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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개국 상대로 1년 넘게 선거 운동 검사·변호사 경험 살려 공정 재판 이끌어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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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형사재판소 재판관 당선된 백기봉 변호사
2023년 12월 6일 미국 뉴욕에서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 ICC) 재판관 선거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한국의 재판관 후보인 백기봉(59) 변호사가 당선됐다. 6명의 재판관을 뽑는 선거였는데 몽골, 프랑스, 슬로베니아, 루마니아, 튀니지에서 온 후보자들이 백 변호사와 함께 선출됐다.
ICC는 집단살해죄, 인도에 반한 죄, 전쟁범죄, 침략범죄 등 중대한 국제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처벌하기 위해 2002년 설립됐다.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에 따른 것으로 인류 최초의 상설 국제재판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소와 극동국제군사재판소가, 1990년대에 르완다와 유고 전범재판소가 설치된 적이 있지만 모두 일회성 재판소였다.
백 변호사의 당선으로 우리나라는 ICC 설립 이후 4회 연속 재판관을 배출한 나라가 됐다. 송상현 재판관이 2003~2006년, 2006~2015년 두 번 ICC 재판관을 역임했고 정창호 재판관은 2015년부터 현재까지 ICC 재판관으로 재임 중이다. 백 변호사는 2024년 3월부터 재판관으로 활약하게 된다. 임기는 9년이다.
백 변호사는 1992년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22년간 검사 생활을 마치고 2014년부터는 김앤장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ICC 증거법 등에 관한 연구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에 파견근무를 하며 국제 범죄, 테러 및 부패 방지 문제에 대한 국제협력에 기여했다. 법조인으로서는 드물게 국제법 분야를 학문과 이론 양쪽에서 경험한 셈이다. 백 변호사를 2023년 12월 22일 외교부 청사에서 만났다.

선거 운동 기간이 길었다고 들었다.
2022년 11월에 한국 후보로 지명됐다. 2023년 6월에 개별 인터뷰를 하고 2023년 11월엔 다른 후보들과 함께 원탁토론을 했다. 중간중간 122개국 당사국들의 관계자들을 만나 ICC 재판관이 되면 어떻게 기여하고 싶은지 설명했다.

한국 검사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ICC 재판관이 됐다.
그렇다. 송상현 재판관은 대학교수였고 정창호 재판관은 판사였다. 현재 재임 중인 18명의 재판관을 보면 절반 정도가 판사 출신이다. 나처럼 검사와 변호사 업무를 오래한 사람이 선출된 건 드문 일인 것 같다. 검찰 시각과 변호사 시각에서 다양하게 사건을 본 것이 공정한 재판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개별 인터뷰와 토론에선 어떤 질문을 받았나?
ICC도 결국 재판소이니 국제형사법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토론에서는 ICC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재판관으로서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에 대해 답했다. 시민단체들도 토론에 참여해서 질문을 한다. 피해자들 관점에서 어떻게 ICC가 나아가야 하는지 거시적인 질문들을 했다.

어떻게 답을 했는지 궁금하다.
‘나는 검찰에서 근무했고 변호사로도 일했다. 재판에 참여하는 분들의 입장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답했다. ICC에는 소추부라고 해서 범죄를 수사하고 기소하는 부서가 있다. 소추부에 더 많은 무게가 실릴 수 있는 구조다. ICC가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재판관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강조했다. 피해자들의 피해를 구제하는 절차가 좀더 빨리 진행될 필요가 있다는 입장도 피력했다.

백 변호사는 ICC 재판관 후보의 자질을 검증하는 재판관 후보자 자문위원회에서 가장 높은 등급인 ‘매우 우수(highly qualified)’ 평가를 받았다.



투표에 참여하는 나라의 관계자들을 만나고 다녔다고 들었다.
123개국 중 우리나라를 빼면 122개국인데 이 중 100개국 이상과 접촉했다. ICC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게 사실 쉽지 않았다. 나라별로 관심사가 다르더라. 서구 국가들은 규범에 기초한 국제 질서를 재판관으로서 잘 이해하고 구현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더 맞추는 반면 아프리카 국가들은 ICC의 공정성과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한 입장을 궁금해 하는 식이다. 한국의 정보기술(IT)이 법률 업무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관심을 갖는 나라들도 있다.

디지털 포렌식 기술에 대한 관심이었나?
ICC 수사관들이 직접 현장에서 수사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그 나라 법 집행기관의 도움을 받긴 하지만 사실상 디지털로 정보 수집을 한다. 위성사진으로 집단학살이나 반인도적 범죄 여부를 분석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한국이 IT강국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더 관심을 갖더라. ICC의 과제 중 하나가 어떻게 하면 업무 과정을 현대화하는가다.

변호사로 쭉 일할 수 있는데 왜 ICC 재판관에 뜻을 뒀나?
검찰에 있을 때 국제 업무를 경험하고 ICC에도 관심을 가졌다. 법무부 검찰4과(현 국제형사과)에서 근무했고 UNODC에 두 차례 파견돼 근무했다. ICC에 대해 두 차례 논문도 썼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는데 이때 쓴 논문이 ‘ICC 소추관의 독립성 연구’였다. 박사학위는 ‘ICC 증거법에 관한 연구’로 받았다.

이력이 마치 ICC 재판관이 되기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것 같다.
선거 유세를 하면서 그런 반응을 보이는 분들을 자주 만났다. 그러면 이렇게 답했다. ‘인생을 살다 보면 관심 갖게 되는 분야가 생기지 않느냐, 나한테는 이것이다. 내 마지막 목표 지점에 와 있다.’ 검찰에 있으면서 늘 ICC에서 일해보고 싶었다. 나에겐 멀고 높은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2022년에 기회를 만났고 도전한 결과가 지금이다.

ICC의 공식 언어는 영어와 프랑스어다. 영어로 재판을 진행해야 한다. 영어는 언제 익혔나?
영어가 필요한 업무를 자주 맡았다. 검찰에 있으면서 영어로 업무를 하는 국제형사 업무를 담당하고 UNODC에 파견돼 오스트리아 빈과 태국 방콕에서 근무했다. 대검찰청에서는 외신대변인을 했다. 검찰을 떠나 변호사로 일할 때도 국제변호사들과 함께 일하며 영어 문서를 읽거나 작성하곤 했다.

외국에서는 한국의 사법시스템과 발전 수준을 어떻게 평가하나?
검찰에서 국제 업무를 한 게 20여 년 전이다. 당시와 비교해보면 지금 한국의 법률 수준은 비교할 수 없이 향상됐다. 법률가로서 얘기를 나누면 상대국의 법률적인 수준을 금방 느낄 수 있다. 외국 법률가들과 대화할 때 우리나라의 기본적인 법학 지식이나 판례들을 가지고 얘기하면 금방 통한다. 상대방도 한국의 사법시스템이나 국제법·형사법에 대해 신뢰한다는 걸 느꼈다.

ICC 국제형사재판이 국가 차원의 형사재판과 다른 점이 있나?
첫째, ICC가 다루는 범죄는 네 가지로 정해져 있다. 집단살해죄, 인도에 반한 죄, 전쟁범죄, 침략범죄다. 둘째, 공소시효가 없다. 한번 체포영장이 발부되면 해당 인이 사망할 때까지 유효하다. 셋째, 피해자에 대한 보상·권리 보장이 주요 목표다. 재판 과정에 피해자가 참여할 수 있다. 재판 이후 범죄 피해자들이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이 자세히 규정돼 있는 게 특징이다.

ICC에서 범죄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해주기도 하나?
원칙적으로는 처벌받은 피고인, 즉 가해자가 배상을 해줘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배상할 돈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별도 기금이 있다. ‘피해자들을 위한 기금(Trust Fund for Victims)’이다. 많은 나라들이 여기에 자발적으로 기여금을 내고 있다. 이 기금으로 배상을 해준다. 재판소가 대신 배상을 해주는 셈이다.

ICC가 처벌뿐 아니라 실질적인 피해 회복도 해준다는 게 인상적이다.
물질적 배상뿐이 아니다. ICC가 다루는 범죄를 보면 어느 지역사회가 통째로 학살되는 등 한 사회가 피해를 본 경우가 많다. 그 사회가 피해에서 회복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수립해 운용한다. 피해자 배상 프로그램의 일부분이다.

ICC 재판관으로서 어떤 것을 이루고 싶은지 궁금하다
공정하고 독립적인 재판이 이뤄지도록 기여하는 게 가장 중요하고 거시적인 목표다. ICC 재판 과정을 보면 국제법과 형사법이 함께 적용된다. 형사법도 대륙법과 영미법이 합쳐져 있다. 그래서 재판관이 국제법 출신인가 형사법 출신인가, 형사법 중에서도 대륙법 출신인가 영미법 출신인가 등 법학적 출신 배경에 따라 재판이 경도될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을 어떻게 조화롭게 이해하고 결정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재판관들 사이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나?
그렇다. 3명의 재판관이 함께 참여하는데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 탐색하고 합의를 이뤄내는 게 두 번째 목표다. 세 번째 목표는 ICC 업무 관행이 개선되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하주희 기자

박스기사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어떤 곳?



전범 등 개인 범죄자 처벌
한국 83번째 가입국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 범죄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국제 재판이 열렸다.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과 극동국제군사재판이다. 이후 전범 처벌을 위한 상설 재판소를 만들자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세계 120여 개국은 1998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반인도 범죄 등을 처벌하기 위한 다자 조약’인 로마 규정을 체결했다.
로마 규정에 따라 2002년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설립됐다. ICC의 본부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다. 로마 규정에는 2023년 1월 현재 총 123개국이 가입해 있다. 우리나라는 2000년 로마 규정에 서명하고 2002년 비준했다. 83번째 가입국이다. 중국과 러시아, 북한은 가입하지 않았다.
ICC는 중대한 범죄에 책임이 있는 개인을 소추해 처벌한다. 유엔 사법 기구인 국제사법재판소(ICJ)가 국가 간 법적 분쟁을 다룬다면 ICC는 범죄자 개인을 재판한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국가나 군부 등 집단에 대한 관할권은 갖고 있지 않다. 재판부는 전심부, 1심부, 항소심부로 구성된다. 현재 재판소장은 폴란드 출신의 피오트르 호프만스키다.
ICC는 로마 규정에 가입한 나라, 즉 당사국에 한해 관할권을 갖는다. 비가입국이라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수사를 요구할 경우 관할권을 갖게 된다. 대표적인 예가 수단의 독재자 오마르 알바시르다. 오마르 알바시르는 ‘다르푸르 학살’을 일으켜 민간인 수십만 명을 죽였다. ICC는 2008년 알바시르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ICC가 설립된 후 최초의 구속영장이었다. 2012년엔 찰스 테일러 전 라이베리아 대통령에게 징역 50년형을 선고했다. 시에라리온 내전에서 저지른 11가지 반인도주의 범죄에 대한 처벌이었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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