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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이 처음부터 용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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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룡도’는 조선시대에 만든 작품입니다. 용 한 마리가 시커먼 구름을 무대 삼아 용틀임을 합니다. 그림 하단에 세찬 파도가 출렁이는 것으로 보아 용이 방금 전 물속에서 솟아오른 듯합니다. 저 거대한 몸뚱이의 용을 현실에서 맞닥뜨렸다고 생각해보세요. 기겁하다 못해 오금이 저려서 도망치기도 힘들 것입니다.
물속에서 조용히 헤엄치던 잠룡이 갑자기 하늘로 솟구친 이유는 여의주(如意珠) 때문입니다. 여의주는 말 그대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이루어주는 구슬’을 뜻합니다. 용의 여의주는 알라딘의 마술램프이고 도깨비의 요술방망이입니다. ‘운룡도’에서 용은 여의주를 잡기 위해 입을 쩍 벌린 채 크르릉거립니다. 잠시 후면 날카로운 발톱으로 여의주를 움켜쥘 것입니다. 용은 여의주를 얻어야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용이 신령한 동물이 되기까지
올해는 갑진년(甲辰年), 용의 해입니다. 용 중에서도 동쪽에 있는 청룡입니다. 동양에서는 동, 남, 중앙, 서, 북에 해당하는 다섯 가지 방위의 색을 청, 적, 황, 백, 흑으로 나타냈습니다. 이것이 오방색입니다. 올해가 용의 해이고 갑(甲)은 동쪽에 위치한 천간이니 갑진이 청룡인 것입니다. 도교에서는 동서남북을 청룡, 백호, 주작, 현무가 지킨다고 합니다. 이 네 가지 동물을 천지사령(天地四靈)이라고 부릅니다. 그중에서도 청룡은 동쪽을 지키는 신입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사신도, 즉 천지사령이 그려져 있습니다.
용은 방위신에만 포함되지 않습니다. 또 다른 그룹에서도 사령의 우두머리로 추앙받으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사령의 나머지는 봉황, 기린, 거북입니다. 이 네 가지 동물을 왜 사령이라고 했을까요? 용은 변화에 능하고 봉황은 난세를 다스릴 수 있으며 거북은 길흉을 점치고 기린은 성품이 어질고 온후하기 때문입니다. 방위신이든 사령이든 여기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모두 상상의 산물입니다. 거북이조차도 현존하는 실물과 다릅니다.
우리 민족이 상상의 동물인 용을 신령한 동물로 여긴 까닭은 용이 비를 관장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농경민족에게 물은 절대적입니다. 가뭄이 심할 때는 강에 사는 용신에게 기우제를 지내 비가 내리기를 기원했습니다. 어부들은 배 한 척에 목숨을 걸고 바다로 나아갈 때 용신제를 지냈습니다. 그런 믿음들이 점점 발전해가면서 용은 초자연적이고 강력한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신으로 추앙받았고,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 복을 주는 벽사의 선신으로 자리 잡게 됐습니다.

용과 이무기는 한 끗 차이
권력을 탐하는 자들도 용의 상징성을 자기화하고자 했습니다. 왕의 얼굴을 용안, 왕의 평상을 용상, 왕의 옷을 곤룡포라 부르고 왕의 즉위를 용비(龍飛)라고 부른 이유도 용의 신성함을 취해보겠다는 의도입니다. ‘용비어천가’도 여기에서 나왔습니다. 잉어가 용문이라는 폭포 아래에서 급류를 뛰어오르면 용이 된다는 ‘어약용문(魚躍龍門)’의 스토리도 모두 용이 가진 절대강자의 모습을 흠모한 결과 파생됐습니다.
그러나 모든 용이 처음부터 용은 아니었습니다. 용이 되지 못한 뱀은 이무기라 부릅니다. 부합되지 않는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세월만 죽이면서 살다 보면 남는 것은 심술과 독기뿐입니다. 흔히 성질이 사납고 심술궂은 사람을 보고 ‘이무기 같다’고 비난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머릿속으로는 용에 대한 거대한 로망을 품고 있지만 행동이 따라주지 않으면 이무기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 용이 되려면 용문의 거친 물살 속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헤엄쳐야 합니다. 그래야 신령함을 얻고 권능을 드러냅니다. 상상만 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봉황을 잘못 그리면 닭이 되듯이 용을 잘못 그리면 뱀이 됩니다. 용과 이무기는 한 끗 차이입니다. 처음에는 반짝 열심히 하다 작심삼일을 넘지 못하는 병도 이무기가 되는 지름길입니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용두사미(龍頭蛇尾)라고 합니다. 용의 머리에 뱀의 꼬리라는 뜻이니 처음은 좋으나 끝이 좋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행동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무기에서 벗어나 용이 되는 비법이고 여의주를 얻는 노하우입니다. 드디어 새해를 여는 설날이 다가옵니다. 올해도 힘차게 나아가 용처럼 승천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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