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위의 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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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31일 늦은 저녁,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출발해 카자흐스탄의 알마티까지 가는 비행을 시작했다. 다른 직장이라면 일찍 퇴근해서 가족 또는 연인과 시간을 보내겠지만 파일럿에겐 어려운 이야기다. 남들 쉴 때 더 바쁘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어두운 밤하늘은 여느 때와 같다.
이륙을 하고 곧 순항고도에 이르렀다. 커피 한잔을 들이키자 옆에 있던 캡틴(기장)이 말을 건다. “곧 새해인데 우리는 하늘 위에 있네.” “그렇네요. 다들 지금 새해를 준비하고 있을 텐데요.” 캡틴은 체코 사람이다. 국적 다른 남자 둘이서 딱히 할 말이 별로 없다. 몇 마디 나누고 다시 정적이 흐른다.
조종석 밖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지난 한 해 무엇을 했나. 보통 직장인의 새해 결심 세 가지가 ‘살 빼야지’, ‘운동해야지’, ‘책 읽어야지’라는데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해놓은 것이 하나도 없이 일 년을 보낸 것 같다. 한숨이 나온다. 한국의 가족이 생각난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머나먼 중동에서 이렇게 있나 싶다.
“2024년이 시작됐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정적을 깬 것은 이란의 관제(ATC)에서 들려온 밝은 목소리였다. 파일럿들은 비행을 할 때 관제와 항상 쌍방향으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관제는 해당 국가의 영공을 통과하는 항공기를 관리하는 서비스를 뜻한다. 모든 항공기는 이 관제의 관리를 받아야만 한다. 시계가 2023년에서 2024년으로 넘어간 순간, 관제에서 “Happy New Year!(해피 뉴 이어)”라고 인사를 건넨 것이다.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저 관제사도 가정이 있고 오늘 같은 날 쉬고 싶을 텐데 이렇게 밝은 목소리로 새해를 축하해주는 걸 보니 ‘역시 프로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 있던 캡틴이 말한다. “오늘 비행 끝나면 체코에 가서 가족과 함께 일주일간 휴가를 보낼 거야. 빨리 가고 싶다.” 그는 행복해 보였다. 나도 배시시 웃었다.
나만 그렇겠나. 지나간 시간에 미련이 있을 것이다. 잘 안 된 것도 있을 테고 실패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것은 두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삶의 방향이다. 2024년에는 많은 사람의 소원이 이뤄졌음 좋겠다. 올해 개인적인 목표는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이다. 쌍둥이가 곧 태어난다. 국내 출산율 제고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조종석에서 바라보면 하늘 위에도 지상에도 별이 있다. 하늘의 별도 지상의 별도 스스로 빛을 낸다. 우리 모두 반짝반짝 빛이 나는 2024년이길, 해피 뉴 이어!
원요환
프로N잡러 중동 파일럿. 국내 경제지 기자 출신으로 지금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민항기 조종사로 일하고 있다. 이외에도 작가, 리포터, 콘텐츠PD 등으로 활동 중이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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