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최남단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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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을 에는 추위 때문에 밖에 오래 나가 있을 수 없다. 창밖을 내다봐도 깜깜한 어둠뿐이다. 언제 다시 햇빛이 찾아올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신선한 과일이 그립다. 가족, 친구들도 보고 싶다. 온라인 메신저로는 아쉬움을 달래는 데 한계가 있다. 당연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곳, 여기는 대한민국의 최남단 남극 장보고과학기지이다.
장보고기지는 2014년 2월 14일 문을 연 대한민국의 두 번째 남극 기지다. 남극의 가장자리, 킹조지섬에 세운 세종기지와 달리 남극 본토, 대륙의 해안가에 위치한다. 직선거리로 4000㎞ 이상 떨어진 두 기지는 같은 남극이지만 많이 다르다. 기온은 세종기지보다 10~20도 이상 낮고, 해가 뜨지 않는 극야도 세달간 지속된다.
척박한 이곳에 기지를 세운 이유는 세종기지에서 불가능했던 연구를 하기 위해서였다. 과거 기후변화를 다시 그려낼 수 있는 빙하를 캐냈고, 얼음 밑에 영겁의 세월 동안 묻혀있던 비밀 생태계를 엿보려 하고 있다. 황제펭귄의 서식지도 갈 수 있게 됐다. 혹독함에는 그만한 보상이 있었다.
남극은 20세기 중반까지도 도전과 개척의 대상이었다. 누가 먼저 남극점에 도착하느냐를 두고 경쟁했고, 몇몇은 자기의 땅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구에 남은 마지막 청정지역을, 인류를 위한 미래 자산으로 두자고 합의하면서 논란은 가라앉을 수 있었다.
남극을 대하는 수단은 과학으로 제한했다. 그리고 과학은 남극을 인류의 공통 관심사로 만들었다. 남극이, 기후변화에 가장 심각한 피해를 보는 지역이면서 동시에 지구 전체 기후변화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과학적 증거들이 확인된 것이다. 과학적 호기심에서 인류의 생존 현안으로, 남극 연구의 목적은 보편성을 갖게 됐다.
기지는 남극 연구에서 필수 조건이다. 얼음 한 조각을 가져오려고 해도 최소한의 생활과 안전이 담보돼야 한다. 국가의 투자도 중요하지만, 기지 운영 노하우도 이에 못지않다. 지난 2022년 말, 장보고기지 앞 얼음판은 예년보다 빨리 녹았다. 얼음판은 연구 인력과 보급물자를 실은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활주로 역할을 했는데, 갑자기 그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처음 벌어진 일에 당황했지만, 장보고기지가 멈춰서는 일은 없었다. 외부의 도움을 받기 힘든 남극 기지의 특성을 고려해 평소에 여러 위기 상황을 가정하고 준비한 덕분이었다.
환자 발생 시 대응 매뉴얼은 기본이다. 사람들이 머무르고 활동하는 동안 남극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고 감시하는 것도 기지가 해야 할 일이다. 이런 요건들을 충족해야 비로소 남극을 연구할 수 있다. 남극 연구 데이터가 값비싼 이유다.
남극대륙의 면적은 인도와 중국을 합친 것보다 넓다. 기상과 운송 수단의 문제로 남극 내에서 이동도 제한되기 때문에 어느 한 나라가 남극 전역의 정보를 확보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특정 지역을 가장 잘 아는 나라는 그곳에 기지를 운영하는 나라다. 남극에서 경쟁보다 협력이 활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 정보를 주고 남의 정보를 얻는 식이다. 서로 기지 방문의 기회를 공유하기도 한다. 반대로 기지가 없을 때 대등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얼마 전 장보고기지 가까운 곳에 중국 기지가 문을 열었다. 동북아시아에서처럼 남극에서도 중국과 이웃하게 됐다. 남극의 다른 곳들처럼 두 기지는 협력하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중복되는 연구에서는 시너지를 만들고, 서로 다른 부분에서는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것으로 기대한다.
장보고기지는 대한민국의 최남단 과학기지로 지난 10년을 책임졌다. 우리 과학자들이 남위 74도, 또는 그 이남에서 연구할 수 있게 해준 안전한 보금자리였다. 우리나라는 장보고기지 덕분에 빙하와 빙저호 연구에 착수했고, 우주 천문 연구까지 꿈꾸게 됐다.
시공간적인 제약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도 결과를 내고 있다. 극지 현장에 직접 가지 못할 때 국내에서 실시간으로 연구 데이터를 받아보는 시스템을 개발 중이고, 2000㎞가량 내륙 진출로도 확보했다. 기지는 더 바빠질 것이다. 주변 지역 연구를 위한 베이스캠프에서 내륙 연구 거점 확보를 위한 지원, 여러 남극 연구 거점들을 잇는 허브 등 여러 역할이 예약돼 있다.
장보고기지에서 남극점까지 1700㎞, 장보고기지 앞에 있는 기지는 아홉 개다. 남극점과 가까운 정도가 국가의 연구 경쟁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나라가 얼마나 남극에 관심 있는지는 보여준다.
우리 앞에 놓인 기지들을 운영하는 나라 중 우리나라보다 남극 연구를 늦게 시작한 곳은 없다. 대한민국의 최남단은, 늦었지만 뜨거웠던 국민의 지지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다시 대한민국의 지평을 지구의 끝으로 넓히고 있다. 대한민국의 끝을 가꾸고 발전시키는 것. 그로부터 비롯되는 국민의 긍지와 자신감은 우리 남극 과학자의 보람이요, 국가의 자산이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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