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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만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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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공항과 인접한 아름다운 해안도로. 제주 도두동 무지개 해안도로│우희덕

1. 제주국제공항과 인접한 아름다운 해안도로. 제주시 도두동에 있는 무지개해안도로를 걷는다. 한 청년이 무슨 영문인지 나를 반기며 달려오다시피 한다. 어리둥절해하는 내게 그는 거침없이 무언가를 건넨다. 휴대전화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말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사진 촬영이 그렇게 들뜬 목소리로 해야 하는 부탁인가 생각하던 찰나 한 사람을 더 발견한다. 몇 걸음 뒤에서 여자 친구로 추정되는 인물이 옷매무새를 분주히 가다듬고 있다.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밝은 기운이 뭔가 불길하다.
이 시간 이후부터 인류 최고의 발명품은 셀카봉과 삼각대다.
하트! 뽀뽀! 제주 최고!
그들은 남들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없이 커플이 할 수 있는 모든 포즈를 연출한다. 지나친 애정과 풍부한 표현력을 과시한다. 부끄러움은 누구의 몫인가. 족히 스무 장은 찍어준 것 같다. 그들에게는 그저 멍하니 걷는 내가, 혼자인 내가 사진을 대량으로 찍어줄 적임자로 보인 것이다. 먼바다를 바라본다. 내가 이러려고 모든 걸 내려놓고 제주에 왔구나. 산전수전 다 겪으며 모진 세월을 견뎌왔구나. 나를 불타오르게 만드는 건 한여름의 태양만은 아닐 것이다.

2. 무더위와 짜증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시원함. 서귀포시 돈내코유원지 안에 위치한 원앙폭포는 물놀이하기 좋은 계곡이다. 제주에서 이곳보다 시원한 장소는 찾지 못했는데 마음속 번뇌가 한순간에 오그라들 정도로 물이 차갑다. 나는 발목만 담그고도 득도할 것 같은 기분에 빠져 있었고, 계곡 한가운데에는 겁 없는 아이처럼 첨벙이던 남자가 있었다. 처음엔 긴가민가했지만 그였다. 제주 여행에 한창 빠져 있던 시절 종종 들르던 게스트하우스 사장이었다.
반가운 마음도 잠시,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그는 10년 넘게 하던 일을 접고 이제 곧 서울로 올라간다고 했다. 누군가는 서울로 가고, 누군가는 제주로 온다. 누군가는 제주에서 첫 여름을 보내고, 누군가는 마지막 여름을 보낸다. 얼음장 같은 계곡물이 흐르는 원앙폭포에서 여름과 겨울이 교차했다.

3. 아이스크림 하나로 행복해질 수 있다면 여름이 그렇게 괴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제주 동문시장에 자주 들르면서도 그런 풍경은 처음이었다. 시장 안쪽 상점에서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닌, 시장 주변 인도를 따라 좌판을 벌여놓고 물건을 파는 할머니들. 주로 채소나 나물, 소소한 것들을 취급하는 네다섯 명의 할머니가 붕어 모양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으며 환하게 웃는다. 제주 할머니들은 늘 무뚝뚝한 이미지였는데 저렇게 밝게 웃는 모습은 처음이다. 할머니들의 대화에서 웃음꽃이 피어난다. 제주 방언이 상당수 섞여 있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데 행복을 표현하는 언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다.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나온다. 뜨겁던 여름이 녹아내린다.
결국 여름의 괴로움은 지나갈 것이고 행복은 찾아올 것이다. 언제 찾아올지 알 수 없는 커다란 행복을 기다리기보다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작은 행복을 지나치지 않는다면.

우희덕 코미디 소설가_ 장편소설 로 제14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벗어나 본 적 없는 도시를 떠나 아무것도 없는 제주 시골 마을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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