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는 피워도 꽁초는 버리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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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던 남자가 꽁초를 보도블록 위에 버리고 발로 밟는 순간, 얼굴이 파랗게 질리더니 손가락을 움켜쥐고 외마디 소리를 지른다. 담배를 끼우고 있던 손가락이 빨갛게 타들어가며 떨어져 나갔던 것이다. 흡연 직후 손가락을 잃는 이 충격적인 사건이 그날 뉴스 특보로 보도되는 순간에도 서울 시내 곳곳에서는 똑같은 사건이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었다. 정부와 수사당국은 이 사건을 반사회단체의 테러로 규정하고 특별수사반을 꾸렸지만 범인이나 범행 동기는 밝혀지지 않았다. 피해자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담배를 피우다 꽁초를 버렸다는 것뿐이었다.’
이건 내가 아내와 동네 골목길을 걷다 발견한 담배꽁초를 보고 순간적으로 생각해낸 드라마의 오프닝 신이다. 나는 1983년 개봉한 미국 영화 ‘이중 함정’이나 최근 종영한 SBS 드라마 ‘국민사형투표’처럼 사회적 흉악범들을 처단하는 상황을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담배꽁초를 버린 사람들의 손가락만 선택적으로 타들어가는 상황을 설명할 과학적 근거와 기술을 만들어내야 하므로 실제 드라마로 만들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내가 왜 이런 황당한 상상까지 하게 됐냐면 정말로 길거리에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들이 밉기 때문이다.
나는 담배를 25년간 하루 한 갑 반씩 피우던 지독한 골초였다. 그래도 꽁초를 버린 적은 없고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을 싫어했다. 실제로 자신의 차 안 재떨이를 더럽히는 게 싫어 차창 밖으로 불붙은 담배를 던지던 친구와 절교를 선언한 적도 있다. 나는 매일 동네 골목을 쓸며 담배꽁초를 주웠고 급기야 골목 입구에 유성매직으로 ‘담배는 피워도 꽁초는 버리지 맙시다’라는 표어를 써 붙였다. 하지만 나의 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표어 밑에는 늘 꽁초 한두 개가 나뒹굴고 있었다. 약이 바짝 오른 나와 아내는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을 설치해 범인 색출에 나섰다. 카메라에 포착된 범인은 앳된 인근 고등학교 학생들이었다. 우리는 사진을 확대 인쇄해 담벼락에 붙이고 또 한 번 와서 담배를 피우면 사진을 들고 교무실로 찾아가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학생들은 사라졌지만 인근 고깃집 직원 아주머니는 아직도 우리 집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버린다.
폐기물관리법 제8조 제1항에 의하면 생활 폐기물을 무단 투기하다 적발될 경우 100만 원 이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담배꽁초·휴지 등은 5만 원, 비닐봉지에 담아 폐기물을 버리면 20만 원이다. 또 담배 한 개비를 피우면 수명이 12분 정도 단축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5세 남성이 하루 한 갑씩 담배를 피우면 4∼6년, 두 갑을 피우면 8∼13년가량 생명이 단축된단다. 뭐 그들의 수명이야 내 알 바 아니지만 나는 지금도 죄의식 없이 담배꽁초를 버리는 광경을 목격할 때마다 슬프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은 타인을 생각할 줄 알아야 비로소 인간이라는 뜻인데 그들은 그 중요한 걸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 또한 어른들의 잘못이다.
편성준
유머와 위트 넘치는 글로 독자를 사로잡은 작가.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를 썼다. 현재 다양한 채널에서 글쓰기와 책쓰기 강연을 하고 있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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