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하는 조상이 옆에 와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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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을 보낼 때마다 의문이 든다. 모두가 명절을 좋아할까? 민족 대이동과 차례상 준비 등 번잡한 풍경 뒤에는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명절(明節)의 ‘명’은 ‘밝다’, ‘환하다’는 뜻이다. 그러니 명절은 모든 사람들이 밝고 환하게 즐겨야 하는 날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암절(暗節)이다. 특히 제수용품을 사고 허리가 휘도록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주부 입장에서는 암절 중의 암절이다.
‘감모여재도(感慕如在圖)’는 제사용 그림이다. 집안에 조상의 신주(神主)를 모시는 사당이 없거나 외지에 나가 있으면서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한 그림이다. 그래서 ‘사당도(祠堂圖)’, ‘영위도(靈位圖)’, ‘제례도(祭禮圖)’라고도 부른다. 왜 감모여재라고 했을까? 감모란 ‘사모함을 느낀다’는 뜻이고 여재는 ‘마치 앞에 있는 듯하다’는 뜻이다. 제사를 지낼 때 사모하는 조상의 혼이 제단 앞에 와 계신 것처럼 생각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마음가짐은 유교에서 조상신이 신주를 통해 강림한다는 관념을 반영하고 조상신이 강림하기 위해서는 제사를 지내는 자손의 정성과 공경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유교에서는 조상의 혼백과 후손은 같은 기운으로 연결돼 있어 서로 감응한다고 본다. 따라서 제사를 주관하는 후손에게 조상의 기운이 전해지기 위해서는 조상이 실재하는 것처럼 경건하고 진실되게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감모여재도’를 보면 팔작지붕의 사당 중앙에 빈 위패가 그려져 있고 위패 앞에는 제사상이 차려져 있다. 제사상에는 꽃병과 촛대가 좌우대칭으로 세워져 있고 그 가운데에는 과일과 찻잔이 있으며 제사상 맨 앞 바닥에는 향과 향합이 놓였다. 이런 제수용품은 향, 등, 꽃, 과일, 차를 갖춘 ‘오공양(五供養)’ 형태로 불교식 제사에서 차용한 것이다. 제사상 위의 과일은 포도, 가지, 참외, 석류, 유자, 수박이다. 수박은 씨가 보이도록 윗부분을 잘라놨다. 과일들은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제사상이 실생활을 반영했음을 알 수 있다.
사당 중앙에 그려진 빈 위패에는 지방(紙榜)을 붙인다. 지방은 종이로 만든 신주로 당일 작성해 사용한 후 제사가 끝나면 즉시 태워서 없애버린다. 신주는 조상의 신체다. 신주는 종이로 만든 지방, 나무로 만든 목주, 돌로 만든 석주, 영정으로 된 화상 등 다양하다. 쌀이 담긴 작은 단지인 신줏단지도 신주의 한 종류인데 장손 집의 시렁 위에 모셔둔다. 신주는 사당에만 모셔놓을 수 있는데 부득이하게 신주를 모시지 못할 때는 ‘감모여재도’ 같은 그림의 위패에 지방을 붙일 수 있다. 말하자면 지방은 탈부착이 가능한 일회용 신주라고 할 수 있다. ‘감모여재도’ 그림은 그대로 두고 제사 때마다 그림의 빈 위패 자리에 지방을 붙였다 뗄 수 있으니 매우 실용적이라고 하겠다. 지방의 사용은 언제 어디서든 반드시 제사를 지내기 위해 고안된 묘책임이 틀림없다. 그만큼 제사가 중요했다는 뜻이다.
자신들의 선조를 기억하고 제사하기 위해 제작된 제사도는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과 베트남 등 한자문화권에서 널리 유행했다. 이런 유행의 배경에는 조상에 대한 공경심이 크게 작용한 것도 사실이지만 제사를 지냄으로써 조상의 음덕으로 자손들이 부귀와 장수를 누리고 대대손손 번창하기를 바라는 기복심이 더 큰 동력이 됐다. 그러나 살아 있는 사람이 기꺼운 마음으로 지내지 않는 제사는 의미가 없다. 제사의 의미와 형식을 고민해봐야 할 때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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