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적발왕의 비결? “대화해 보면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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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밀반입 잡는 관세청 인천공항본부세관 박은화 주무관
2023년 4월 인천국제공항 검역 검색대에서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인천공항본부세관 직원이 미국발 비행기를 타고 와서 입국하던 한국인 남성의 소지품 검사를 하는 과정이었다. 남성은 주머니의 소지품을 모두 꺼내 검색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세관 직원의 눈에는 주머니에 뭔가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세관 직원의 요구에 남성이 주머니에서 꺼낸 것은 대마초였다. 남성은 “미국에서 대마초는 합법이다. 이걸 왜 단속하느냐”며 되레 큰소리를 쳤다. 세관 직원은 검사가 끝난 남성의 가방을 다시 정밀검사 했다. 가방에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포장한 필로폰, 코카인, 케타민 등 마약류가 숨겨져 있었다. 총 4.5㎏ 분량이었다.
이처럼 2023년 1월부터 10월까지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한 여행자 중에서 마약을 숨겨 들어오다 적발된 건수는 총 145건(111㎏)에 달한다. 이는 1년 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75% 증가한 수치다. 코로나19 이후 주로 비대면 방식으로 이뤄지던 마약 밀수 경로가 여행자 밀수 방식으로 바뀐 것을 보여준다.
이 기간 국제우편, 특송, 여행자, 일반화물 등 주요 경로를 통한 마약류 밀반입 적발 건수는 총 574건(556㎏)이었다. 여행자 적발이 25%를 차지한 셈이다.
정부는 3초 만에 전신을 스캔해 몸에 숨긴 소량의 마약까지 찾아내는 ‘밀리미터파 신변검색기’를 2024년까지 전국 공항만에 설치하고 마약 우범국가에서 입국하는 여행객에 대한 전수검사를 재개하는 등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마약 밀반입 원천차단에 나서고 있다. 이 전쟁의 최전선에 인천공항본부세관이 있다.
인천국제공항 제1·2여객터미널 입국장에서 마약 밀반입 단속 업무를 하는 인천공항본부세관 직원은 280여 명에 달한다. 마약류 밀반입 수법은 갈수록 다양하고 대범해지고 있다. 이들을 쫓는 검사관들 사이에서 ‘적발왕’으로 소문이 자자한 직원이 있다. 휴대품통관5 검사관실 소속 박은화 주무관이다. 박 주무관이 적발한 마약류는 2023년 총 적발건수의 10%에 달한다. 박 주무관의 적발 실적은 실제 통계보다 더 많다. 인천공항본부세관은 마약 소지자를 적발해 자체 조사를 한 뒤 검찰로 송치한 건수를 공식통계로 잡기 때문이다.
박 주무관은 일반 기업에서 통관 업무를 담당하는 회사원이었다. 5년 전 인천공항본부세관의 검사관이 됐다. ‘적발왕’으로 활약하고 있는 박 주무관을 만나 날로 심각해지는 마약 밀반입 실태를 들었다.
최근 마약 관련 사건·사고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현장에선 어느 정도로 체감하고 있나?
최근 들어 우리가 적발한 마약 밀반입자들을 보면 정말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적발 건수와 양을 봐도 마약류 밀반입이 심각하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 인천공항본부세관이 2023년 10월까지 여행자를 대상으로 적발한 양만 110㎏이 넘는다. 통상적으로 필로폰의 경우 1회 투약량이 0.03g 정도인 걸로 알고 있다. 1㎏이면 수만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110㎏이 들어왔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적발되는 마약 종류는 어떤 것들인가?
여행자 통관에서 적발되는 마약은 주로 필로폰이다. 그리고 대마, 케타민, 파티용 마약으로 불리는 엑스터시(MDMA) 순으로 적발된다. 최근엔 합성 대마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
마약 밀반입 방법도 날로 진화하고 있다고 들었다.
정말 다양하고 대범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가방에 아무런 포장도 없이 대마초 뭉치를 꽉 채워서 들여오다 잡힌 사례도 있다. 텀블러 같은 개인 소지품에 잘 보이지 않게 숨겨서 오는 경우도 있다. 식품처럼 위장하거나 은밀한 신체 부위에 숨겨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ISD라는 마약의 경우 일반인이 봤을 때는 종잇조각처럼 생기다 보니 문구류로 위장하기도 하고 임시마약류의 경우 화장품처럼 들여오기도 한다.
올해 적발 사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우는?
미국에서 전문직에 종사하는 20대 남성이었다. 대화를 하다보니 마약을 했을 거라는 의심이 들었다. 그래서 검사를 했는데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비어 있는 약 캡슐이 하나 발견됐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뭔가 이상했다. 1시간에 걸쳐 가방을 꼼꼼히 검사하다 영양제 3통을 발견했다. 그중 한 통이 마약이었다.
약통만 보고 어떻게 마약이라는 걸 알았나?
약통에 붙은 라벨지 정보를 보고 알았다. 알약이 들어 있어야 하는데 캡슐약이 들어 있었다. 세관 분석실에 성분 분석을 의뢰했고 모두 케타민으로 확인됐다.
약에 대한 지식도 있어야겠다.
마약류는 대부분 향정신성 의약품이다. 약품들을 보면서 혼자 공부를 하고 있다. 공항으로 많이 들어오는 약품들이 어떤 질병에 쓰이고 어떤 치료제인지도 틈틈이 공부한다. 마약 중독자들이 복용하는 특정 약들이 있다. 이런 것들이 발견되면 더 꼼꼼히 검사를 진행한다.
‘적발왕’으로 불리기까지 노하우가 있나?
기본적으로 엑스레이 판독이나 사전정보를 바탕으로 검사하지만 나만의 방법을 따로 가지고 있긴 하다. 그중 하나는 검사 대상자와 대화를 많이 나눈다. 여행자의 출발지나 한국 방문 목적, 직업, 그리고 체류기간 등 다양한 질문을 한다.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 투약 경험 등을 물으면 실제 투약자나 밀반입자의 경우 반응이 다르다. 그 미세한 반응을 놓치지 않고 본다.
대화만해도 마약 투약자를 알 수 있나?
미국으로 출장을 다녀온 사람이었다. 질문에 예, 아니오 단답형으로만 답을 했다. 계속 질문을 던지다 필로폰을 한 경험이 있느냐고 질문하자 갑자기 몸을 떨면서 일종의 마약 금단 증세를 보였다. 흔히 말하는 ‘갈증’이었다. 결국 정밀검사를 통해 적발할 수 있었다.
검사 과정에 대해 항의하는 여행객도 많을 것 같다. 그럴 경우 처벌 규정이 있나?
검사대에 오자마자 유독 목소리를 높이고 욕설을 하는 사람도 있다. 가방을 집어던지고 난폭한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다. 관세법에 검사 방해죄가 있다. 해당 법령에 따라 조치할 수도 있지만 업무 목표는 위해물이나 마약류 같은 반입금지 물품을 찾아내는 것이기 때문에 꾹 참고 검사를 진행한다.
가장 힘든 점은?
분명 이 사람이 마약을 한 것 같은 의심이 들고 정황도 있지만 아무리 정밀검사를 해도 증거가 나오지 않을 때 가장 힘들다.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오히려 검사받는 사람들이 큰소리치며 민원을 제기하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진짜 열심히 검사해서 마약을 적발했을 때는 그만큼 보람도 크고 이 일에 대한 동기부여를 받는다.
마약 밀반입의 마지막 관문인 만큼 일에 대한 부담도 크겠다.
부담감은 당연히 있다. 마지막 관문인 만큼 한 명의 밀반입자를 찾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에서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2021년에만 필로폰 570㎏이 적발됐다. 이걸 사회·경제적 비용으로 환산하면 무려 480만 명의 마약 우범자와 24조 원의 비용을 예방하는 효과였다. 이런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마약 중독자를 예방하는 데 일조한다고 생각하면 부담감보다는 자부심이 더 크다. 초등학교 4학년짜리 딸이 자신의 꿈도 엄마처럼 마약 밀반입을 적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얘기를 듣고 뿌듯했다.
일을 하다 보면 안타까운 사연도 있을 것 같다.
미국의 한 항공사 승무원 가방에서 코카인이 적발됐다. 정말 무서운 것은 그 승무원의 동생이 1년 전 마약으로 사망했음에도 마약을 끊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을 겪으면서 마약의 위험성에 대해 새삼 느꼈다.
마약류가 가장 많이 들어오는 국가는 어딘가?
외교적 문제로 인해 특정 국가를 지목할 수는 없지만 미주, 중남미, 동남아 순인 것 같다.
여행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겠다.
코로나19 이후 여행자를 통한 마약 밀반입이 급증하고 있다. 우리는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검사를 하고 있으니 세관 검사에 대해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마약 밀반입의 마지막 게이트라는 생각으로 더 철저히 검사할 것이다.
정광성 기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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