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공식 국가(國歌)와 비공식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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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6일은 핀란드 독립기념일이다. 핀란드는 1917년에 독립했으니 100년이 조금 넘은 신생국인 셈이다. 매년 독립기념일에는 핀란드 전역에 국가(國歌) 마암메(Maamme)가 울려 퍼진다. 지난 12월 6일 주한 핀란드대사관저에서 열린 독립기념일 행사에서도 마암메가 울려 퍼졌다.
핀란드는 국토가 아주 넓지만 인구는 550만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소수민족의 나라다. 하지만 약소민족의 나라는 절대 아니다. 약소민족이냐 아니냐는 그 민족의 의지와 능력과 지혜에 달려있다.
현재의 핀란드는 여러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모범이 되는 나라로 손꼽힌다. 부러울 정도로 높은 행복지수, 사회복지시스템, 깨끗한 자연환경, 청렴한 공직자들, 앞선 교육환경 등등.
흔히 핀란드를 ‘3S’로 정의하기도 한다. 즉, 사우나(sauna), 시벨리우스(Sibelius), 시수(sisu)다.
이 중에서 ‘시수’는 우리말로 ‘집요함’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는데 사실 이것처럼 핀란드 사람들의 기질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말은 없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오늘날의 핀란드를 이룬 원동력은 ‘시수’+‘슬기로움’이 아닐까 생각된다.
역사적으로 보면 핀란드는 중세 이후 오랜 기간 스웨덴의 한 지방으로 존속했다. 사실 ‘핀란드(Finland)’는 스웨덴어 지명이고, 이에 해당하는 핀란드어 지명은 수오미(Suomi), 라틴어 지명은 핀란디아(Finlandia)다. 스웨덴 지배 밑에서 핀란드의 수도는 스웨덴과 가까운 투르쿠(Turku)였지만 1809년 스웨덴이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핀란드가 러시아의 지배 하에 놓이면서 수도는 러시아와 가까운 헬싱키로 옮겨졌다.
헬싱키 중심부에는 에스플라나디(Esplanadi)라고 하는 동서로 길게 뻗은 길이 약 350미터, 폭 약 70미터의 장방형 공원이 있다. 에스플라나디 한가운데에는 핀란드를 대표하는 민족시인 요한 루네베리(Johan L. Runeberg 1804-1877)의 기념상을 볼 수 있다.
그의 동상 아래에는 핀란드를 상징하는 소녀상이 왼팔을 커다란 청동판 위에 올려놓고 있는데 청동판에는 핀란드의 산천을 찬양하는 애국적인 시(詩)가 스웨덴어로 새겨져 있다. 제목은 Vårt Land(보트 란드). 직역하면 ‘우리의 땅’, 즉 ‘우리나라’이다. 핀란드어가 아니라 스웨덴어로 쓰인 것은 당시의 공용어가 스웨덴어였기 때문이다. 사실 당시 지식인과 상류층은 스웨덴어를 썼고 핀란드어는 아직 공용어 대접을 받지 못했다.
루네베리의 대표작은 스웨덴어로 쓴 서사시 <스톨(Stål) 소위 이야기>이다. 핀란드 민족낭만주의 문학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이 작품은 스웨덴과 러시아 간의 전쟁(1808-09)에 관한 것이다. 루네베리는 핀란드가 러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던 1848년에 이 작품의 제1부를 출판했다. Vårt Land(보트 란드)는 제1부의 첫 부분에 해당한다.
독일에서 핀란드로 이주해 온 음악가 파치우스(F. Pacius 1809-1891)는 이 시에 곡을 붙였다. 이 노래가 러시아 당국의 검열을 피해 헬싱키 대학생들에 의해 처음 불려진 것은 1848년 5월 13일 봄축제 때였다.
그후 40여 년이 흐른 다음 러시아가 핀란드를 더욱더 러시아화하기 위해 억압정책을 쓰던 때인 1889년, 이 노래는 핀란드어로 번역되어 불려지기 시작했다. 핀란드어 제목은 Maamme(마암메)인데 Maa는 ‘땅’, ‘나라’이고, mme는 ‘우리의’를 뜻하는 접미사이다.
한편 그해 11월에 에스플라나디의 스웨덴어 극장에서 핀란드의 극작가 레이노와 핀네가 핀란드 역사를 6개의 장면으로 만든 연극이 공연되었는데 마지막 장면 <핀란드여, 깨어나라!>에 34세의 시벨리우스(J. Sibelius 1865-1957)가 붙인 음악이 울려 퍼졌다.
다음해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러시아 제국을 구성하는 한 민족으로 핀란드도 참가하게 되자 이를 위해 시벨리우스는 기존의 곡을 다시 다듬어 발표했다. 이리하여 교향시 <핀란디아>가 탄생하게 되는데 이 곡은 독립된 국가를 가져본 적이 없던 핀란드 사람들의 민족의식을 크게 고취시켰다. 이에 러시아 당국은 이 곡을 러시아에 적개심을 부추기는 위험한 곡으로 간주하고 이 곡이 <핀란디아>라는 제목으로 연주되는 것을 철저히 금지했다.
핀란드가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선포한 것은 러시아가 혁명으로 어수선할 때인 1917년 12월 6일이었다. 신생국 핀란드는 마암메(Maamme)를 공식 국가로 지정했다. 그런데 핀란드에는 공식 국가보다 더 유명한 비공식 국가가 있다. 다름 아닌 <핀란디아 송가>인데, 핀란드어로는 핀란디아-휨니(Finlandia-hymni), 영어로는 핀란디아 힘(Finaldia Hymn)이라고 한다.
이것은 시벨리우스의 교향시 <핀란디아> 후반부의 목가적인 선율 부분으로, 시벨리우스는 나중에 독립된 곡으로 편곡한 것이다. 가사는 1940년에 핀란드 시인 케스콘니에미(V. A. Koskenniemi)가 붙였다. <핀란디아 송가>는 음악적으로 매우 뛰어날 뿐 아니라 가사도 매우 애국적이기 때문에 이 곡을 공식 국가로 승격해야 한다는 여론도 강하다.
<핀란디아 송가>의 가사 첫 구절은 다음과 같다.
Oi, Suomi, katso, sinun päiväs’ koittaa,
Yön uhka karkoitettu on jo pois.
오, 핀란드여, 보아라, 너의 날이 밝아오는 것을!
험난한 밤의 장막은 이제 걷히었도다.
그러고 보면 밤의 장막이 걷히고 날이 그냥 밝아 온 것은 아니었다. 핀란드가 놀라움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것은 ‘시수’와 ‘슬기로움’ 뿐 아니라 국민은 국가를 믿었고, 국가는 국민을 믿었기 때문에 가능하였으리라.
◆ 정태남 이탈리아 건축사
건축 분야 외에도 음악·미술·언어·역사 등 여러 분야에 박식하고, 유럽과 국내를 오가며 강연과 저술 활동도 하고 있다. <유럽에서 클래식을 만나다>, <동유럽 문화도시 기행>, <이탈리아 도시기행>,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 <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외에도 여러 저서를 펴냈으며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받았다. culturebox@naver.com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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