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그리드는 지구 건강의 생명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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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곳곳이 기후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탄소중립을 위한 재생에너지에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세계 에너지 공급망 전망에 따르면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선 전체 에너지 공급망 중 재생에너지 비중이 2030년 31%, 2050년엔 70%까지 올라가야 한다.
문제는 자연조건에 의존해 발전하는 재생에너지는 기후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또 재생에너지는 중앙에서 전력을 공급하는 방식이 아닌 각 지역을 기반으로 한 분산형 에너지원이라서 전체적인 전력 공급 계산이 복잡해진다. 언제 어디서 전력을 더 많이 소비할지 예측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온 기술이 ‘스마트 그리드’다.
가정과 전력회사 간 정보 고속도로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똑똑한(지능형) 전력망이다. 현 전력망에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 전기 공급자와 소비자가 양방향으로 실시간 전력 정보를 교환하는 방식이다. 가정의 소비자와 전력회사인 공급자 간에 전기 사용량과 공급량의 ‘정보 고속도로’를 뚫어 더욱 효율적으로 전기를 관리할 수 있게 해주는 게 핵심 골자다.
전력회사는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모아 필요한 전력을 필요한 곳에 적시에 전달하고 불필요한 추가 전력 생산을 막는다. 이때 전력 소비가 많은 시간대의 전기료는 높이고 그 반대일 경우는 낮게 책정한다. 소비자는 전기료 추이를 파악, 하루 중 요금이 가장 저렴할 때 전력을 사용할 수 있다. 에너지 효율을 최적화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보자. 주부 김알뜰 씨는 오후 2시경 세탁기를 돌리기 위해 집에 설치된 ‘지능형 전력 미터기(스마트 미터)’를 확인한다. 미터기에는 ‘㎾h당 전기요금 320원’이라고 표시돼 있다. 전력 사용량이 많은 낮 시간대라 그런지 요금이 비싸다. 밤 10시경 미터기를 다시 확인하자 요금이 200원대로 떨어졌다. 그제야 김 씨는 세탁기 전원을 켜고 세탁을 한다. 시간대별 전기료를 꼼꼼히 따져 알뜰한 살림을 하는 것이다. 스마트 미터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변하는 지역의 전기료 추이를 알려주는 일종의 전자식 단말기다. 해당 시간에 사람들이 전기를 많이 쓸수록 전기료가 비싸다.
스마트 그리드 시스템에서는 가전제품들도 똑똑해진다. 인터넷을 통해 외부와 연결된 가전제품이 스스로 전기료가 싼 시간대에 작동하도록 설계하는 것이 가능하다. 전기료가 일정 수준 이상 떨어지면 자동으로 작동하는 방식이다. 특히 그 조작버튼을 전력회사가 통제할 수도 있다. 여름철 한낮에 전기료를 비싸게 매겨도 사용량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전력회사가 강제로 에어컨 온도를 높이는 등 비상조치를 취할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조치는 사전에 가전제품 사용자의 동의를 받았을 때에 한한다.
스마트 그리드는 가정의 전자제품은 물론 산업용 장비들까지 모든 전기기기를 묶어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따라서 집, 사무실, 공장 등 어느 곳에서나 사용한 전기요금을 실시간으로 확인해 전기를 절약할 수 있다.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데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못지않게 에너지 절약이 중요하다. 에너지 절약 실천에 가장 효율적 방법이 스마트 그리드다.
스마트 그리드의 또 하나 중요한 핵심은 전력 저장 기술이다. 일명 ESS 장치다. ESS는 수백㎾ 이상의 전력을 저장하는 에너지 저장 장치, 즉 대규모 용량의 배터리라고 생각하면 된다. 재생에너지를 사용할 경우 해가 지거나 바람이 멈추면 어떻게 될까? 이런 경우에 대비해 전기를 저장할 방법이 필요하다. 또 기존에는 생산한 뒤 사용하지 못한 전기는 그대로 버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ESS를 이용하면 태양광이나 풍력발전 등에서 얻는 여분의 전력을 상당 기간 저장할 수 있다.
지금 세계는 스마트 그리드 경쟁
지금 세계는 전력 소비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을 스마트 그리드 사업에 앞다퉈 뛰어들고 있다. 스마트 그리드에 대한 연구는 미국에서 처음 시작됐다. 미국 에너지부는 2003년 ‘그리드(Grid) 2030’을 발표해 전력망 업그레이드를 위한 계획을 세웠다. 세계 최초로 스마트 실증 프로그램을 통해 스마트 그리드의 실행 가능성과 비즈니스 모델 등을 검토했고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스마트 그리드에 3000억 달러(약 338조 4300억 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구글, IBM, 인텔 등의 정보기술(IT) 기업들 또한 스마트 그리드 산업에 뛰어들었다. 구글은 본사와 데이터센터를 마이크로그리드(Microgrid)로 운용하고 있고 애플은 기존 그리드와 단절돼도 서비스 제공이 가능한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유럽연합(EU)도 예외가 아니다. ‘온실가스 저감,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스마트 그리드 비전을 세우고 관련 사업을 적극 추진 중이다. 한편 영국 최대 에너지 회사인 내셔널그리드는 구글과 협력해 스마트 그리드에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 전력 수급의 정점을 예측하고 에너지 사용량을 10% 줄이는 시도를 진행 중이다.
한국은 2009년 8월 한국스마트그리드사업단을 출범시키고 스마트 그리드에 관심을 가져왔다. 하지만 근래까지 실질적인 진척이 없다가 2020년부터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지능형 전력량계(AMI) 보급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AMI는 스마트 그리드의 기본 요소다. 정부는 2030년까지 27조 5000억 원을 투자해 전국을 스마트 그리드로 연결하겠다는 에너지 로드맵을 세웠다. 한국의 스마트 그리드 기술은 미국보다 2.5년 뒤처졌고 중국보다 약간 앞서는 수준이다.
중국은 1조 위안(약 184조 원)의 스마트 그리드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특히 2030년까지 ESS를 핵심으로 한 ‘에너지 저장’ 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스마트 그리드는 앞으로 더 건강한 지구를 만드는 생명선이 될 것이다. 우리의 일상을 크게 바꿔놓을 스마트 그리드가 지구촌 곳곳에서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된다.
김형자
편집장 출신으로 과학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과학 칼럼니스트. <구멍으로 발견한 과학>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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