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 건강 지키는 등대로! 365일 열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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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심야약국 운영하는 경기 고양시 ‘주엽1번출구약국’ 강원산 약사
50대 A씨는 심야식당의 주방에서 일한다. 밤이 깊으면 술손님이 많아져 주방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진다. 그날도 어김없이 커다란 웍으로 각종 채소와 고기를 볶아내던 A씨는 순간 중심을 잃으며 뜨거운 냄비에 손목을 데었다. 손님은 몰려오고 응급실엔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A씨는 야간근무를 위해 출근할 때마다 불이 켜져 있던 약국을 떠올렸다. 손님이 잦아든 틈을 타 약국에 달려가니 환부를 유심히 살핀 약사가 화기를 뺄 수 있도록 응급처치를 해주고 이후관리법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줬다. 약국에서 구입한 화상연고를 바르고 습윤밴드를 붙이자 화끈하던 손목이 한결 나아졌다.
“한 달 정도 지난 후에 A씨가 케이크를 사가지고 오셨어요. 당시에는 경황없이 급하게 처치를 받고 갔는데 덕분에 일도 계속할 수 있었고 상처도 잘 회복됐다고요.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거듭하는데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에서 ‘주엽1번출구약국’을 운영하는 강원산(32) 약사의 말이다. 환자가 찾기 편하도록 이름도 ‘주엽1번출구’로 지었다는 이 약국은 365일 연중무휴, 매일 새벽 1시까지 운영하는 공공심야약국이다.
병은 휴일에도 쉬지 않는다. 갑작스러운 고열은 밤에 더 자주 찾아온다. 심야에 아이가 갑작스러운 고열로 끙끙댄다면? 비상약이 필요하다면? 공공심야약국이 필요한 이유다. 공공심야약국 본사업은 2024년 4월 19일부터 시작된다. 2023년 3월 30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공심야약국 설치 운영에 대한 약사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2024년부터 전국적으로 시행하게 됐다. 공공심야약국은 365일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운영한다.
공공심야약국의 전국적인 확대는 국민이 직접 고른 최고의 규제혁신 사례로 뽑혔다. 11월 20일 국무조정실은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추진한 민생규제 혁신 대표 사례 20개를 두고 대국민 투표를 한 결과 공공심야약국 확대가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다고 밝혔다. 2022년 공공심야약국 시범사업 시절부터 사업에 참여한 강 약사는 “생각보다 심야에 약국 문을 두드리는 이들이 많다”고 했다. 도시가 잠든 시간에도 주민들의 건강 지킴이 역할을 위해 잠들지 못하는 강 약사를 만났다.
공공심야약국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나?
약국을 개국하기 전부터 생각했던 바다. 약대 재학 시절 진로를 고민하다 우연히 24시간 약국을 운영하는 선배 약사의 사례를 알게 됐다. 심야에는 약국 한 편에 간이침대를 놓고 쪽잠을 자며 찾아오는 환자를 맞더라. 그런 약국이 있다면 지역주민의 1차적인 경증질환 진료에 도움이 되겠구나 싶었고 그런 약사가 있다는 게 감명 깊었다. 2021년 일산 주엽역 1번 출구에 약국을 개국했고 당시에는 심야약국 제도가 생기기 전이라 자체적으로 밤 11시까지 운영했다. 인근 도시인 경기 파주나 김포에서도 문 연 약국을 찾아오는 이들이 있었다. 생각보다 수요가 많아서 나중에는 12시까지 운영시간을 늘렸다. 2022년 공공심야약국 시범사업 제도가 생기자마자 참여했다. 새벽 1시까지 운영시간을 늘리고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다.
심야에 약국에 오는 이들은 주로 어떤 경우인가?
환자의 3분의 1 정도는 야간에 해열제를 구하기 위해 온다. 단순히 해열제를 구하는 경우도 있고 낮에 처방받은 약이 잘 안 들어서 오는 경우도 있다. 해열제 중에는 교차 복용이 가능한 약과 아닌 약이 있는데 그 약에 대해 문의하러 오는 경우도 있다. 또 근무나 개인적 여건 때문에 낮에 병원에 못 가고 일을 마치고 오는 분들도 있다. 심야에 병원 응급실에서 약을 처방받은 후 문 연 약국을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한밤중에 약을 찾는 사례가 생각보다 다양하다.
대부분 급하면 응급실에 가면 되고 그 정도로 심각하지 않으면 집에 있는 상비약을 먹으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약이 필요한 사례가 많더라. 응급실에 갈 정도는 아닌데 아픈 경우나 응급실에 가면 오래 기다릴 것 같은데 당장 약이 필요한 경우처럼. 손님 중에는 ‘응급실에 안 가도 돼서 돈 아꼈다’며 고마워 하는 경우도 있고 ‘밤에 어떻게 할지 막막했는데 전문가에게 제대로 된 처방을 받으니 안심이 된다’고 하기도 한다.
경증환자의 수요가 많은가?
대한약사회 자료에 따르면 야간이나 휴일 등 취약시간대 1차 보건의료서비스 공백으로 응급실을 방문하는 환자 중 절반 이상이 경증환자라고 한다. 20개 대학병원 응급실 이용환자 중 비응급·경증환자가 75%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심야에 갈 수 있는 곳이 응급실밖에 없어서 가는 경우가 그만큼 많다는 거다. 경증환자를 약국에서 도울 수 있다면 응급실의 진료환경 개선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24시간 편의점에서도 상비약을 판다.
공공심야약국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환자와 약사 간의 소통이다. 약사는 환자와 눈을 보고 대화를 하면서 환자 병력이나 나이, 복용하는 약물, 현재 상태나 환부 등을 다 고려해서 종합적으로 투약과정이 이뤄진다. ‘언제부터 그런가?’, ‘먹고 있는 약이 있나?’처럼 약사들이 기본적으로 질문하는 게 있다.
‘환자와의 소통’은 아주 중요한 부분인 것 같다.
약사가 복약 안내를 할 때 환자와 대화를 하면서 그에 대해 추가로 세세하게 알게 되는 부분이 있다. 단순한 종합감기약 같은 경우도 감기약을 구매하러 온 노인이 손을 유난히 떠는 게 보이면 혹시 노인성 질환 중 하나인 파킨슨병 약을 먹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럴 경우 해로울 수 있는 특정 성분이 있는지를 살피고 약을 처방한다. 우리 약국 건물에 비뇨기과가 있어서 전립선 질환자들이 자주 온다. 그 환자의 병력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감기에 걸려서 오면 병력을 고려해서 감기약을 처방한다. 이렇게 약사가 환자에 대한 정보가 있으면 중간에 개입할 여지가 많다.
환자와 충분히 소통하려면 약사들의 노력과 시간이 더 필요하겠다.
약은 아주 적은 양이라도 개개인의 건강상태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낼 수 있다. 특히 효율성만 추구하다 보면 약자에 대한 배려가 결여될 수 있다. 어르신들은 ‘하루에 몇 번 몇 시에 드세요’라고 말하고 메모를 해줘도 집에 가면 또 전화를 해서 두 번 세 번 확인하는 경우도 많다. 모든 분야가 효율과 편의를 최대로 끌어내려 하지만 의료분야에서는 어느 정도 비효율이 허용돼야 한다. 공공심야약국도 효율성만 따진다면 생길 수 없었을 제도다.
개인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근무약사가 출근한다. 일요일은 낮에는 쉬고 밤 9시부터 야간에만 여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개인시간이 없는 건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 약국 안에서 할 수 있는 것도 많다.
공공심야약국을 운영하면서 ‘마그미 약국(경기지역 약물중독 예방 및 치료를 도와주는 약국)’도 병행하고 있다.
의료기관 중에서 약국은 상대적으로 상담 문턱이 낮다. 약물사용의 최전선에서 상담자를 발굴하고 상담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실제로 대구 달서구에서는 약국에 부착된 명패를 보고 마약중독으로 고민하던 20대 여성이 직접 상담을 요청한 사례가 있었다. 그 외에도 암 수술 때문에 진통제를 복용했다가 중독된 사례, 허리디스크로 마약성 진통제 처방을 받았다가 끊기 힘들어져 약국 상담을 통해 투약 방법과 용량 등을 조절한 사례 등이 있었다. 최근에 마약성 진통제의 오남용 문제가 심각하다. 환자에게 올바른 복약지도를 할 수 있고 중독자를 조기에 발견하는 등 약국이 1차 상담자 역할을 할 수 있다.
약국 안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은 것 같다.
깜깜한 바다를 밝히는 등대처럼 약사로서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다. 약국에 와서 상담받는 일을 부담스러워 하거나 미안해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러지 않아도 된다. 특히 심야에 방문하는 환자가 많지는 않기 때문에 충분한 상담이 가능하다. 약국과 약사에 대한 인식 개선에도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매일 새벽 1시에 퇴근하는데 집에는 어떻게 가나?
결혼 전에는 약국 근처에서 자취를 했는데 지난 달 결혼하면서 약국 가까운 동네에 집을 얻었다. 아내도 공공심야약국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응원해준다. 약국을 열기 전에는 연구직으로 신약개발을 해서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돌아보면 나에게는 특출하거나 뛰어난 재능은 없지만 한 곳에서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는 끈기는 있는 것 같다.
공공심야약국을 이용할 때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면?
심야에 아프면 경황이 없어서 그냥 달려오는데 평소 먹는 약이 있다면 약병이나 약봉투를 가져오면 좋다. 어떤 약을 먹는지 알면 처방에 도움이 된다. 기존 수술이력이나 기저질환에 대해서도 자세히 이야기해줄수록 더 안전한 복약지도를 할 수 있다.
“삶이 고달파 낮에는 병의원이나 약국에 못 가는 사람들에게는 밤새 꺼지지 않는 약국이 필요하다.”
경기 부천시에서 ‘24시간 약국’을 운영하는 김유곤 약사의 말이다. 이 말이 강원산 약사에게도 방향등이 돼줬다고 한다. 밤새 치통으로 고생하다 새벽에 약국에 달려온 환자, 아이 관장약을 구하려고 1시간 운전을 해 문 연 약국을 찾았다는 젊은 부부, 새벽 근무를 위해 일터로 나가면서 매일 피로회복제를 사는 아주머니…. 이들을 생각하면서 그는 오늘 밤도 약국을 지키고 있다.
공공심야약국은 누군가에게는 간이응급실이고 누군가에게는 새벽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길동무이기도 하다. 2023년 11월 현재, 새벽 1시까지 등대처럼 불을 밝힌 공공심야약국은 전국에 199곳이 운영 중이다.
유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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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심야약국 이용방법
대한약사회가 운영하는 휴일지킴이약국 누리집(www.pharm114.or.kr)을 이용하면 원하는 날짜와 지역의 공공심야약국을 검색할 수 있다.
휴일지킴이약국 검색은 연중무휴약국과 특정 시점에 운영 예정인 휴일지킴이약국으로 나눠져 있다. 해당 지역의 읍·면·동 명을 입력하면 세부적인 범위의 검색과 조회가 가능하다. 검색결과를 보면 주소와 전화번호, 운영시간이 뜨고 현재 운영 중인 약국의 경우 녹색 시계에 불이 들어온다. 지도보기를 누르면 해당 약국의 약도를 볼 수 있다. 방문 전에는 전화를 먼저 걸어 운영 여부를 확인하는 게 좋다. E-Gen(응급의료정보제공) 애플리케이션으로도 확인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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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심야약국 법제화로 달라진 것
1 공공심야약국 지정 근거를 마련해 지방자치단체장은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기준에 따라 약국 개설자의 신청을 받아 심야시간대 및 휴일에 운영하는 공공심야약국을 지정할 수 있게 됐다.
2 공공심야약국 운영 지원 근거를 마련해 공공심야약국을 운영하는 약국 개설자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3 공공심야약국 지정 취소 및 지원금 환수 근거도 마련했다.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지정받은 경우, 지정 기준에 미달, 운영시간 미준수 등 지정 취소 요건 및 지원 예산 부당집행 등 지원금 환수 요건을 명시해 적절히 제도가 운영되도록 제재조치 근거를 마련했다.
자료 보건복지부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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