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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간 4000여 명 변호 “피고인이 써준 수백 통 손편지가 최고의 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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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우수 국선변호인 최운희 변호사
“처음 국선변호사님 선임되고 얼마나 신경 써줄까 싶어 항소를 포기할까 생각했습니다. 변호사님을 만나고 그런 의심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보자고 다짐했습니다. 재판 때 변호사님께서 마지막 발언하시는 모습 보고 항소심 하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2022년 9월 최운희 국선전담변호사가 한 피고인에게 받은 편지다. 2010년부터 14년간 피고인 전담 국선전담변호사를 해온 최 변호사는 이런 손편지만 수백 통을 받았다. 자신의 일처럼 나서준 변호사를 위해 수임료도, 값비싼 선물도 줄 수 없었던 가난한 피고인들은 이렇게 마음을 선물했다. 당장 먹을 밥 한 끼 값이 없었던 어느 노숙인은 홍시 3개를 사무실 앞에 두고 가기도 했다. 고향에서 잡아온 낙지를 몰래 두고 가는 바람에 사무실 벽에 낙지가 붙어 있던 적도 있다.
14년 동안 최 변호사가 변호한 피고인은 4000명이 넘는다. 매년 300명 정도의 변호를 맡아온 셈이다. 이 수고와 헌신을 인정받아 2023년 1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선정하는 ‘우수 국선변호인’에 선정됐다. 최 변호사는 “우수 국선변호인상도 기쁘지만 내가 변호한 이들에게 받은 편지와 정성이 내게는 상장이자 훈장”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국선변호인 제도가 생긴 건 2004년이다. 체포과정에서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다”는 미란다원칙이 고지되지만 이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변호인이 있어야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는 형사사건에서 피고인이 변호사를 스스로 구하지 못하거나 구하지 않을 때 법원에서 ‘국선변호인’을 선임해준다. 형사소송법 제33조는 미성년자, 70세 이상, 농아자, 심신장애가 의심되는 사람, 구속된 사람, 최하 3년 이상의 징역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이 형사재판을 받을 때는 반드시 변호사가 선임돼야 한다고 규정한다.
다시 말해 ‘유죄’ 확률이 높은 피고인의 재판에 국선변호사가 투입된다는 이야기다. 이미 경찰 수사와 검찰 조사가 완결된 사건의 재판 개시 후 변호사는 피고인의 곁에 선다. 국선변호사는 ‘누구든 공평하게 법의 심판을 받도록’ 돕는 사람이다. 2023년 기준 검찰 인지사건이 무죄를 받는 경우는 단 3%에 불과했다. 국선변호사는 이 3%의 확률을 지나치지 않기 위해 산더미 같은 사건 자료를 읽는다. 최 변호사는 “국선변호를 오래할수록 소명의식과 책임감이 커진다”고 말했다. 국선변호사는 변호하는 대상이 주로 사회적 약자다. 최 변호사는 자신마저 물러서면 이들에겐 아무도 없다는 생각으로 재판정에 선다.

2010년 사법연수원 수료 후 14년 동안 줄곧 국선전담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이유가 있을까?
사법연수원 수료 당시 일기에 ‘이제 그만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주위를 돌아보는 삶을 살자’고 썼던 기억이 난다. 법대 입학부터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을 수료하는 모든 과정은 ‘나를 위한 공부’였다. 국선전담변호사는 의뢰인에게 수임료를 받지 않는다는 면에서 외부요인에 영향받지 않고 독립적이면서 객관적으로 사건을 볼 수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도 양질의 변호를 받아야 공정한 사회다. 법적 조력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억울한 사정을 들어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국선전담변호사의 경쟁률이 꽤 높다고 들었다. 오래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처음 시작할 당시 10대 1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국선전담변호사는 2년에 한 번씩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그리고 6년이 지나면 다시 처음부터 서류를 접수해야 한다. 간혹 영화나 드라마에서 국선변호사가 사건을 귀찮아하거나 성의 없게 대하는 모습을 그리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과는 많이 다르다. 2004년 국선전담변호사 제도가 생기기 전에는 변호사들이 돌아가면서 국선변호를 맡기도 했는데 그땐 변호사 수도 적고 자신이 맡은 사건과 병행해야 하니 그랬을 수 있지만 전담 제도가 생긴 후 그런 일은 드물다.

최근 드라마에서 거대 로펌과 싸우는 국선변호사가 화제가 됐다.
피고인 중에는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피해의식을 갖는 경우가 있다. 이 역시 사실과는 많이 다르다. 실제로 재판에 참여해보면 변호사도 검사도 판사도 모두 제 역할을 충실히 한다. 처음 피고인을 만나면 “재판은 공정하게 이뤄지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킨다. 나는 ‘국민참여재판’을 많이 한 편인데(국민참여재판 제도 안착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대한변호사협회 ‘우수변호사상’을 받았다) 많은 국민이 “실제 재판에 참여해보니 생각했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고들 한다. 국민참여재판은 일반 재판에 비해 품이 많이 든다. 보통은 10분 내외로 마치는 재판이 하루종일 걸리기도 한다. 덕분에 피고인도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들도 모두가 ‘충실한 재판을 하고 있다’는 걸 체감한다.

형사사건만 4000건 넘게 담당했다. 1년에 300건이 넘는 재판을 한 셈이다.
한 사건이 1년 넘게 걸리기도 하니 늘 동시에 여러 사건을 함께 진행한다. 거의 쉬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2020년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 다음날에도 출근했다. 얼마 전 교통사고가 났는데 피고인과 약속이 돼 있어서 병원이 아닌 사무실로 왔다. 국선전담변호사는 개인사업자라 월차나 휴가의 개념이 없다. 그래서인지 10년 이상 국선전담변호사를 하는 사례가 드물기는 하다. 나는 경력이 쌓일수록 사건을 다양한 관점에서 볼 수 있고,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지더라. 국선전담변호사는 시작할 때의 패기와 열정도 중요하지만 사건을 보는 안목과 경험도 중요하다.

국선변호를 맡았던 첫 사건이 기억나나?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위반 사건이었고 불법 게임장에서 종업원으로 일한 20대 피고인을 변호했다. 피고인의 자백도 있고 벌금형이 예상되는 비교적 경미한 사건이었음에도 피고인과의 첫 상담이 매우 떨렸다. 국선변호를 오래하다 보니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많다. 법정에서 변호사가 우는 경우가 잘 없는데 국선전담변호사가 된 지 얼마 안 돼 최후변론을 하던 중 피고인의 딱한 사정을 생각하니 북받쳐 흐느끼느라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피고인 중에는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있다. 두렵지 않나?
대부분의 피고인은 국선변호에 고마워하지만 간혹 공격적이거나 국선변호사를 비서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사무실에 비상벨을 설치했을 정도다. 이런 경우 피고인과의 신뢰 형성이 어렵고 정신적 스트레스도 크다. 또 환각, 환청, 피해망상 등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고인의 경우 논리적인 상담이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피고인을 변호하지 못하겠다고 재판부에 사임허가 신청을 한다면(국선변호인은 법원에 사임허가 신청을 하고 허가를 받아야 사임하게 된다) 다른 동료 국선변호사에게 가게 된다. 그래서 맡은 사건은 끝까지 맡아 책임지려고 하는 편이다.



피의자 혹은 범죄자를 국가가 변호해주는 데 대해 사람들의 반감도 있지 않나?
국선변호인은 피해자를 위한 국선변호사와 피고인을 위한 국선변호사가 있다. 피고인 변호사 중에도 오로지 국선 사건만 전담하는 국선전담변호사와 다른 사건 수임이 가능한 일반국선변호사로 나뉜다. 만약 내가 국선전담변호를 하지 않았더라면 기초생활수급자, 마약중독자, 장애인, 정신질환자 등 우리 사회 각층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만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죄를 지었다고 해도 누군가 그의 사정을 들어주고 공정한 법 집행을 받도록 해야 한다. 그중에는 억울한 사례도 있다. 억울한 피고인이 무죄판결을 받았을 때 성취감은 정말 크다. 피고인이 잘못을 저지른 경우에도 자신의 죄를 깨닫고 바른 삶을 살아가는 데 조금이나마 영향을 끼쳤다면 그보다 뿌듯한 일이 없다. 범죄자라도 죄를 뉘우치고 재기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선변호사 후배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나?
국선변호를 하면서 어려운 가정에서 자란 수많은 피고인을 만났다. 만약 내가 피고인들과 같은 처지였다면 과연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법조인들 대부분 좋은 환경에서 공부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에 빚진 자들이 아닌가 싶다. 부채감을 가지고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면 좋겠다. 오늘 만나는 피고인을 나쁘게만 바라보지 말고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주길 바란다.

국선전담변호사 수는 2006년 42명에서 2021년 234명으로 늘어났다. 국선변호인 선정 건수는 2016년 이후 매년 약 12만 건을 기록하고 있다. 2021년 형사 공판사건 피고인의 34%에 국선변호인이 선정됐다. 국선전담변호사의 역할과 비중은 점점 커지는데 이들에 대한 처우는 제자리다. 국선전담변호사의 월 보수는 세전 월 600만~800만 원 선이다. 이 비용으로 사무실 운영비, 직원 월급 등 일체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퇴직금도 없고 4대 보험도 적용되지 않는다. 최 변호사 역시 14년째 같은 보수를 받고 있다. 그 사이 사무실 직원 월급은 2배로 올랐고 물가도 올랐다. 최 변호사처럼 10년 이상 자리를 지키는 국선변호사가 점점 더 드물어지는 이유다. 그는 “후배들에게도 사명감만으로 버티라 하기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2023년 서울고법 국선전담변호사 10명 중 4명이 퇴사했다. “보수의 현실화가 이뤄져야 국선전담변호사 제도가 탄탄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유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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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변호사 지원 확대 법 개정 추진

살인?강도 등 특정강력범죄 피해자 지원 대상 추가
앞으로 형법상 일반 살인, 강도 등 ‘특정강력범죄’ 피해자까지 국선변호사 지원이 확대된다. 법무부·보건복지부·여성가족부는 2023년 12월 27일 범죄피해자의 권익 보호를 위한 형사소송법, 특정강력범죄법, 성폭력처벌법, 아동학대처벌법, 스토킹처벌법, 장애인복지법,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 인신매매방지법 등 8개 법률 개정안을 2024년 2월 6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먼저 ‘특정강력범죄법’ 개정안에 따르면 앞으로 특정강력범죄법이 중대범죄로 규정한 ‘특정강력범죄’도 피해자 국선변호사 지원 대상에 추가된다. 기존의 성폭력, 아동·장애인학대, 인신매매, 스토킹 외에 형법에 규정된 일반 살인, 강도와 폭력행위처벌법에 규정된 조직폭력 등의 피해자들도 보호받을 수 있게 된다. 19세 미만이나 심신미약 장애인 피해자에게는 국선변호사를 의무적으로 지원하고(스토킹범죄는 예외) 그 밖의 경우에는 사안마다 선별해 지원한다.
최운희 변호사는 “형사사건에 있어 피해자를 대변하는 것은 검사다. 이 때문에 피해자는 재판 절차에 있어 소외된 느낌을 받기 쉽다. 모든 사건 피해자에게 국선변호인을 선임해주는 것은 현실적인 한계가 있지만 적어도 중대범죄의 경우에는 피해자에 대해서도 국선변호인을 선임해 법률적 조력을 받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바뀐 개정안에 따라 피해자에게도 국선변호인이 선임된다면 직접 재판에 나서지 않더라도 국선변호인을 통해 재판부에 의견을 개진할 수 있고 피고인(가해자)과의 합의 과정도 국선변호인이 대신 진행하는 등 절차 진행에 있어서 편의 및 심리적 안정 효과도 거둘 수 있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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