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품종 개발하고 보급하고 산초에 바친 30년 “산초로 덕 보는 사람 많으면 그걸로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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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임업인’ 경남 하동군 지리산산초 한치복 대표
초피나무속에 속하는 산초나무는 고부가가치 작목이다. 예로부터 약용으로 쓰인 산초의 가공품 중 가장 인기가 많은 산초기름은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만들기 바쁘게 팔린다. 문제는 산초나무 재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습해에 취약한 데다 재배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특히 산초나무의 가시 때문에 산초 농사를 모두 꺼렸다. 지난 10월 산림청 ‘이달의 임업인’으로 선정된 경남 하동군 ‘지리산산초’ 한치복(86) 대표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 전국에 산초 농사를 확산시킨 주인공이다. 한 대표는 우리나라 최초로 가시가 없는 산초나무를 개발하는 등 새로운 7종의 산초나무 품종을 개발했다. 지리산 자락에서 30여 년째 산초나무를 재배하는 한 대표는 ‘산초 박사’로 불린다. 한 대표는 힘들게 개발한 묘목을 주변 농가에 나눠주며 산초 농사를 권하고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했다. 우리나라 산초 농사에서 한치복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한 대표가 처음부터 산초에 지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 대표 또한 산초나무 재배에는 문외한이었다. 일찍 소년가장이 된 한 대표는 가마니 짜는 일부터 시작해 안해본 일이 없다. 40여 년 전에는 한우 목장을 하다 사고로 한쪽 팔을 잃었다. 한 팔로 산초 농사를 짓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지만 한 대표는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 없다. 남들보다 조금 더 힘들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한 대표가 산초나무를 만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돈을 모아 대출을 끼고 8헥타르(ha)짜리 산을 하나 샀다. 밤나무를 심어 밤 농사를 시작했다. 밤나무 사이에 자생 산초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어느 날 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다. 한 그루에서 수확한 열매가 1㎏이 넘었다. 문득 어린 시절 산초 열매를 약재로 썼던 일이 생각났다. 열매를 수확한 후 경남 산림환경연구원에도 보내고 연구를 하면서 산초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산초나무를 개발하기까지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수없는 시행착오 끝에 신품종 개발에 성공하자 한 대표는 산초 농업 확산을 위해 지리산하동산초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초대 이사장을 지내면서 산초 농가를 돕는 일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다. 현재 사회적협동조합은 전국 단위로 발전했고 수백 명의 산초인이 탄생했다. 한 대표가 개발한 새로운 품종의 산초는 2019년 ‘산림신품종재배단지 시험사업’에도 선정됐다. 경남 하동에서 한 대표를 만나 전쟁과도 같았던 산초와의 30년 이야기를 들었다.
산초는 뭔가?
산초는 산에 자생하는 나무 열매다. 생김새는 초피나무 열매와 비슷하다. 알맹이만 놓고 보면 구분을 못한다. 대부분 꽃을 보고 구분한다. 산초의 꽃은 국화처럼 한 송이가 피지만 초피나무는 한 가지에 여러 갈래로 꽃이 핀다. 산초는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 등지에 분포돼 있다. 산초 열매를 가루로 만들어 추어탕이나 음식에 넣어 먹고 산초기름을 만들기도 한다. 예로부터 산초기름은 만병통치약처럼 사용했다. 내가 어렸을 땐 집집마다 산초기름을 보관해두고 머리가 아프거나 소화가 안될 때, 혹은 상처가 났을 때 바르곤 했다.
언제 처음 산초를 재배하기 시작했나?
처음 시작한 건 1980년대 말로 그때는 본격적으로 한 것이 아니었다. 실험적으로 조금 해봤고 하다 말다를 반복했다.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4만 9500m²(1만 5000평)규모의 산초와 묘목밭을 운영하고 있다.
한 가지도 아니고 모두 7종의 산초 품종을 개발했다. 어떻게 개발하게 됐나?
한 가지 종류에서 조금씩 바뀐 것이다. 산초는 원래 조생종, 중생종, 만생종이 있다. 처음 산초를 재배하면서 어려움이 많았다. 특히 산초나무 가시 때문에 일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일손이 모자라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도 가시 때문에 일을 못하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가시 없는 산초나무를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개발한 7종의 신품종은 각각 어떤 차이가 있나?
▲한초915호 ▲한초930호 ▲한초5호 ▲한초1010호 ▲한초15호 ▲한초1020호 ▲한초1030호가 있다. 7종 중 가장 큰 차이는 가시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다. 또 열매 수확 시기와 양도 조금씩 다르다. 처음 개발하면서 나무의 성질과 특성을 이용해 조금씩 바꿨다. 품종 이름에 붙은 숫자는 각 나무의 수확 시기를 의미한다.
신품종을 개발하면서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
어려서부터 산초나무는 알고 있었지만 산초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그런 내가 신품종을 개발하려고 하니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어렵사리 가시 없는 산초나무를 개발하고 묘목을 옮겨 심었는데 예상보다 수확량이 적어 좌절했다. 계속 실패를 거듭하다보니 오기가 생기기도 했고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어렵게 개발한 산초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개발한 신품종은 열매도 기존보다 훨씬 많이 달리고 가시가 없어 작업하기도 수월했다. 이걸 나 혼자 알고 있으면 뭐하나.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씩 나눠주다보니 지금처럼 산초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산초로 인해 많은 사람이 덕을 보면 그걸로 만족하다.
산초는 어떤 효능이 있나?
산초는 우리나라에 페니실린, ‘다이아찡’이 들어오기 전까지 민가에서 상비약으로 많이 사용했다. 조선시대 이전부터 열매의 껍질을 약재로 사용해왔다. ‘동의보감’에 따르면 산초는 맛은 맵고 성질은 따뜻해 위장의 독소를 제거하고 통증을 완화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 같은 효능 때문에 지금도 한방 약재로 쓰이고 있다.
산초 가공식품 중 산초기름이 잘 팔린다고 들었다.
산초는 기름으로 먹을 때 건강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는 산초를 볶거나 쪄서 짜지 않고 생으로 짠다. 볶는 것보다 생기름은 오메가3 함유량이 훨씬 많다. 그런데 생으로 짜면 양이 많이 나오지 않는 것이 단점이다.
산초기름의 생산 공정은 어떻게 되나?
보통 3월부터 꽃이 피기 시작한다. 이후 9월 15일부터 수확을 시작해 10월 30일까지 끝낸다. 그다음 자연건조를 시켜 껍질을 벗겨낸 다음 기름을 짠다. 생산량은 매해 다르다. 산초 1㎏에서 기름 1병이 나온다고 보면 된다. 직접 생산한 열매로는 수요를 못 채워서 다른 재배 농가에서 열매를 수매해 가공하기도 한다.
직접 개발한 신품종 덕분에 산초 농가가 많아졌다.
산초를 재배하는 사람들을 보면 뿌듯하다. 개발한 산초를 독점으로 재배할 수도 있었지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 같이 잘 먹고 잘사는 사회가 돼야 하지 않겠나. 그런 생각에서 조금이라도 나누고 싶었다. 만일 독점으로 생산해 비싼 값에 산초를 판매한다면 사람들이 사먹지도 않을 뿐더러 중국에서 싼 산초가 들어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내산 산초는 설 땅이 없어진다. 전국에서 산초를 잘 키우는 모습을 보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30년 동안 힘든 농사를 지탱한 힘은 뭔가?
딸이 큰 힘이 돼주고 있다. 나이가 들어 직접 농사짓기가 어려워 대부분 딸이 맡아서 하고 있다. 농사는 너무 힘든 일이다. 수확량이 좋지 않은 해에는 마음이 아프고 힘이 빠진다. 모든 농민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도 내가 개발한 산초를 먹고 사람들이 건강해지고 이를 통해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저절로 힘이 난다. 그게 지금도 나를 움직이게 하는 힘이다.
정광성 기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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