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인식하는 두 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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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아야 할까요?” 명상 수업을 듣던 대학생이 쉬는 시간에 어두운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학교 졸업하면 취업하고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다가 병들어 죽어야 하는 게 내가 살아야 할 삶이잖아요. 뻔한 인생인데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는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대학에 합격하고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 쓰는 착실한 청년이었다. 청년의 질문을 옆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40대 중반의 직장인도 비슷한 질문을 던졌다. “지금까지 앞만 보며 달려왔는데 문득 뒤돌아보니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아온 건지 모르겠어요. 나는 도대체 왜 살고 있는 걸까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대답에 앞서 먼저 상대방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 삶의 이유를 찾는 의문이 본질을 향한 철학적 사유에서 생긴 것인지, 아니면 삶이 너무 힘들고 공허해서 살아야 하는 의미를 절박하게 찾고 있는 것인지 유심히 지켜본다. 안타깝지만 착실한 대학생과 성실한 직장인은 모두 후자에 해당했다. 그들은 너무 열심히 살아온 ‘열정 후유증’을 앓고 있었고 지향의식(指向意識)의 노예가 돼 있었다.
우리는 지향의식과 무지향의식(無指向意識)이라는 두 가지 방법으로 세상을 인식한다. 지향의식은 말 그대로 지향성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가진 의식을 말한다. 무언가를 이뤄야 한다는 목표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고 의미가 된다. 지향의식은 부족한 욕망을 채우는 과정을 가치 있게 여긴다. 돈이 없으면 돈 버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기고 경쟁에서는 이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반면에 무지향의식은 욕망을 이루기 위한 뚜렷한 지향성이 없는 의식을 말한다. 무엇을 이루겠다는 목적 대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긴다. 무지향의식의 세계에서 삶의 의미는 ‘존재 자체’다. 잘하지 못해도, 만족할 만한 결과가 없어도 존재의 가치를 수용하고 받아들인다.
지향의식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삶의 의미도 공허해진다. 목적을 이룰 때까지 끝없이 경쟁하며 욕망의 에너지를 불태우는 것은 성취의 순간마다 희열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만족을 모르고 되풀이되는 이 과정은 결과적으로 깊은 허무를 불러일으킨다. 더 많은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노력할수록 살아남기 위해 투쟁하는 생존 기계가 될 뿐이다. 그래서 삶의 의미는 무지향의식을 통해 찾아야 한다. 무지향의식은 실패해도, 무능하고 못나도, 재능이 없어도 자기 자신을 탓하거나 나무라지 않는다. 더 나은 상대와 자신을 비교하거나 분석하지도 않는다. 다만 지금, 이 순간 살아 숨 쉬고 있는 나라는 존재를 소중하게 생각할 뿐이다. 우리에게는 살아야 하는 필연적인 인과(因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존재하는 매 순간만이 있을 뿐이다. 그 존재의 순간이 내가 알아야 할 의미이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다.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현존의 의미보다 더 큰 삶의 의미는 없다.
수업이 끝나고 왜 살아야 하는지 물었던 젊은 학생과 중년의 직장인에게 무지향의식이 바라보는 삶의 의미에 관해 설명해줬다. 힘든 삶의 여정 속에서 존재의 가치가 삶의 의미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지친 그들의 마음을 마음으로 안아줬다.
신기율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마인드풀링(Mindfuling) 대표이자 ‘마음 찻집’ 유튜브를 운영하며 한부모가정 모임인 ‘그루맘’ 교육센터장이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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