 인식도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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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 대표
많은 한부모가족이 겪고 있는 양육비 미지급 문제에는 사실 ‘돈’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영 양육비해결총연합회(양해연) 대표는 “‘쓸 비(費)’라는 글자가 있어 돈이 오가는 문제로 여기기 쉽지만 양육비 미지급 문제의 핵심은 아동의 권리 문제”라고 힘줘 말했다. 양해연은 양육비 미지급 문제에 대한 사회 인식을 고취시키고 이를 해결하고자 2018년 결성됐다. 2021년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양육비이행법)’이 시행되어 3월 5일 윤석열 대통령이 ‘청년의 힘으로! 도약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주제로 열린 열일곱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양육비 선지급제’를 추진하겠다고 밝히기까지 꾸준히 해결방안을 찾고 추진해온 단체다.
이 대표 역시 한부모가족이다. 아들이 26세다. 이 대표는 아이가 세 살 때 이혼한 후 양육비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가정을 꾸려왔다. 양육비를 받지 못했다는 말은 곧 아이가 아빠와 함께 관계가 단절되었다는 얘기기도 하다. 양육비 지급을 회피하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아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즉 양육비 미지급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일 뿐 아니라 정서적인 문제고 돌봄공백에 대한 문제라는 것이 이 대표의 말이다.
이 대표는 “어른들의 문제 때문에 아이들이 열악한 환경에 놓여서는 안 된다”며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같은 입장이다. 윤 대통령은 2022년 8월 서울 구로구가족센터를 찾은 자리에서 “자녀들이 부모의 경제적 여건 및 가족환경의 차이와 관계없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보편적 가족서비스를 강화하겠다”며 “저소득 한부모가족 및 청소년부모 아동양육비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이러한 생각이 양육비 선지급제 도입을 약속하게 된 배경이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한부모가족 중 양육비 채권이 있지만 지급받지 못하는 가구는 1만 7000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수만 명의 아이가 생존권을 위협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육비 선지급제는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줄곧 주장해오던 바다. 양육비 선지급제가 어떻게 양육비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선지급제 추진의 의미에 대해 이 대표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봤다.
양육비 선지급제란 무엇인가?
용어 설명이 필요하다. 양육부·모는 아이를 기르고 있는 한부모를 말한다. 비양육부·모는 아이를 기르지 않는 대신 양육비 지급 의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양육비 선지급제는 비양육부·모가 양육부·모에게 양육비를 주지 않고 있을 때 국가가 나서 양육자에게 양육비를 지급하고 비양육자에게서 환수하는 제도다.
원래 존재하던 제도인가?
선진국에서는 일찌감치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독일, 스웨덴, 핀란드 등에서는 양육비가 전혀 혹은 일부만 지급되거나 제때 지급되지 않을 때 국가가 기준에 따라 양육자에게 일정한 양육비를 지급하고 비양육자로부터 환수한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양육비 이행지원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기는 하다. 한시적으로 양육비를 지원하는 한시적 양육비 긴급제도도 있고, 양육비를 미지급하는 사람에게는 운전면허를 정지하거나 명단을 공개하고 출국을 금지시키는 행정제재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형사처벌을 내릴 수 있다. 효과는 크지 않다.
왜 효과적이지 않나?
제재를 받아 실질적인 피해가 있어야 비양육자가 돈을 지급할 텐데 그렇지 않으니 계속 미루는 것이다. 제재를 받는 것도 어렵다. 2월 29일 양육비이행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까지는 재판부로부터 유치장에 감치하라는 감치명령을 받아야 행정제재도 이뤄질 수 있었다. 다행히 개정안에서 감치명령을 받지 않아도 행정제재가 이뤄질 수 있게 간소화돼 조금씩 개선되고 있다. 하지만 행정제재로는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운전면허 정지만 하더라도 정지 기간이 고작 100일에 불과하고 생계가 달린 사람은 제외하는 등의 조건이 달려 있다.
형사처벌은 더 약하다.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민사사건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양형기준도 징역 1년 이하로 낮은 편이지만 구형이나 선고는 그보다 더 적게 나온다. 1억 원 넘게 미지급해도 벌금이 몇 백만 원 나오면 차라리 벌금을 내지 양육비를 안 주려고 한다. 현재까지 양육비 판결은 모두 집행유예로 나왔다. 제재를 받은 사람 중에서 양육비 전액을 준 사람은 4.6%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민사사건이 아니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양육비 미지급은 아동학대죄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양육자들이 양육비를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돈을 달라’는 의미만은 아니다. 아이를 키우는 데 두 양육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라는 것이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했다. 잘살든 못살든, 부모가 이혼을 하든, 그건 어른의 문제다. 어른의 문제 때문에 아이들이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모든 아이는 약자다. 따뜻한 돌봄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런데 양육비를 미지급한다는 것은 양육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는 방임으로 아동학대에 해당한다. 그러니 양육비 미지급 문제는 지금보다 더 심각하게 다뤄질 필요가 있다.
양육비를 지급받지 못한 양육자들은 어떻게 아이를 키우나?
마음이 아픈 사연이 많다. 몇 년 전 두 아이를 키우던 A씨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A씨의 전 남편은 매달 100만 원의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딱 한 번, 50만 원만 A씨에게 줬다. 이혼 후 5년 동안 A씨는 말 그대로 몸이 부서져라 일했다. 그러다 말기 암 판정을 받았다. 죽음을 앞두고 A씨는 전 남편을 찾아가 밀린 양육비를 달라고 사정했다. 자신이 떠나고 나서 남겨질 아이들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남편은 A씨의 호소를 외면했고 A씨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양육비 미지급 문제는 돌봄공백을 만든다. 돈이 없으니 가장이 된 양육자가 생계를 꾸려야 하고 생계를 꾸리다 보면 아이들은 제대로 된 돌봄을 받기 어렵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을 통해서 양육비 이행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다.
앞서 말했지만 제재가 실효적이지 않고 행정처분 등 제재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나도 그랬다. 2015년에 비로소 양육비 이행지원 서비스를 알게 돼서 신청을 했다. 복잡한 절차를 거쳐 번거로운 일들이 많았지만 양육비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희망에 차 있었다. 그런데 2018년 관리원에서 전화가 왔다. 아이가 성인이 돼 사건을 종결한다는 얘기였다. 양육비 소송 절차가 진행되기까지 3년이 걸렸는데 3년이 지나고 나서 보니 해당 아이가 양육비 지급 의무가 있는 미성년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때 생각했다. 내 아이의 사건은 이렇게 종결되지만 다른 아이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 아이는 자신을 외면하는 아빠 때문에 속앓이를 많이 했다. 그마저도 엄마가 알면 속상해 할까봐 속으로 삼켰다고 했다. 이런 아이들이 얼마나 많을까? 아이들이 곪은 상처를 안고 살아서는 안 된다.
양육비 선지급제가 도입되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앞서 말했듯이 양육비를 지급받기도 어렵지만 지급받으려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 서비스가 있기는 하지만 일시적이다. 양육비 선지급제는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간소하게 해결할 수 있는 제도다.
그러나 재원을 어디에서 마련하고 어떻게 미지급분을 회수할지가 문제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 보자. 독일은 선지급제를 실시하고 있지만 회수율은 높지 않다. 그럼에도 사회적 논란은 생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이를 기르는 문제는 당연히 우리가 함께 나눠야 할 책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성인은 가장 약자인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 아이가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 보편적인 돌봄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선진국 사례를 보면 양육비 선지급제에서 회수율을 따지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아이들을 안전망 안으로 끌고 온다는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
선지급제가 실시되면 양육비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나?
병행해야 할 조치들이 남아 있다.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서, 애초에 이런 문제를 안 만들기 위해서 지급률을 높여야 궁극적으로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법률상 처벌 강도를 강하게 하고 제재 절차도 더 간소하게 해야 한다. 법률 개정과 제도 시행이 동시에 진행되기를 바란다.
그 과정에서 양해연은 어떤 역할을 할 계획인가?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고 한다. 그동안 양해연은 법무법인 등과 연계해 소송을 지원하고 사례를 수집하며 실태를 알리는 일에 앞장섰다. 입법활동에도 힘썼다. 제도의 변화는 인식의 변화를 가져온다. 양육비 미지급 문제가 아동의 생존권과 관련된 문제라는 것을 제도의 변화를 통해 알리고 싶었다. 느리지만 인식도 제도도 서서히 개선돼왔다.
사무실도 없이 일하고 있다.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데 돈을 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자비로 활동하다보니 생계 문제를 겪게 된 활동가들이 많아 상근 직원을 두지 못하게 됐다. 힘들어도 이 문제를 해결해야 미래의 아이들이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해 앞장서는 활동가들을 지원하면서 밤을 새우다시피 혼자서 일한 날이 많다.
자녀가 성인이 돼 ‘내 문제’가 아니게 됐는데도 문제 해결에 앞장서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에게는 어른의 눈 안에 있는 아이들이 보인다. 어른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 뒤에 있는 아이들을 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 일은 미래세대를 위한 일이다. 우리가 자연을 잘 보존해 물려주려 하는 것도 결국은 미래세대를 위한 일인 것처럼 양육비 미지급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생존을 위협받고 있는 미래세대를 구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김효정 기자
박스기사
윤 대통령 ‘양육비 선지급제’ 약속
“약자들 국가가 직접 나서 돕겠다”
민생토론회서 밝혀
윤석열 대통령은 3월 5일 ‘청년의 힘으로 도약하는 대한민국!’을 주제로 열린 열일곱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양육비 선지급제를 조속히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홀로 아이를 키우는 한부모가족이 많이 늘었다”면서 양육비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어려움을 겪는 청년 양육자들을 지금보다 더 두텁게 지원할 것”이라는 취지에서 추진되는 것으로 “조직화되지 못한 약자들을 국가가 직접 나서서 돕겠다”는 것이 윤 대통령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신영숙 여성가족부 차관은 3월 5일 가진 브리핑에서 양육비 선지급제가 도입되기 위해서는 법적 근거와 징수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밝히며 “조속히 부처 협의를 진행해서 2024년 하반기에 도입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육비 이행지원 원스톱 서비스 지원
정부는 양육비이행관리원 등을 통해 양육비 이행지원 원스톱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한부모가족 상담전화로 상담을 요청하면 채무자의 정보를 조사하고 양육비 이행을 청구하는 절차를 지원해주는 것이다. 만약 양육비 부담에 대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협의에 이르도록 지원해주고 양육비심판청구소송이나 인지청구소송 같은 법적 절차에 대해 법률지원도 진행된다. 절차 중에도 채무자(비양육자)가 양육비를 주지 않을 때에는 추심소송을 할 수 있게 지원하고 제재조치가 내려지도록 돕는다. 양육비 지급이 꾸준히 이뤄지는지 모니터링하는 것은 물론 면접교섭도 지원한다.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 제도를 통해 양육비 미지급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양육자도 지원해준다.
한부모가족 상담전화 1644-6621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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