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은 반드시 잡히는 범죄! ‘경제 살인’ 끝까지 추적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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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0억 피해 보이스피싱 조직 소탕
충남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안정엽 경위
국립대 교수 A씨는 2019년 11월 서울중앙지검 검사로부터 자신의 은행 계좌가 범죄에 이용됐다는 전화를 받았다. 검사는 A씨의 계좌가 범죄조직의 자금세탁 창구로 이용돼 공범으로 곧 구속될 거라고 했다. 깜짝 놀란 A씨는 전화를 끊자마자 112에 신고했다. 112를 통해 연결된 검찰에선 수사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고 했다. A씨는 “정상 자금인지 확인하겠다”는 검사의 말에 따라 현금 2억 원을 인출했다. 이어 금융감독원 직원이 전화를 해서 “검찰과 합동 수사를 진행 중인데 현금 일련번호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A씨는 금융감독원 직원을 만나 돈을 건넸다. 금융감독원 직원은 A씨에게 “금융권 내 범죄 조력자를 확인하기 위해 정상 대출 여부를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에 A씨는 8억 원을 대출받아 추가로 건넸다. 돈을 전달받은 뒤 이들은 연락이 끊겼다. A씨는 뒤늦게 전화금융사기(보이스피싱)에 당했다는 걸 깨달았다.
충남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최근 5년간 A씨를 포함해 1891명을 상대로 보이스피싱 범죄를 저지른 일당을 검거했다고 11월 1일 밝혔다. 피해액은 총 1490억 원. 보이스피싱 단일 조직으로는 피해자 수와 피해 금액 모두 역대 최고 수준이다. 이들 조직은 2017년 중국 항저우에 콜센터를 만든 뒤 검찰·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해 사기를 저질렀다. 피해자 상당수는 대기업 직원, 교수, 의사 등 고소득·고학력자로 조사됐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위조된 서류와 신분증, 검사 사무실을 영상통화로 보여줘서 속았다”고 진술했다. 영상 속 사무실에는 검사 명패와 검찰 깃발, 법복도 있었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은 대출금까지 노렸기 때문에 대출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신용도 높은 고소득·고학력자를 주 타깃으로 삼았다”고 했다. 이들은 또 ‘보안용 앱’이라고 속여 악성 애플리케이션(앱)을 깔게 만들었다. 이 앱을 깔면 112나 검찰청에 전화를 걸어도 보이스피싱 조직과 전화가 연결된다. 중계 기기를 이용해 전화를 가로챈 것이다.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자기 손으로 경찰, 검찰에 전화를 걸었으니 속을 수밖에 없었다.
역대 최대 피해 규모의 보이스피싱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안정엽(42) 경위가 이끄는 반부패수사대 6팀은 20개월간 매달렸다. 실체를 찾기 어려운 보이스피싱 조직을 추적하기 위해 피해자에게 음성파일을 받아서 피싱 목소리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고 성문(聲紋, 목소리 지문)을 분석해 조직 특정과 여죄 수사에 활용했다. 약 7만 쪽에 달하는 전국 수사기관 자료와 피해사실 수사기록도 분석했다. 치밀한 추적 끝에 반부패수사대 6팀은 10월 말 이들 조직의 한국인 총책과 콜센터 조직원 44명을 검거하고 이 중 12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11월 8일 경찰 역사상 처음으로 6팀 전원이 특별승진 추천 대상자로 선발됐다.
안 경위는 2013년 ‘김미영 팀장’이라는 이름으로 금융사기를 벌인 보이스피싱 조직을 검거해 특진한 데 이어 또다시 보이스피싱 조직을 소탕하며 특진 대상자가 됐다. ‘경제적 살인’이라고 불리는 보이스피싱 범죄 수사만 12년째. 안 경위는 오늘도 보이스피싱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아직 기뻐하긴 이릅니다. 보이스피싱 조직 검거 작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직 못 잡은 일당이 있습니다. 여전히 고통받는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남은 조직원들을 반드시 검거해야 합니다.”
남은 일당을 추적 중인가?
보이스피싱 조직은 대부분 해외에 본거지를 두고 운영되기 때문에 범죄자를 특정해 추적·검거하기가 쉽지 않다. 중국에 있는 남은 일당 중 일부를 추적하고 있는데 여러 지역으로 흩어진 상태다. IP 주소 추적 등을 통해 끝까지 찾아낼 계획이다. 피해자는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이들에게 피해를 입은 5명 이상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제적 피해를 넘어 삶이 송두리째 무너진 사람이 많다. 그걸 생각하면 추적을 멈출 수 없다.
이번에 검거한 조직의 범죄 규모가 상당하다.
애초 피해자가 130여 명(피해금 200억 원대)으로 파악됐으나 수사 과정에서 미제사건이 이들 소행으로 밝혀지면서 피해자가 확 늘어났다. 우리가 밝혀낸 1891명의 피해자와 1490억 원의 피해 금액은 일부에 불과하다. 수사력을 아무리 집중해도 이들 조직의 모든 범죄를 밝히기는 어렵다. 범죄 건수도, 피해자 수도 실제로는 7~8배 정도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 특정하지 못해 아쉬울 뿐이다.
피해 금액이 많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
41억 원, 24억 원, 18억 원, 10억 원…. 피해자 1명당 속아서 건넨 금액이 이렇게 많다. 이들 조직은 대출까지 받아 돈을 송금하게 했다. 한 사람 명의로 받을 수 있는 대출이란 대출은 다 받게 했다. 대출이 유리한 고소득·고학력자를 타깃으로 한 만큼 피해 금액도 컸다.
의사, 교수도 보이스피싱을 당했다.
이들 조직은 개인정보를 바탕으로 한 체계적인 시나리오와 첨단기술로 피해자를 속인다. 특히 피해자에게 보안 프로그램이라며 카카오톡 링크를 보내 휴대전화에 악성 앱을 설치하게 한다. 이를 통해 이른바 강수강발(강제수신, 강제발신)이 이뤄지면서 피해자의 휴대전화를 장악한다. 이때부터는 피해자가 자신의 휴대전화로 112, 검찰청, 금융감독원, 은행에 전화를 걸어도 모두 조직원과 연결된다. 위조된 서류와 신분증, 검사 사무실을 영상통화로 보여주기까지 하니 의심을 거두게 된다. 심리적으로도 압박을 가한다. 누구라도 속을 수밖에 없다.
수법이 치밀하다.
보이스피싱은 더욱 전문적이고 치밀하게 진화하고 있다. 기업화된 보이스피싱 조직이 이제는 지능적·조직적으로 범죄를 벌이고 있다. 이를 위해 조직원 교육에 심혈을 기울인다. 이번에 검거한 조직은 하루에 3시간씩 범죄 수법을 강의했다. 목표 달성을 위해 경영학 교수를 초빙해 강의까지 했다. 조직 내에서 성비위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성감수성 교육도 실시할 정도다. 능력 있는 조직원을 스카우트해 범죄를 더욱 치밀하게 벌인다.
조직의 실체를 밝히는 게 쉽지 않을 텐데.
보이스피싱 조직은 고액 단기 아르바이트라고 속이고 현금 수거책을 모집하는 경우가 많다. 현금 수거책을 검거해도 관리책이나 총책과 접점이 없어 실체를 추적하기 힘들다. 보이스피싱 조직에 건넨 돈은 빠르게 환전돼 해외로 빠져나간다. 조직들이 대부분 중국이나 필리핀, 베트남 등지에 본거지를 두고 있고 조직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찾아내기가 어렵다. 국가 간의 공조가 없이는 조직을 특정하고 검거하기도 쉽지 않다. 첩보나 내부고발자, 자수를 통해 실체를 밝히는 경우도 있지만 한정적이다.
그래서 이번 성과가 더욱 놀랍다.
이 조직을 와해시키지는 못하더라도 팔 하나는 반드시 잘라내자 마음먹었다. 지난해 팀을 꾸리고 팀장을 맡으면서 이 사건에 매달렸다. 밥 먹듯이 밤을 새우며 수사기록을 살펴보고 조직을 추적했다. 중국 공안의 협조를 통해 결국 총책과 관리책을 잡을 수 있었다. 최근 이 조직으로부터 18억 원을 빼앗긴 피해자가 특진 소식을 듣고 ‘축하한다’고 연락해왔다. 구속된 조직원들이 제대로 된 벌을 받아야 피해자에게 인사를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필리핀에 거점을 두고 560명에게 108억 원을 뜯어낸 보이스피싱 총책이 11월 3일 역대 최장기형인 징역 35년형을 선고받았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이 정도로 벌을 받으려면 수사기관이 제대로 ‘밥상’을 차려줘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 팀도 수사에 심혈을 기울였다. 역대급 판결이 나오길 기대한다.
올해로 보이스피싱 범죄 수사만 12년째라고.
2010년 천안시의 한 파출소에서 근무하다 보이스피싱 범죄를 당한 피해자의 신고전화를 받고 출동했다. 검찰 수사관이라며 전화를 건 남성에게 피해자는 1억 3000만 원을 송금한 뒤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금방 범인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범죄에 이용된 전화번호도 알고 계좌번호도 있었으니까. 그렇게 파출소에 피해 접수를 하고 사건을 경찰서로 이관했다. 얼마 뒤 이 사건을 담당한 선배를 만나 보이스피싱범을 잡았냐고 물었는데 ‘보이스피싱은 못 잡는 범죄’라고 하더라. 그때는 이해가 안 됐다. 화도 났다. 그리고 얼마 뒤 피해자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보이스피싱이 정말 무서운 범죄라는 걸 그때 느꼈다. 내가 수사를 해야겠다, 범인을 잡아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지능범죄수사대에 지원했고 지금까지 보이스피싱 범죄 수사를 하고 있다.
실제로 해보니 어떻던가?
처음에는 정말 좌절을 많이 했다. 보이스피싱은 정말 못 잡는 범죄구나 싶더라. 그렇게 막막할 때 서울 영등포경찰서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원을 검거했다는 뉴스를 봤다. 어떻게 잡았나 알고 싶어서 경찰서에 무작정 찾아가 도와달라 읍소했다. 외부 전문가도 찾아다니고 IP 주소 추적과 네트워크 관련 자문도 얻었다. 그렇게 몸으로 부딪히며 수사 기법을 터득해나갔다.
성과가 있었나?
수사 중에 현금 수거책으로 의심되는 남성을 포착했다. 그가 현금인출기(ATM)에서 돈을 인출할 때를 노렸다. 남성은 카드를 바꿔가며 30분 동안 돈을 뽑았다. 가만히 지켜보니 혼자가 아니라 6명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이들은 은행을 돌면서 돈을 뽑는 현금 수거 조직이었다. 잠복 끝에 이들을 덮쳤고 사기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보이스피싱 범죄 첫 검거였다. 그 자리에서 압수한 돈은 8700만 원이었다. 돈을 돌려받은 피해자가 고맙다고 하는데 뿌듯했다. 제대로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범인을 찾아가는 길을 제대로 찾기로 했다.
‘김미영 팀장’을 사칭하며 보이스피싱 범죄를 벌인 조직을 검거했다.
중국과 필리핀 등에서 보이스피싱 사기단을 조직한 뒤 ‘김미영 팀장’이라는 명의로 ‘저금리 대출가능, 신용불량자 대출가능’ 등의 문자메시지를 보내 543명으로부터 39억 8000여만 원을 가로챈 조직원들을 오랜 추적 끝에 2013년 검거했다. 보이스피싱의 원조격으로 불리는 이 사건 때만 해도 한 명당 피해 금액이 1000만 원을 넘지 않았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보이스피싱 피해 금액은 한 명당 평균 7800만 원에 이른다. 이전의 보이스피싱은 재산 편취에 그쳤다. 그러나 이제는 비대면 대출이 늘면서 피해자의 자산을 가로채는 데 그치지 않고 대출까지 받게 해 피해 규모도 커지고 있다.
대출까지 받은 피해자가 많나?
최근 만난 피해자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3억 5000만 원을 보냈다. 받을 수 있는 대출을 다 받았다. 월급이 300만 원이 채 안 되는데 매달 내는 이자만 500만 원이다. 올해 겨우 27세. 꽃다운 나이인데 이자를 갚기도 버거운 상황이다. 이자는 어떻게 갚는다 해도 원금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사례가 정말 많다.
피해자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겠다.
수사를 하다 보면 번아웃(탈진 증후군)도 오고 슬럼프도 온다. 그러나 피해자들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는다. 이번 수사를 하면서 팀원들이 많이 힘들어했다. 힘들 때 특히 기억에 남는 피해자와 통화를 한번 해보라고 했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고 그만두고 싶다면 경찰 안 해도 된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절대 이 일을 게을리할 수 없다.
어떻게 해야 보이스피싱을 피할 수 있나?
보이스피싱이란 범죄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피해자들은 ‘이게 보이스피싱인 줄 몰랐다’고 한다. 그만큼 보이스피싱 조직은 교묘하고 치밀하게 피해자를 속인다. 피해를 막는 방법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딱 이거다 하는 게 없다. 경각심을 갖고 항상 의심하는 수밖에 없다. 검찰을 사칭하거나 ‘서울중앙지검 ○○○입니다’라고 하면 전화를 끊어라. 보이스피싱 예방을 위해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음성파일을 공개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범인의 목소리나 피해 사례를 자주 접하면 피할 수 있지 않을까?
보이스피싱은 근절될 수 있을까?
예전에는 한국인이 보이스피싱 조직을 만들어 중국 조선족을 수행원으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반대로 중국 조선족이 총책을 맡아 한국인을 수행원으로 쓴다. 조직을 움직이는 총책을 잡지 못하니 보이스피싱 조직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피해가 생긴다. 중국 공안이 함께 나서 보이스피싱 조직을 소탕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우선은 범행 수행 비용을 높이는 것도 방법이다. 범죄 수익률이 좋아야 범행도 하는 법이다. 예를 들어 해외에 있는 콜센터에서 전화를 하면 번호를 바꿔주는 중계기계를 계속 없애는 것도 방법이다. 기계 가격이 높아지면 그만큼 범죄도 줄어들지 않을까?
앞으로 목표는?
보이스피싱 수사는 ‘추적 끝판왕’이라고 부른다. 끈질기게 추적해서 한국을 대상으로 하는 전 세계 보이스피싱 조직을 다 수사하는 게 목표다. 못 잡더라도 그 실체를 다 밝히고 싶다. 무엇보다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범죄를 처단하기 위해 수사 기법을 새롭게 개발할 생각이다. 밝힐 수 없지만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있다. 이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고 동료들과 공유하고 싶다.
강정미 기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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