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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에 배우면 뭐하냐고? 이 나이라도 모르면 배워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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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세 여고생 김정자 씨의 수능 도전기
“어릴 때 학교 운동장 너머로 들리는 풍금소리가 참 좋았는데 한 번도 안으로 들어가보질 못했어요. 한글을 배우고 나니까 자신감이 생겨 그 후로 피아노도 배웠습니다.”
여든둘의 만학도는 이제 책도 읽고 악보도 본다. 구부러진 손가락으로 연필을 꾹꾹 눌러 시도 쓰고 건반을 꼭꼭 누르며 동요도 칠 줄 안다. 그 순간만큼은 단발머리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1941년생 김정자 씨는 일본에서 태어나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학교에 가야 할 나이에 6·25전쟁으로 마을이 쑥대밭이 됐다. 가족이 모두 거제도로 피난을 갔고 팔남매의 맏이였던 김 씨는 동생들을 먹일 산나물이며 해초를 구하러 산으로 바다로 뛰어다녔다. 이후로도 학교에 갈 엄두는 내지 못했다. ‘손톱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일을 했다. 남의 집 일을 시작으로 목욕탕 청소, 도시락 공장, 손수건 자르기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가장 오래 한 일은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 앞에서 분식집을 한 거였다. 분식을 팔아 세 자녀를 키웠고 배곯은 고학생들의 배를 채워줬다. 가난한 학생들에게는 밥값을 받지 않고 도리어 음식을 싸주기도 했다. 배우지 못했던 서러움을 한창 배우는 학생들을 먹이는 것으로 달랬다. 그의 자녀들은 과외나 사교육 없이도 잘 자라줬다. 큰 딸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던 날 김 씨는 공항에서 많이 울었다. 딸이 바다 건너 먼 나라로 떠나는데 그 나라의 이름도, 그가 가는 탑승구도 읽을 수가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결심했다. 글을 배워야겠다고.



‘배움엔 나이가 없다’는 말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내가 한글을 처음 배운 게 일흔여섯이에요. 일을 많이 하다 보니 허리가 고장이 나서 수술을 세 번 했어요. 그날도 병원에 다녀오는데 전철에서 양원주부학교 부채를 하나 주웠어요. 거기 가면 나이 먹은 주부도 한글공부를 할 수 있다고 해서 전화를 해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2년 동안 지각이나 결석, 조퇴를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학교 다니면서 한자능력검정시험 7급도 땄고요. 더 배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서 주부학교를 마치고는 일성여중고에 가게 됐어요.

현재 서울 마포구에 있는 양원주부학교에는 1000여 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고 연령은 4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하다. 학력인정은 되지 않지만 한글을 배우고 검정고시를 준비할 수 있는 곳이다. 일성여자중고등학교는 2000년 2년제 학력인정 학교로 인정받아 3년 과정을 2년에 이수할 수 있다. 2023년 2월에도 250여 명의 학생이 졸업했다. 양원주부학교와 일성여자중고등학교의 전신은 일성고등공민학교다. 6·25전쟁 중 피란 온 사람들이 전쟁고아, 극빈아동 등을 가르칠 목적으로 세웠다. 1983년 주부반을 별도 편성한 후 제 나이에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한 여성들에게 학업의 기회를 주고 있다.



일성여중고는 3년 과정을 2년 동안 배워야 해서 더 힘들었겠습니다.
매일 아침 5시 50분에 1호선 전철을 타요. 좀 지나면 전철에 사람이 많아지거든요. 2호선으로 갈아타서 이대역에서 내려서 학교까지 걸어와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 번도 빠진 적이 없어요. 학교에 도착하면 7시 30분이에요. 수업이 8시 50분부터 시작인데 그 전까지 어제 배운 걸 복습해요. 그러지 않으면 따라가기가 힘들어요. 요즘은 컴퓨터실에 가서 타자치는 연습도 해요. 시간이 금방 갑니다.

2024학년도 수능도 치르셨죠. 일성여중고에서는 최고령 응시자였다고요?
몇 년 전까지 내 이름도 쓸 줄 몰랐는데 수능을 본다고 하니 감격스럽더라고요.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시험장에 들어와 있다는 것만으로도요. 막상 앉아서 문제지를 받으니까 막 마음이 떨렸어요. 저는 국어, 영어, 한국사 세 과목을 봤는데 문제도 많고 또 길더라고요.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다 풀고 나가자’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어린 친구들이 정말 고생이 많구나 싶었어요. 모쪼록 다들 꿈을 이뤘으면 좋겠습니다.



11월에 수능 마치고 바로 기말고사가 이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학교에서 보는 마지막 시험이에요. 두 달 후 2월에 졸업을 하거든요. 딱 1년만 더 다니고 싶은데 무척 아쉬워요. 저는 늘 맨 앞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들었어요. 허리가 안 좋아 구부정하니까 담임인 서민희 선생님께서 첫날 맨 앞자리에 앉게 해주시더라고요. 그러면 수업시간에 선생님이랑 칠판밖에 안보여요. 선생님들이 다 얼마나 친절하게 잘 가르쳐주는지 시간 가는 줄 몰랐어요.

선생님들은 김정자 학생의 수업태도를 모두 칭찬하던데요?
제가 성적이 우수하진 않지만 한 번도 빠지질 않아서 그랬나 봐요. 오늘은 아파서 못 가겠구나 하는 날도 일어나서 가방 싸서 나오면 어떻게 또 가게 됩니다. 열심히 해도 따라가기 어려운데 빠지면 그날 공부를 어떻게 하겠어요? 배울 수 있는 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까 더 힘을 내게 돼요. 학교에 오면 또 신이 나서 아픈 걸 잊습니다. 이 책가방은 우리 며느리가 사준 건데 5년 동안 매일 메고 다녔습니다.

가족들 반응은 어땠나요?
제가 학교를 다닌다고 하니 다들 좋아해요. 우리 아이들 어릴 적에 부엌도 없이 아궁이만 있는 방 한 칸에서 삼남매를 키웠어요. 애들이 다 잘 자랐어요. 손주들도 다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우리 막내 손녀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울릉도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왜 그렇게 힘든 길을 가느냐고 했더니 ‘힘들어야 배우는 게 많다’고 하더라고요. 고맙다고 그랬어요. 우리 손녀가 전방에서 나라를 지켜주니 후방에 있는 할머니가 마음 놓고 공부한다고요.

피아노도 배우고 있다고요. 딸이 치던 피아노를 친다고 들었습니다.
자랄 때 레슨도 제대로 시켜주질 못했어요. 그래도 피아노는 한 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알아보니 그 당시에 250만 원이래요. 그때 집에서 손수건 자르는 일을 하면 하나에 3원을 줬어요. 100장을 자르면 300원을 벌었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피아노를 사줬어요. 딸이 미국으로 가고 없어서 피아노를 팔려고 하니까 터무니없이 싼 값에 팔아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내가 배워 치고 있어요.

공부를 하고 가장 달라진 건 뭘까요?
한글을 몰랐다가 아니까 세상이 넓어 보이더라고요. 내가 조금이라도 배우니까 몰랐던 세상을 이리 아는구나 싶고요. 그래서 용기 내어 피아노도 배울 수 있었어요. 지금은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합니다. 밖에 나가면 전부 간판이 영어더라고요. 영어 수업을 열심히 들으면 어쩌다 아는 단어도 보여요. 그러다보면 욕심도 생기고요. 전보다도 세상을 멀리 보는 느낌입니다.

가장 어려운 과목은 뭔가요?
한글은 이제 받침까지 제대로 쓰는데 수학은 워낙 배움이 없다보니 기초가 없어 너무 어려워요. 한번은 선생님께 ‘수학은 배워 어디에 쓰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비행기가 날아가려면 수학이 꼭 있어야 한대요. 그럼 나는 비행기를 만들 일이 없으니까 다른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했지요(웃음).

어떤 과목을 더 열심히 하고 싶은가요?
영어를 더 많이 공부하고 싶어요.

특별히 이유가 있을까요?
손주가 미국에서 태어나서 영어를 잘해요. 한국어로 대화하는 것보다 영어로 하는 게 더 편하대요. 우리 손주랑 이야기를 하려면 내가 영어를 해야겠구나 생각했지요. 대학에 가게 되면 영어를 전공하고 싶어요. 대학에서는 여러 과목을 배우지 않고 한 과목을 열심히 배운다고 하던데 영어만 열심히 하다 보면 늘지 않겠어요? 아이들이 한국에 올 때 혼자 공항에도 가서 기다릴 수도 있고요. 이제 출입구도 다 알 수 있겠죠.

목표하는 대학이 있나요?
우리 손녀가 나온 대학을 가고 싶어요. “할머니, 우리 학교 너무 좋아요. 꼭 오세요”하더라고요. 근데 우리 손녀한테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민경아, 요번에 졸업하고 취업도 했지. 요새 다 취업하기 힘든데 고맙다. 네가 학교 자랑을 많이 해서 할머니도 꼭 가고 싶다. 그러면 너는 선배가 되고 할머니는 후배가 되겠지. 사랑하고 고맙다.’

아직 배움을 망설이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항상 전철로 다니는데 등을 구부리고 배낭을 메고 다니니 어떤 사람이 안쓰러웠는지 따라오면서 “아유, 돈 벌러 가세요?” 물어요. “이 나이에 누가 나를 써주겠어요” 하면서 가방을 열어 공책이랑 책을 보여줬어요. 공부하러 다닌다고 했더니 “이 나이에 배워 무얼해요?” 하더라고요. “이 나이라도 모르면 배워야지요” 라고 말해줬어요. 공부하는 이유는 출세하려고도 아니고 돈 벌려고도 아니에요. 그저 모르는 걸 알고 싶어서죠. 알고 나면 그렇게 행복해요. 진짜 고등학생의 마음으로 다닙니다.

‘아침 해가 밝았구나/ 눈비비고 일어나서/ 즐거운 마음으로/ 등굣길을 나섰다/ 등이 굽은 내 모습이 처량하구나/ 한 자라도 더 배우고 싶어 /제일 먼저 교실 문을 열었다/ 우리집 화단에는/ 여덟 송이 장미꽃이 활짝 피어/ 나를 보고 웃고 있네/ 비바람에 두 송이가 떨어졌다/ 남은 꽃송이가 서로 몸을 감싸고 있다/ 학교 가는 내 모습 같다/ 나는 기운이 떨어지지 않고/ 오래오래 배우고 싶다.’
김정자 학생이 쓴 ‘학교 가는 길’이라는 시다. 여든둘의 여고생은 새해에 24학번이 돼 캠퍼스를 누빌 날을 꿈꾼다. 수은주가 영하로 내려간 12월에도 그는 어김없이 새벽 5시 50분이면 지하철에 오른다. 이대역에서 일성여중고까지 거리는 2.4㎞, 책가방을 메고 30분여를 걸어가면 학교 앞 언덕이 가파르다. 언덕 끝 교문 앞에 서면 ‘스무 살이든 여든 살이든 배움을 멈추는 사람은 늙은이다. 계속 공부하는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젊은이다’라는 문장이 보인다. 교문을 지나 교실로 들어간다. 맨 앞 책상에 앉아 어제 배운 문장을 다시 복습한다. 한글로, 영어로 수십 번은 연습했다. “아이 위시 유 어 메리 크리스마스 앤드 어 해피 뉴 이어!(I wish you a merry christmas and a happy new year!)” 미국에 있는 손주에게 전할 인사다.

유슬기 기자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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