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찾는 일은 우리 정체성 찾는 일 완벽한 한 장 위해 3년 동안 3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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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보호 대통령표창 강형원 ‘퓰리처상’ 기자
199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폭동,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스캔들, 9·11테러 같은 굵직굵직한 사건을 취재하며 퓰리처상을 두 번(1993·1999) 수상한 사진기자가 고국으로 돌아온 이유는 뭘까?
12월 8일 문화재청은 ‘2023 문화유산보호 유공자 포상’ 시상식을 열었다. 대통령표창은 개인으로는 두 명이 받았는데 이 중 한 명이 바로 강형원(60) 기자다. 강 기자는 33년간 미국에서 사진으로 뉴스를 전달하는 일을 했다. ‘LA타임스’, ‘AP통신’, ‘백악관 사진부’, ‘로이터통신’에서 사진기자와 에디터, 시니어 에디터로 일했다. 로스앤젤레스 폭동과 클린턴 스캔들 보도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두 차례 수상은 한국인 최초다.
그는 2020년부터 한국에 머무르며 ‘비주얼 히스토리 오브 코리아(Visual History of Korea)’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사진으로 한국 문화유산의 가치를 알리는 작업이다. 백제금동대향로, 첨성대, 팔만대장경 같은 유형문화재뿐 아니라 하회별신굿 탈놀이, 이순신, 한글 등도 소개했다. 2022년엔 결과물들 중 일부를 추려 ‘사진으로 보는 우리 문화유산’을 출간했다.
주목할 점은 문화유산에 얽힌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영문과 국문 설명으로 소개한다는 점이다. 단순 번역이 아니라 각각 국문과 영문으로 쓴 글이라 언어별 느낌이 살아 있다. 강 기자를 12월 8일 유공자 시상식이 열린 한국문화재재단 민속극장 풍류에서 만났다.
문화유산을 만나기 위해 3년간 얼마나 취재했나?
3만㎞도 훨씬 넘게 직접 운전하며 돌아다녔다. 강원도 고성에서 제주도까지 누비며 같은 곳을 여러 번 가기도 했다. 사진은 한 번에 찍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조명이나 기후 조건이 다 맞아떨어져야 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철쭉군락지가 울산 가지산 해발 840m 고지에 있다. 올라가는데 5시간, 내려오는데 3시간 걸린다. 갔는데 꽃 상태가 안좋더라. 또 한 번 다녀왔다. 제주 한라산 정상도 두 번을 올라갔다. 구상나무를 촬영하러 갔다.
구상나무는 왜 촬영했나?
흔히 ‘크리스마스 트리’하면 떠올리는 그 나무가 구상나무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사랑받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조상이 한국이라는 걸 시각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갔다. 한국에 자생하는 고유종이다. 한라산에 가면 만날 수 있다. 눈 올 때 촬영하느라고 두 번 갔다. 첫인상은 한 번이 끝이다. 어떤 주제를 부실한 사진으로 보면 그 다음에 멋진 사진을 봐도 감흥을 못 느낄 수 있다. 그러니 걸작을 남겨야 한다. 모든 기회는 한 번밖에 없다는 걸 사진 에디터를 하면서 알았다.
영문으로 한국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가 있나?
영미 문화권에서 접할 수 있는 한국 역사나 문화에 대한 기본적인 콘텐츠가 아직 빈약하다. 있다 해도 번역을 한 글이라 어색한 경우가 잦다. 예를 들면 ‘젖 먹던 힘까지 동원했다’라는 표현을 영어로 직역하면 영미 문화권에서 이해를 잘 못한다. 영문으로 된 한국의 문화유산 콘텐츠를 디지털 세계 여러 곳에 전파하고 있는 이유다. 단지 문화유산을 소개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놓으면 그걸 보고 외국인들이 한국을 찾고 싶어할 거다. 예를 들면 성덕대왕신종을 소개하며 용왕의 아들 ‘포뢰(蒲牢)’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성덕대왕신종 용뉴부(종신의 윗부분)에는 관 모양의 용통(甬筒)을 짊어진 용이 올라앉아 있다. 용왕의 셋째 아들 포뢰다. 포뢰는 우는 소리가 우렁차고 고래를 무서워했다. 고래모양으로 깎은 나무로 종을 치면 범종 꼭대기에 앉은 포뢰가 무서워서 더 크게 운다는 이야기가 있다. 조상들은 종소리가 우렁차게 멀리 퍼지길 바라며 포뢰를 앉혀놓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문화유산을 소개한다면?
청동 거울인 정문경과 성덕대왕신종, 금속활자다. 이 세 가지 유물은 주조 기술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 세계 어느 청동기 문화를 봐도 정문경만큼 완성도 높은 유물을 찾기 힘들다. 주조 기술이 신라시대로 내려와 꽃피운 게 성덕대왕신종이다. 1300여 년 전에 만들어진 종이 지금까지 온전하다. 성덕대왕신종에 보면 한문으로 된 명문(銘文)이 있다. 글씨를 주조한 기술이 고려시대로 오면 활판 인쇄기술이 된다.
듣고보니 공통점이 보인다
이걸 보면 우리 조상들은 ‘일머리’가 뛰어났다고 생각한다. 어떤 일이든 잘해냈다. 그 결과 한국이 자동차도 만들고 휴대전화도 만드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제조국이 된 거라 생각한다.
외국인이 특히 관심을 보인 문화유산은 어떤 건가?
대곡천 암각화다. 전 세계 곳곳에 선사시대 암각화가 있지만 대곡천 암각화에만 유일하게 고래가 그려져 있다. 이걸 전 세계에 알려야겠다 싶어 40년 축적한 노하우를 쏟아부어 촬영했다. 사진과 함께 소개하고 나니 미국 플로리다에 있는 등대박물관에서 연락이 왔다. 전시를 준비 중인데 대곡천 암각화 사진을 전시하고 싶다고 요청했다. 예전엔 고래기름으로 등대 불을 밝혔다. 포경의 역사를 소개하고 싶은데 미국엔 그런 기록이 없으니 한국의 암각화를 소개한 거다.
대곡천 암각화군은 국보로 지정된 ‘울주 천전리 각석’과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를 포함한 반구대 계곡 일원의 암각화를 가리킨다.
강 기자는 13세에 부모와 함께 로스앤젤레스로 이민했다. UCLA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했다. 재학시절 학보사 사진기자로 출발해 ‘LA타임스’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언론사 이력이 시작됐다. 그는 언론사에서 일하며 미국식 이름이 아닌 한국 이름을 고수했다. 퓰리처상을 받을 때도 사진기자 ‘강형원’이었다.
한국에 돌아오기로 결심한 이유가 있나 ?
언론사에서 일할 때 동료 기자들이 ‘왜 미국 이름을 안 쓰느냐’고 물어 이렇게 답했다. ‘미국 사회에 한국 이름을 익숙하게 만들고 싶다.’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나의 정신은 한국에 있다는 걸 단 한순간도 잊어본 적이 없다. 지금은 한류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지만 영미권에서는 아직도 전쟁을 치렀던 신생 국가로 인식된다. 자신들의 문화만이 오래됐다고 주장하는 영미권에 한국이 이렇게 유구한 역사를 지닌 나라라는 걸 사진으로 알리고 싶었다.
문화유산을 돌아보며 깨달은 점이 있나?
흔히 한민족이 단일민족이라고 하지만 유전적인 다양성이 보인다. 취재하며 다니다보면 사람들 얼굴에서 여러 인종이 보인다. 2010년 부산 가덕도에서 7000년 전 유골 40여 구가 발굴됐다. DNA 분석을 해보니 유럽인만의 독특한 모계 유전자인 유럽형 모계 유전자 H가 발견됐다. 동아시아에서는 검출된 사례가 없고 독일인에게서 많이 확인되는 유전자다. 고대 한반도에 다양한 사람이 오갔다고 짐작할 수 있지 않나. ‘잡종 강세’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한국인들이 우수한 것 같다.
한반도 고대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들은 학계에서도 나오고 있다
화교 출신 요리사를 만나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이 분이 해준 얘기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싶어 대만과 중국 베이징에 갔다. 그런데 낯설었다. 한중 수교 후 산둥반도를 찾았다. 조상이 살았던 마을에 가서 깨달았다. 음식에 공통분모가 있더란다.
공통점이 뭔가?
서해안 주변 지역에선 공통적으로 파와 마늘을 먹는다. 내륙 지방은 생강을 많이 먹는다. 마늘 하면 ‘웅녀’가 떠오르지 않나. 파와 마늘을 많이 먹는 사람들은 같은 고대 문명을 공유했던 게 아닐까? 우리 역사의 무대가 한반도에 한정된 것만이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자신의 영역만을 연구하지만 기자는 다양한 곳을 둘러보며 퍼즐을 맞출 수 있다. 후세 사람들을 위해 여러 증거들을 남겨주고 싶다.
앞으로도 문화유산 소개를 계속할 예정인가?
물론이다. 내 실력으로 조상이 남겨놓은 정체성을 기록할 수 있는 엄청난 기회다. 내 능력이 다할 때까지 꾸준히 하고 싶다. 한국은 물론 일본, 중국에 남아 있는 우리 문화도 카메라에 담고 싶다. 고대 문명을 하나하나 구슬 엮듯 엮어내고 싶다. 요즘엔 강연으로도 우리 문화를 소개한다.
강연에선 어떤 얘기를 하나?
학생들에게 강연할 때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나도 매일 실패한 사진을 찍으면서 다음날이면 카메라를 들고 길을 나선다. 우리 선조들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일머리를 후손들에게 물려줬다. 그렇다면 우리는 확고한 정체성과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끌고 나가겠다는 주인의식을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하지 않겠나.
하주희 기자
박스기사
2023 문화유산보호
유공자들은 누구?
문화재청은 ‘2023 문화유산보호 유공자 포상’ 수상자로 문화훈장 4명, 대통령표창 6명(단체 4개 포함), 국무총리표창 1명 등 11명(개인 7명, 단체 4개)을 선정했다.
시상식은 12월 8일 한국문화재재단 민속극장 풍류에서 열렸다. 은관문화훈장은 김삼대자 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무형문화재분과)과 김현곤 국가무형유산 악기장 보유자가 받았다. 김삼대자 위원은 조선시대 의례용 목가구와 왕실공예품 분석, 운현궁 가구집기 연구 등을 통해 왕실유물 기초자료를 완성시킨 공로가 있다.
김현곤 국가무형유산 악기장 보유자는 편종과 편경을 제작하고 태평소와 대금, 소금 등 국악기들을 복원했다. 보관문화훈장은 김용래 국가무형유산 평택농악 보유자와 이재순 국가무형유산 석장 보유자가 받았다.
대통령표창은 개인 2명과 단체 4개가 선정됐다. 개인 부문은 강형원 사진기자, 전봉희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가 선정됐다.
단체 부문은 가남테크㈜, (사)신라오릉보존회, 악단광칠, (사)임원경제연구소가 선정됐다.
국무총리표창은 창경궁 등 400여 건의 문화유산을 보수해 전통건축의 원형보존과 역사적 가치 회복에 기여한 홍경선 한국문화재기능인협회 이사장이 수상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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