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미술 작가들 불러 모아 튀르키예의 무너진 도시로 달려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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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프칠드런 김윤섭 대표
지난 2월 대규모 지진이 튀르키예 남부와 시리아 북서부를 강타했다. 규모 7.8의 강진으로 튀르키예에선 5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십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지진으로 무너진 도시는 폐허처럼 변했다. 순식간에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들은 임시정착촌 등에서 생활하며 무너진 일상을 회복해나가고 있다. 하타이주 이스켄데룬의 ‘한국 친선 컨테이너 마을’도 그중 한 곳이다. 튀르키예 한인회가 운영하는 이 마을은 컨테이너 하우스 562채로 구성돼 있다.
최근 이 마을에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김남표, 남지형, 두민, 박성수, 아트놈, 윤종석 등 한국의 유명 미술작가들이었다. 이들은 11월 11일부터 18일까지 이 마을에서 생활하는 300여 명의 청소년과 미술 수업을 진행하며 예술구호 활동을 펼쳤다. 예술 나눔 아트플랫폼 아이프칠드런이 주최하고 대한적십자사가 후원하는 국제구호 예술나눔 현장 수업 ‘희망의 색을 그리다’에 참여한 작가들은 튀르키예 청소년들과 특별한 시간을 보냈다.
이번 행사는 한국의 미술작가들이 국제 재난지역에서 펼치는 첫 번째 예술구호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김윤섭 아이프칠드런 대표는 “생존형 구호를 넘어 예술구호는 지진피해 후유증을 겪는 청소년들을 위로하고 심리적 안정과 회복을 위한 것”이라며 “나아가 이들의 꿈과 희망을 되살리는 미래를 위한 활동”이라고 했다. 아이프칠드런은 튀르키예를 시작으로 내년에도 국내는 물론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에서 예술구호 활동을 계속 펼쳐나갈 예정이다.
김 대표는 이런 예술 나눔을 위해 2022년 11월 공익재단법인 아이프칠드런을 설립했다. 예술을 통해 전 세계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보다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김 대표는 미술을 전공하고 미술 기자, 미술평론가, 전시기획자 등을 거치며 30년 가까이 미술계에서 잔뼈가 굵었다. 현재 아이프미술경영연구소장, 숙명여대 겸임교수,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자문위원, 문화체육관광부 예술경영지원센터 이사 등을 맡아 미술계를 종횡무진하고 있다. 미술로 세상을 밝게 만들고 싶다는 김 대표를 서울 청담동 아이프라운지에서 만났다.
튀르키예에서 지진 피해 이재민들을 만나다
하타이주는 튀르키예 강진으로 피해를 본 10개 주 중에서 가장 피해가 큰 곳이다. 이스켄데룬은 하타이주에서 가장 큰 도시로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지고 도로가 파괴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한국 친선 컨테이너 마을에는 이 지역의 이재민들이 머물고 있다. 이곳에서 300여 명의 청소년을 만 났다. 이들 대부분이 부모 중 한 명이 지진으로 사망했거나 부모를 모두 잃고 조부모와 생활하고 있었다. 처음 아이들을 봤을 때는 밝고 편안해보였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착각이라니?
미술 수업 중에 아이들이 직접 색칠한 종이로 집을 만들어보는 시간이 있었다. 아이들이 하나같이 2층으로 집을 올리는 걸 꺼려했다. 이유를 물어보니 지진으로 무너질까봐 걱정된다고 하더라. 웃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지진 피해의 트라우마가 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다.
그런 아이들에게 미술 수업이 도움이 되나?
그림을 그리면서 위로받고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길 바랐다. 틀에 박힌 수업보다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했다. 김남표 작가는 음악에 맞춰 아이들이 함께 춤추고 자유롭게 드로잉을 하도록 했다. 두민 작가와 남지형 작가는 아이들이 직접 색칠한 종이로 집을 만들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윤종석 작가와 박성수 작가는 스케치북에 튀르키예의 문화명소나 전통문양을 그리게 하면서 자신들의 나라와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아트놈 작가는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응원하는 의미로 일일이 그린 캐릭터로 배지를 만들어 선물했다. 앞으로도 영상이나 자료를 보내 아이들이 가상현실(VR) 드로잉, 미술 놀이 등 미술 활동을 이어갈 수 있게 하려고 한다.
아이들 반응은 어땠나?
예상했던 것보다 더 편안하고 즐거워했다. 신나게 춤도 추고 그림도 열심히 그리더라. 처음에는 낯을 가리던 아이들도 금세 작가들에게 다가와 말을 걸고 친근감을 드러냈다. 미술 활동이 이어지면서 아이들이 달라지는 걸 느꼈다. 또 방탄소년단(BTS)은 알아도 한국이라는 나라는 몰랐던 아이들이 나중엔 한글과 한국에도 관심을 가지더라. 한국에 유학 오고 싶다는 친구도 있었다.
이런 효과도 기대한 건가?
예술구호 활동은 단순히 미술 수업으로 아이들을 위로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이 아이들이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갖게 하는 데 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그 꿈을 이룰 수도 있다.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고 한국으로 오는 친구가 있을 거란 기대를 한다. 이들이 누군가의 꿈과 희망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친구들이 늘어난다면 분명히 10년, 20년 뒤에 큰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재난지역이라 구호 활동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컨테이너 마을은 넓은 평지 위에 컨테이너 하우스가 줄 지어 있는 곳이다. 주변에 다른 시설은 없다. 이스켄데룬이 지진 피해가 큰 지역이다보니 작가들과 묵을 숙소를 찾기 어려웠다. 결국 차로 2시간 30분 떨어진 숙소에서 매일 컨테이너 마을을 오가야 했다.
그런데도 많은 작가가 참여했다.
국내 미술시장에서 주목 받는 많은 작가가 예술 나눔이라는 공통분모로 모였다. 전문 작가들이 참여하는 예술구호 활동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의 현대미술은 국제 무대에서 ‘K-아트’로서도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한국 작가들이 예술을 통해 어떤 역할과 미래지향적인 실천을 선보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구호 활동으로서 새로운 시도인 것 같다.
그동안 재난지역에선 인도주의적 생존형 구호가 우선이었다. 아이프칠드런의 미술구호 활동은 일상생활의 감성적 회복을 돕는 ‘심리사회적 지지’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대한적십자사의 후원으로 튀르키예에서 의미있는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내년에는 더 많은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어떤 활동이 계획돼 있나?
내년 5월 튀르키예를 다시 찾을 예정이다. 대한적십자사가 카르만마라쉬 파잘직 지역에 조성한 한국·튀르키예 우정의 마을이다. 우정의 마을은 1007채 규모의 임시주택과 학교, 보건소, 놀이터, 마을회관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학교가 있는 만큼 더 나은 환경에서 미술 수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퍼포먼스와 음악 등을 가미한 새로운 형식의 미술 수업을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아티스트와 함께할 예정이다. 아프리카 말라위와 탄자니아에서도 예술 나눔을 진행한다.
국내에서도 꾸준히 예술 나눔을 하고 있다.
문화소외계층과 지역 청소년을 위한 문화체험 학습을 진행해왔다. 학생 수 100명 미만의 지역 초등학교 학생들을 서울로 초대해 미술관과 박물관, 작가 작업실 등을 돌아본다. 이런 경험이 아이들에겐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서울에 와서 박물관 등을 둘러보며 큰 자극을 받았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열악한 시골 학교에 다니던 내가 서울을 목표로 큰 꿈을 꾸게 된 계기였다. 나처럼 한 번의 경험이 삶을 바꿀 수 있다. 앞으로는 작가와 함께하는 아트 캠프나 청소년 리더십 아카데미도 운영할 계획이다.
청소년을 위한 활동에 무게를 두고 있는데.
10년, 20년 후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주역 아닌가. 청소년들이 어떤 환경과 감성, 자존감으로 내일을 꿈꾸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도 결정된다. 그 과정에서 예술이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예술을 통해 전 세계의 미래세대가 보다 나은 내일을 꿈꿀 수 있도록 다양한 아트 콘텐츠를 개발하고 지원할 것이다.
공익재단법인 아이프칠드런을 설립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미술계에서 30년 가까이 활동하며 예술이 가진 다양한 가능성을 확인하고 나눔과 기부를 실천해왔다. 그런데 개인으로는 한계가 있더라. 나눔과 기부에 관심 있는 작가와 기업, 기관이 함께한다면 시너지가 날 것이고 그러기 위해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공익재단법인을 설립한 이유다. 아이프칠드런이 출범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그 사이 튀르키예 지진 피해 어린이를 구호하기 위한 특별 자선 전시와 경매를 통해 마련한 1억 원의 구호 성금품을 대한적십자사에 전달했고 튀르키예 대사관에 직접 제작한 스케치북 4000부를 전달하는 등 예술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미래세대를 위한 아트플랫폼으로서 역량도 키워나가고 있다.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
돈이 많아서 하는 일도 아니고 돈이 돼서 하는 일도 아니다. 그저 나의 작은 날갯짓이 세상에 작은 변화라도 일으키길 바랄 뿐이다. 날갯짓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세상도 바뀌지 않을까? 누구나 쉽게 나눔을 실천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아이프칠드런은 누구나 예술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개인이든 작가든 기업이든 기관이든 원하는 방식으로 예술 나눔을 실천할 수 있도록 방법을 찾고 콘텐츠를 제공할 계획이다. 예술의 선한 영향력을 믿는다.
강정미 기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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