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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정의(Justice), 다양한 질문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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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선 국민대학교 스포츠윤리연구소 박사김용선 국민대학교 스포츠윤리연구소 박사

우리 일상에 반복적으로 제기되어 오며 사라지지 않는 물음, 비록 명쾌한 해답과 해결이 불가능하지만 피할 수 없는 물음은 바로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 오늘날 ‘정의’ 문제가 많은 사람들에 의해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논의되는 것은 어쩌면 보다 나은 인간 사회의 구현에 대한 희망과 동시에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은 정의 문제에 대한 갈구함을 뜻한다. 

비단 스포츠도 예외는 아니다. 스포츠는 공정성과 경쟁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복잡하고 다면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현재 스포츠는 정치, 경제, 과학, 외교 등 여러 분야와 함께 상호보완적으로 발전하며, 우리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렇듯 복잡한 이해관계 안에 놓인 현대사회의 스포츠는 다양한 변수들에 의해 그 안에서 옳은 정의를 실현하기가 매우 어렵다. 실제 스포츠는 평등과 공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현실은 승리지상주의와 결과중심주의에 의한 평등과 공정성만을 확인하고자 하며, 스포츠의 다양한 가치와 스포츠 내 숨겨진 도덕을 간과하고 있어 스포츠 정의에 대한 고민은 더 깊다.

스포츠 정의의 실현을 위한 몇 가지 쟁점
우리 사회에서 스포츠 영향력은 시대적·사회적으로 변화하고 있어 시대가 변화하면 스포츠에 대한 인식도 스포츠 정의도 바뀌어야 한다. 사회에서 구현되는 정의는 하나로 규정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며, 시대와 환경의 지배를 받는 역동적 개념으로서 시대적 상황에 따라, 대상에 따라, 공동체의 관습과 문화 그리고 정치적 이유에 따라 다르다. 즉, 스포츠에서 정의 실현은 스포츠가 우리 사회에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가에 대한 이해와 시대에 부합된 기준과 잣대로 평가받아야 하며, 현실적인 측면에서 정의를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다.

1. 여성 선수 경기에 남성 선수를 페이스메이커(Pace maker)로 참여시켰다면, “페이스메이커는 전략인가? vs 페이스메이커는 의도된 희생인가?”

2003년 4월 런던 마라톤 대회에서 영국의 폴라 래드클리프(Paula Radcliffe)라는 여성 선수가 2시간 15분 25초의 세계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그 경기에서 폴라 래드클리프는 남성 페이스메이커 5명에 둘러싸여 결승선까지 달리며 그 기록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는 여성 선수 경기에 성별이 다른 남성 선수를 페이스메이커 역할로 참여시켜 얻은 폴라 래드클리프의 세계기록에 의문을 제기했지만, 세계마라톤연맹은 폴라 래드클리프의 기록에 문제없음을 공식화하며, 마라톤경기에서 페이스메이커의 존재를 사실상 인정했다.

스포츠는 경기할 때 경쟁에 이기도록 노력하는 모습이 정당한 행위이며, 스포츠경기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선수, 팀은 승리를 얻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스포츠 참여자들의 보편적 주장이다. 그렇다면 스포츠경기 내에 존재하는 페이스메이커의 역할은 같은 팀 선수의 우승을 위한 전략과 전술의 방법으로 보아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같은 팀에 소속된 선수의 우승을 돕기 위한 의도된 희생의 역할로 스포츠규칙의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팀워크를 가장한 경쟁성과 공정성을 훼손시키는 행위로 보아야 할 것인가?



2. 의족을 착용하며 패럴림픽이 아닌 일반 육상경기에 출전한 선수는, “장애를 극복한 인간 한계의 도전인가? vs 신체 한계를 극복한 도구에 대한 공정성 논쟁인가?”

2012 런던올림픽에서 육상 남자 400m에 출전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오스카 피스토리우스(Oscar Pistorius) 선수는 의족을 착용하며 근대올림픽이 개최된 이래, 장애를 갖고 패럴림픽이 아닌 일반인 육상경기에 처음으로 출전했다. 오스카 피스토리우스가 착용한 의족은 강철보다 강하고 알루미늄보다 가벼운 탄소 섬유 소재로 치타와 캥거루의 움직임이 반영된 뒤꿈치가 없는 알파벳 C 모양이다. 이를 통해 그는 마이클 존슨(Michael Johnson)의 육상 남자 200m 세계기록보다 1.5초 느린 기록을 갖게 되었다. 오스카 피스토리우스는 올림피즘의 상징적 모토인 인간 한계를 극복한 스포츠 휴머니즘을 보여주는 선수로서 찬사를 받았지만, 일반선수들은 그가 착용한 의족을 문제 삼아 공정성 논쟁으로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Athletics Federations)에 제소하였고, 이 문제는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 Court of Arbitration for Sport)에서 참가를 결정하며 5년 만에 일반선수들과 함께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오스카 피스토리우스의 올림픽 참가 문제는 장애에 의한 신체 약점을 극복한 인간 한계의 도전 문제인가? 아니면 안경처럼 자연적인 신체 한계를 극복하는 도구 또는 도핑처럼 인위적으로 경기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수단인가? 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쟁에 대한 타당성에 대한 윤리적 물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



3. 2020 도쿄올림픽에 역도 국가대표로 참여한 트랜스젠더 선수, “트랜스젠더 여성 선수의 인권 문제인가? vs 시스젠더 여성 선수를 역차별하는 공정성 문제인가?”

뉴질랜드의 역도 국가대표인 로렐 허버드(Laurel Hubbard) 선수는 올림픽 역사상 최초의 트랜스젠더 선수로 2020 도쿄올림픽에 참가하게 되었다. 공개적으로 자신의 성적 지향을 밝힌 논바이너리(Non-binary, 이하 LABTQ) 선수들의 올림픽 참여는 현재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처럼 트랜스젠더 선수의 증가와 관련하여 로렐 허버드의 올림픽경기 참여는 트랜스젠더 여성 선수가 시스젠더(Cisgender, 생물학적 성과 성 정체성이 일치하는 사람) 여성 선수들과 동일하게 경쟁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가라는 공정성 문제에 대하여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트랜스젠더 여성 선수의 경기 참여권은 ‘성 정체성과 관련된 인간 존엄성에 대한 인권 문제’와 ‘시스젠더 여성 선수들에게 역차별되는 공정성의 문제’이며, 더 나아가 스포츠 평등권의 문제로 어떤 균형을 만들어 내는가에 대한 매우 민감하고 복잡한 문제다.



4. 인간과 로봇(인공지능)과의 시합, “스포츠 속 인간과 기계와의 자연스러운 공존인가? vs 인간 존엄성을 훼손하는 윤리적 논쟁인가?”

1997년 설립된 세계로봇축구대회인 로보컵(Robocup)은 AI 로봇 축구대회로 로보컵의 최종 목표는 2050년 AI 로봇과 인간 월드컵 우승팀의 대결에서 AI 로봇이 승리하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전문가들은 AI 로봇들이 2050년 인간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은 아직 없지만, 30년 안에 어떤 기술이 어떻게 생길지 모른다며 그 가능성을 열어뒀다. 실제 2045년 기술이 인간을 초월한다는 문명의 특이점(Singularity)이 다가오고 있다는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의 논의에 따르면 로보컵에서 인간과 로봇과의 시합, 그리고 로봇의 승리는 그렇게 상상의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2016년 바둑 9단 이세돌과 알파고(AI)의 대전에서 알파고가 4대1로 승리하면서, 신체를 이용한 스포츠에서도 인간과 AI와의 경쟁이 머지않은 미래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이처럼 로봇공학, 유전공학, 생명공학 등과 같은 첨단 과학기술은 우리 일상의 커다란 파장과 함께 스포츠에서도 인간의 신체적 능력을 향상시키며 자연적 신체성을 벗어난 인간 존엄성의 문제, 향상된 신체에 의한 공정성 논쟁, 그리고 인간의 자유와 평등의 문제로 스포츠의 중심 가치들을 훼손할 수 있다. 첨단 과학기술이 스포츠를 어디로 이끌고 갈지 예측하는 일은 매우 조심스럽고 불분명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지금 우리는 새로운 문명을 열어가는 시대에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스포츠에 첨단 과학기술의 도입은 많은 기대와 우려의 논의로 소환되며, 스포츠 정의 실현을 위한 다양한 고민과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마치며

정의는 하나의 완결적인 이념인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를 보면 정의의 내용은 시대에 따라 바뀌고 있다. 우리의 일상은 자동화, 연결성의 극대화, 파괴적 혁신에 의한 첨단 과학기술에 의해 많은 것이 빠르게 변화되고 있다. 첨단 과학기술이 신체에 개입하며 스포츠에서도 인간 vs 인간의 시합을 넘어, 인간 vs 기계가 시합을 할 수 있는 시대로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있다. 이제는 과거 스포츠가 추구했던 스포츠 정의는 분명 이전의 정의와 다를 수밖에 없다. 정의의 문제는 이론적 체계에 의한 합리적이며 논리적 결과물이었던 정의보다는 사회적 인식과 정서를 기반으로 한 가치 기준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스포츠에는 자유, 평등, 배려, 인정, 화합, 연대, 공정, 정의 등 다양한 가치들이 존재한다. 물론 사회가 원하는 경쟁과 승리의 가치를 무시한 채, 스포츠의 전통적 도덕만을 고집한다면 현실과 분리된 스포츠문화만을 갖게 될 수도 있다.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 사회에서 스포츠를 통해 추구하고자 하는 중심 가치는 분명 이전의 가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스포츠 정의는 타고난 신체의 정상성을 기준으로 승리라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 공정성이란 명분에 따라 인종, 장애, 소수자, 종교, 젠더(Gender) 등을 차별하는 것이 아닌, 시대가 요구하는 스포츠의 역할과 정의가 필요하다. 즉, 스포츠에서 정의 실현은 스포츠가 추구하고자 하는 본질적인 핵심가치들이 시대가 요구하는 관점에서 이해될 때 가능해진다. 스포츠가 비교 테스트의 장으로서의 역할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포츠를 통한 다양한 긍정의 가치를 경험하고, 화합할 수 있는 확장된 스포츠 공동체를 구성하는 역할로 스포츠를 바라보는 변화된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이 발행하는 <스포츠 현안과 진단> 149호에 게재된 기고문 입니다.

*이번 호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과학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님을 밝힙니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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