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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산 라면·1971년산 웨하스… 맛있는 추억이 전시된 곳 과자박물관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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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기억을 되살리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제 추억과도 같은 도시락 경험담을 설명해주실 때 가슴이 찡했습니다.”
‘근현대사 과자박물관 인천상회’를 찾은 한 관람객이 방명록에 남긴 글이다. 인천 강화군 석모도에 있는 인천상회는 자칭 추억발굴수집가 이이교(46) 씨가 만든 곳이다. 2023년 3월 문을 열고 관람객을 맞기 시작했다. 이곳에는 과자와 빵, 음료 등 제과업체 600여 곳의 제품 1만 2000점 이상이 전시돼 있다. 중장년층 이상 세대와 같은 시대를 살다 단명한 제품도 있고 지금까지 살아남은 제품도 있다. 과자마다 숨은 역사와 흥미진진한 스토리가 담겨 있다. 이 씨가 20년 넘게 전국 방방곡곡에서 수집해 과자봉지 속 추억을 살려내고 낡은 포장지에 이야기를 불어넣었다. 박물관 터는 오랫동안 방치돼 있던 옛 목욕탕 건물이다. 근처에 발굴차 들렀다가 이곳을 발견한 이 씨가 임대인과 협의한 뒤 전기 배선 작업, 인테리어 등 곳곳을 손수 고쳐 박물관으로 재탄생시켰다.
“지금부터 추억 여행이 시작됩니다. 그 시절 내가 혹은 우리 부모님이 먹었던 과자, 빵, 아이스케키를 마음껏 구경하세요.”



‘맛동산’의 원래 이름은?
이 씨의 인사말과 함께 관람이 시작된다. 전시관은 오래전 간식거리를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예를 들어 투명한 비닐 속 종이 상표가 전부였던 포장지가 어떻게 오늘날 은박 포장지가 됐는지 들여다보면 포장 기술의 변천사를 알 수 있다. 이곳은 누군가에게는 과거를 추억하고 누군가에게는 역사를 이해하는 공간이 된다.
전시관은 크게 ▲과자 ▲사탕·아이스크림 ▲라면 ▲병 ▲추억(곤로, 양은도시락통, 축음기, 공중전화기 등) 등 주제별로 구분돼 있다. 가장 먼저 1971년 판매가 10원으로 출시된 과자 ‘웨하스’의 최초 포장지가 관람객을 맞는다. 여전히 판매 중인 ‘짱구’ 과자부터 지금은 볼 수 없는 ‘자야’, ‘똘똘이’도 비슷한 시기에 처음 출시됐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인쇄 비닐 포장지가 확산됐다.
유사 제품군은 액자에 담겨 전시돼 있다. 한 액자에는 1983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판매된 ‘동물원 비스’을 필두로 10여 개 업체가 내놓은 유사품이 모여 있다. 이 씨에 따르면 40~60대 관람객은 이 과자만 보면 약속이라도 한 듯 “어? 이거!”를 외친다고 한다. “다들 잊고 살던 그 시절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 것처럼 생생하게 추억을 쏟아낸다. 처음 만난 사람들이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기억을 나누는 걸 보면 반가우면서도 울컥한다”는 게 그의 얘기다.
과자의 기원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땅콩으로 버무린 튀김과자 ‘맛동산’의 원래 이름은? 답은 ‘맛또나’다. 1975년 3월생 ‘맛또나’는 판매실적 저조로 시판 6개월 만에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나 소비자 설문조사를 통해 ‘온갖 고소한 맛이 모여 있다’는 뜻의 ‘맛동산’으로 개명한 후 장수 과자가 됐다. 국내 최초 라면형 과자 ‘뽀빠이’는 1960년대 라면공장 직원들이 라면 부스러기를 가지고 나와 학교 앞 문방구에서 튀겨 팔았던 것이 제품화돼 국민 과자가 됐다.
같은 과자를 두고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광경도 흥미롭다. 가족 관람객이 한 과자 앞에 서더니 부모는 “다이제스티브”, 딸은 “다이제”라고 불렀다. 둘 다 맞는 이름이다. ‘다이제’의 시초는 1982년 오리온이 영국 맥비티와 기술 제휴해 만든 ‘다이제스티브’다. 1997년 제휴가 끝나면서 ‘다이제’라는 독자 브랜드로 지금까지 판매되고 있다.





신기해서 웃고 추억에 울고
2023년 품귀 현상을 빚었던 ‘먹태깡’이 사실은 1985년 ‘명태맛깡’으로 이미 출시됐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씨는 “‘명태맛깡’이 1986년 유행한 만화 ‘쾌걸 조로’의 이름을 따 ‘노가리제트’가 됐다가 단종됐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타잔’, ‘호호아줌마’, ‘아톰’ 등 인기 있는 만화 주인공의 이름을 딴 과자봉지들이 벽에 걸려 그 당시의 시간을 소환하고 있다.
라면의 경우 포장이 뜯기지 않은 채 전시된 것이 다수다. 과자봉지는 땅에서 발굴한 것이 대다수인 반면 라면은 주로 폐가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 씨는 땅과 폐가 외에도 유품정리사를 통해 옛 물건을 수집한다. 수십 년 전 발행된 신문, 잡지, 상장 등은 그렇게 모았다.
술병, 잉크병, 음료수병 등 우리나라 병의 역사가 진열된 공간도 있다. 1960년대까지는 제조 기술이 부족해 병 모양이 균일하지 못하다가 1970년대부터 일정한 모양의 병들을 볼 수 있다. 삼성이 고 이병철 창업주 시절 생산한 소주병도 눈에 띈다.
관람객의 연령대는 다양하다. 아빠 손을 잡고 둘러보는 초등학생부터 엄마를 모시고 온 중년, 친구끼리 단체 관람하는 노년도 있다. 연령대별로 표정도 다양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수동 타자기를 보고 신기해 하는 어린이, 옛 이야기를 나누며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활짝 웃는 관람객이 있는가 하면 오래된 과자 앞에 서서 어깨를 들썩이는 이들도 많다. 이 씨는 최근 60대 딸과 80대 노모가 찾아와 관람하다가 양은도시락통이 진열된 곳에 서서 눈물을 쏟는 모습을 봤다. 사연인 즉 엄마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이민을 간 딸이 그리워 딸의 도시락통을 매일 쓰다듬었다고 한다. 양은도시락통을 보자 엄마는 그때의 그리움이, 딸은 미안함이 떠올라 눈물을 흘린 것이다.
이 씨는 더 많은 사람에게 추억을 선물하고 싶어 과자박물관을 만들었는데 자신도 추억을 선물받는 곳이 됐다고 했다. 관람을 마친 한 중년 남성이 벌겋게 충혈된 눈을 비비며 머쓱하게 웃었다. 입장료(6000~8000원)로는 운영비 감당이 안 되지만 사비를 들여서라도 이 씨가 이곳을 끝까지 지키고 싶은 이유다.

이근하 기자

박스기사
추억발굴수집가 이이교 씨



“과자 봉지 주우려다 죽을 뻔…
식품 역사 보여주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

다섯 살, 호미 하나 쥐고 산에 올랐다. 큰어머니를 따라 약초를 캐러 다니던 시절까지 따지면 이이교 씨의 수집 경력은 40년이 넘는다.
“보라색 꽃을 따서 큰어머니께 드리면 ‘부라보콘’이나 ‘환타’를 주시더라고요. ‘어? 약초를 따면 간식이 생기네’ 하면서 혼자 약초 캐러 다녔어요. 다섯 살 아이가 그랬다고 하면 믿기 힘들겠지만 그 시절 시골에선 그렇게 살았어요.”
성인이 된 뒤론 약초를 캐 담금주를 만들었다. 담금주를 보관할 옛 술병들이 필요했다. 산 속 땅을 파면 누군가 묻어 놓은 술병들이 나왔다. 땅을 파다 보면 수십 년도 더 된 물건들도 나왔다. 남들이 보기엔 쓰레기였지만 그에게는 보물 같았다. 그 재미에 더 땅을 파고 다녔다. 그렇게 ‘추억발굴수집가’가 됐다.
추억을 찾아 떠나는 일로 돈을 벌 순 없었다. 건설현장에서 전기업자로 일하며 돈을 모아 그 돈으로 장비를 사서 이곳저곳에서 추억을 캐고 다녔다. 전국을 오가며 일할 수 있는 전기업자가 된 진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지적편집도를 토대로 발굴 장소를 모색했다. 현재는 산이지만 과거에는 사람이 살았던 곳 위주로 골랐다. 특히 으슥한 폐가는 절대 지나칠 수 없었다. 2020년에는 경남 통영시 가왕도(무인도)에 발굴을 하러 갔다 풍랑 탓에 섬에 갇혔다. 식량이라곤 점심 식사용으로 챙긴 빵 몇 조각이 전부였다. 주린 배를 쥐고 폐가에 들어가 곳곳을 뒤졌다. 소금으로 채워진 장독대 안에서 2003년산 라면을 찾았다. 기름이 채워진 곤로 옆에는 성냥까지 있었다. 근처 우물에서 길어온 물에 그 라면을 끓여먹었다.
“배탈이요? 전혀요. 오래된 라면이라 냄새가 나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소금 덕분인지 괜찮았어요. 어릴 때 유통기한이 1년 이상 지난 라면을 먹는 건 일상이었어요(웃음).”
위험한 순간도 많았다. 수풀 사이로 보이는 라면 봉지를 들췄다가 땅벌 100여 마리의 공격을 받고, 뾰족한 쑥대 끝에 눈이 찔려 실명 직전까지 갔다. 절벽에 걸린 라면 봉지를 주우려다 굴러떨어진 적도 있다.
“땅벌 사고는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네요. 순식간에 옷 안으로 다 들어오는데 어휴, 옷이고 장비고 다 집어던지고 30분을 뛰어서 내려왔어요. 혼미해지는 정신을 붙잡고 병원까지 가느라 혼났어요.”
생사를 넘나들면서 수집을 이어간 데는 추억이 주는 가치 때문이라고 했다. 오래된 빵 봉지와 라면 봉지를 볼 때면 어머니 생각이 가득해진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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