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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읽기의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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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린 대로 거두리라.’ 이 문구의 광고는 아트디렉터 박서원과 이제석의 합작품으로 세계 광고제를 휩쓴 문제작이다. 자신이 겨눈 총구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강력한 반전메시지를 전한다. 사람들은 포스터 같은 광고 사진을 보고 큰 충격에 빠진다. 반전에 대한 수십 권의 책보다 훨씬 직접적인 가르침을 준다. 이것이 이미지의 힘이다.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다양하다. 사당이나 절에 모셔두기 위해서 혹은 특정한 장소를 장식하기 위해서 또는 단순히 감상을 위해서 등등 여러 목적으로 제작한다. 조선 말기에 그려진 민화 ‘문자도 예’는 ‘뿌린 대로 거두리라’처럼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됐다. ‘문자도 예’는 용어 그대로 ‘예’라는 문자를 시각화한 작품이다. ‘예’라는 문자의 기본 골격은 살리되 그 문자 안에 ‘예’와 관련된 스토리와 상징물을 삽입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예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예(禮)’는 ‘시(示)’ 변에 ‘풍’ 자가 결합된 문자다. ‘시’는 하늘이 해와 달과 별의 온갖 현상을 드러내 인간에게 길흉을 알린다는 의미다. ‘풍’은 제기에 음식을 가득 담은 것을 뜻한다. 따라서 ‘예’는 제기에 음식을 풍성하게 담아 신을 섬김으로써 하늘이 드러낸 길흉을 알고 복을 얻으려는 제사와 관련된 글자다. 이런 뜻을 가진 ‘문자도 예’에는 ‘시’ 변 위에 거북이가 앉아 있고 ‘풍’의 내부에는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지내는 공자와 입에서 상서로운 기운을 내뿜는 기린이 등장한다. 그림 상단에는 ‘습례수하(習禮樹下) 기린토서(麒麟吐書) 복희시괘(伏羲始卦) 낙구부도(洛龜負圖)’라고 적혀 있다. 이것은 ‘공자가 나무 아래에서 예를 연습하고, 기린이 글자를 토해내고, 복희가 괘를 시작하고, 낙수의 거북이가 그림을 짊어진다’는 뜻이다.
도대체 이 16자의 문장이 왜 예라는 글자 속에 들어가게 됐을까? 중국 문명에서 복희는 팔괘를 창안한 전설상의 제왕으로 인류에게 최초로 문명을 가져다줬고(복희시괘) 하나라의 우임금은 낙수에서 나온 거북이의 등에 새겨진 무늬를 보고 ‘상서(尙書)’의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지었다고 전해진다(낙구부도). 따라서 거북이가 들어간 ‘시’ 변은 중국 고대 성왕의 치세를 상징한다. ‘풍’은 공자와 관련돼 있다. 공자는 인생 말년에 제자들과 함께 자신의 뜻을 받아줄 군주를 찾아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아다녔다. 그 과정에서 틈만 나면 예를 연습했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습례수하는 간략하지만 그 모습을 상징화한 그림이다. 기린은 공자의 탄생을 알리고 그의 죽음을 예고했다. ‘풍’의 맨 아래 보이는 기린은 공자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기린이 입에서 토해내는 상서로운 기운에는 ‘천지절문(天地節文)’이라고 적혀 있다. 천지절문은 예의 근원과 본질을 뜻한다. 따라서 ‘문자도 예’는 복희에서부터 시작된 중국 문화가 공자에서 완성됐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그 문화가 바로 다름 아닌 인간의 도리, 즉 ‘효제충신예의염치’라는 뜻이다. 인간의 도리를 다한 연후에야 하늘이 가르쳐준 길흉을 알고 복을 얻을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이 작품은 ‘문자도 8폭 병풍’ 중 한 폭에 속한다. ‘효제충신예의염치’는 유교 가르침의 기본 덕목인 삼강오륜의 요체이자 윤리교과서의 핵심이다. 유교 이데올로기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 유교는 사람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본 자질을 가르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가르침이 사람들 가슴속에 스며들어야 하고 스며들기 위해서는 완전히 내 것이 되도록 보고 듣고 외우는 과정을 반복하고 실천해야 한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이 있다. 기왕이면 보기도 좋으면서 그 안에 담긴 훌륭한 의미까지 되새길 수 있다면 유교를 전파하는 데 금상첨화일 것이다. ‘뿌린 대로 거두리라’가 최고의 반전광고이듯 ‘문자도 예’ 역시 유교의 핵심인 삼강오륜을 전파하는 데 최고의 광고문자이다. 이런 도상의 아이디어를 누가 가장 먼저 생각해냈는지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민화의 특성상 작가와 제작시기를 규명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북이, 공자, 기린 등이 상징하는 깊은 뜻을 알지 못한다면 ‘문자도 예’는 해독 불가능한 암호같이 쓸모없는 그림이 되고 만다. 옛 그림은 단순히 보는 그림이 아니라 읽는 그림이기 때문에 상당한 인문학적 소양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그림 읽기는 항상 어렵다. 어려운 것이 어디 그림뿐이겠는가. 사는 것은 더 힘들다. 다만 그러려니 하고 살 뿐이다. 이렇게 무던히 노력하다보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말이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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