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수무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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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이 되면 한 해를 열심히 살아온 내 마음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사자성어를 골라본다. 올해 뽑은 사자성어는 ‘속수무책(束手無策)’이다. ‘손이 묶여 대책을 세우지 못한다’는 말로 해결할 방법이 없어 곤란한 상황에 부닥쳤다는 뜻이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묶이지 않은 발을 이용해 도망치는 것뿐이다. 하지만 손이 묶여 있으면 발도 마음대로 움직이기 어렵다. 오히려 급하게 움직이다 넘어지거나 부딪혀 큰 상처를 입기 쉽다.
올해는 나에게 그런 해였다. 봄에는 뇌 건강을 연구하는 스타트업과 함께 명상을 주제로 미디어아트를 기획했지만 팀이 해체됐다. 급하게 손발을 맞추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소한 오해가 해체의 원인이었다. 여름에는 마음을 주제로 구독 서비스를 시작하려 했지만 함께하기로 한 지인들과 일정을 맞추지 못해 기약 없이 미뤄졌다. 성과를 내고 싶은 마음에 급하게 계획을 짜다 생긴 불통의 결과였다. 가을에는 지금 교육센터장으로 활동하는 비영리 법인에서 한 달 사이에 두 명의 팀장이 그만두는 일이 생겼다. 업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생긴 의견 차이가 퇴사의 이유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충분히 문제를 예측하고 방지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서로의 작업 스타일을 수용하고 소통했다면, 힘들어하는 팀원들과 진정성 있게 대화를 이어갔다면, 갈등이 들불처럼 번지지 않았을 것이다.
소통과 배려의 손을 내밀지 못한 이유는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에서 일어난 욕심이 두 손을 단단히 묶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소년과 개암나무 열매’의 일화를 떠올리게 한다. 소년은 병에 든 열매를 차지하기 위해 병 속에 손을 넣고 쥘 수 있을 만큼 가득 열매를 잡는다. 하지만 병의 입구가 좁아 손을 밖으로 빼지 못하고 울면서 괴로워한다. 가득 쥔 열매를 반만 덜어놓아도 손을 뺄 수 있지만 열매를 양껏 갖겠다는 욕심에 속수무책의 신세가 된 것이다. 나 또한 그랬던 것 같다. 잘하고 싶은 욕심을 조금만 내려놓았다면 중재와 화해의 길을 찾았을 텐데 그 길을 외면하고 속만 끓이고 있었다.
욕심은 과거에 경험한 결핍감에서 태어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먹으며 커간다. 오랜 시간 동안 반복해온 타인과의 비교와 질투가 결핍감을 일으키고 결핍을 채우고 유지하려는 몸부림이 미래의 불안이 된다.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욕심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야 한다. 타인과의 비교를 내려놓고, 미래의 불안 대신 지금 이 순간을 잘 살아내고 있는 나 자신에게 감사하며 만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런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기 관찰(self-observation)을 통한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욕심으로 채워진 마음을 정확히 관찰하고 내 것이 아닌 듯 거리를 두며 바라볼 때 욕심은 더 이상 커지지 못하고 조금씩 사라져 간다.
내년 한 해는 더 이상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이솝우화의 소년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울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자고 다짐한다. 대신 다른 이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비어 있는 두 손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신기율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마인드풀링(Mindfuling) 대표이자 ‘마음 찻집’ 유튜브를 운영하며 한부모가정 모임인 ‘그루맘’ 교육센터장이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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