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땐 109로 전화하세요 마음을 구조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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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자살예방의 날’ 보건복지부장관 표창 배우 이정은
교복을 입은 한 10대 소녀가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다. “죽고 싶은 마음도 들고….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요.” 그 옆에 나란히 앉은 배우 이정은 씨가 말한다. “힘든 마음 편하게 얘기하세요.” “가족이나 친구한테도 말한 적 없는데….” 이어지는 한 청년의 고민에는 “비밀 보장되니까 걱정 마세요”라고 다독인다. “내가 별 얘기를 다하네…”라며 말을 아끼는 한 어르신에게는 “솔직한 마음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답한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의 2024~2025년 자살예방 공익광고다. ‘자살을 생각하고 있나요? 당신의 마음을 구해줄 109로 연락 주세요’라는 메시지를 담은 이 광고에서 이 씨는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의 상담사 역할을 맡았다. 절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이 삶의 끈을 붙잡을 수 있도록 위로를 전하는 그의 진정성 있는 목소리는 수많은 사람의 마음에 가 닿았다.
이 씨는 자살예방 공익광고에 출연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우리나라의 자살률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건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내 주변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더라고요.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있었던 만큼 자살을 예방하기 위한 공익광고에 기꺼이 출연하게 됐습니다.”
이 공익광고는 유튜브에서만 조회수 6191만 회를 기록했고 다양한 누리소통망(SNS)을 통해 공유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공감의 댓글도 줄을 이었다.
‘자살예방 공익광고 중 최고다. 이정은 배우의 따뜻한 목소리가 큰 힘이 됐다.’
‘대화상대가 없어 고립된 분들에게 마음구조 109가 위로를 건네주는 것 같아 영상을 보는 내내 뭉클했다. 109가 더 많이 알려져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진심이 닿았으면 좋겠다.’
‘힘들어도 내 옆에 도와주는 사람이 아예 없다고 생각하지 않고 바로 마음구조 109로 전화하겠다.’
이 씨는 이 공익광고로 자살예방과 생명존중 문화 확산에 기여했다는 공로를 인정받아 9월 10일 열린 ‘2025년 자살예방의 날’ 기념식에서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영화 ‘기생충(2019)’ 등 굵직한 작품들을 통해 대한민국 대표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한 이 씨는 10월 23일 특별한 레드카펫을 밟았다. 대중문화예술 분야 최고 권위의 정부 포상인 ‘2025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에서 대통령 표창을 수상한 것이다. ‘천의 얼굴’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연기 폭을 넓히며 종횡무진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가운데 ‘생명지킴이’로 나선 그를 만났다. 정부도 자살을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하고 자살대책추진본부를 연내 설치하는 등 자살 문제 해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참이다.
우리나라의 자살 문제, 정말 심각하다.
우리나라 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라고 하지 않나. 심지어 이런 오명을 20년째 안고 있다. 청소년 자살 문제는 특히 심각하다. 1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자살을 터부시하거나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곤 한다. 하지만 자살의 원인은 경제적·사회적·관계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자살 위기를 넘기기 어렵다.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공론화하고 함께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힘들 때 누구나 손을 내밀면 잡아줄 수 있는 안전망이 필요하다.
109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
자살예방 상담전화는 24시간 운영된다. 모든 전화는 비밀이 보장된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말하지 못하는 고민이나 우울감을 털어놓을 수 있고 전문적인 상담이 가능하다. 사실 나도 공익광고에 출연하기 전까진 109에 대해 잘 몰랐다. 자살예방 상담전화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119처럼 기억하기 쉬운 세 자리 번호에 언제든 상담사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담전화가 24시간 운영되고 있다고 해서 놀랐다.
복지부는 2024년 1월부터 기존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을 비롯해 8개 기관의 상담전화를 109로 통합해 운영하고 있다. 109는 긴급신고 119와 같이 자살이 ‘구조가 필요한 긴급한 상황’이라는 인식을 준다. ‘한 명(1)의 생명도 자살 없이(0) 구(9)하자’는 의미도 담고 있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에는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 또는 SNS 상담 마들랜(마음을 들어주는 랜선친구)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다.
공익광고에서 109 상담사 역할을 맡았다.
109에는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지만 부모님께 말하지 못하는 청소년부터 가정폭력으로 후유증을 앓는 주부까지 다양한 사연과 고민이 쏟아진다. 상담사들은 그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위로하며 필요한 도움을 준다. 언제든 손을 내밀면 손 잡아주고 어떤 이야기든 들어주는 상담전화와 상담사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대사가 있나?
연세 많은 부모님과 함께 살아서 그런지 “내가 별 얘기를 다하네”라던 어르신의 대사가 마음에 남았다. 말 한마디 나눌 사람도 없이 사회적·경제적으로 고립된 어르신이 많다. 109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 망설이지 말고 언제든 전화해서 도움을 요청하길 바란다.
정부는 자살예방법에 따라 매년 9월 10일을 자살예방의 날로, 자살예방의 날부터 일주일을 자살예방주간으로 각각 정하고 전시나 강연 등의 교육·홍보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자살예방협회(IASP)가 기념하는 세계 자살예방의 날도 9월 10일이다. 복지부는 이날 ‘2025년 자살예방의 날 기념식’을 열고 지난 1년간 자살예방과 생명 존중에 공헌한 개인과 기관에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수여했다.
9월 10일 보건복지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책임감이 큰 상이다. 공익광고를 통해 109가 더 많이 알려지고 도움을 얻는 분이 많아지면 좋겠다. 앞으로도 자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자살예방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힘을 보태고 싶다. 자살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언제든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단순한 자해가 반복돼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자살사망자에겐 이런 자해 흔적이 발견되곤 한다고 들었다. 주변에 이런 위기에 놓인 사람은 없는지 관심을 갖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누구나 살면서 좌절과 실패, 힘든 순간을 마주한다. 힘든 순간이 있었을 텐데 어떻게 이겨냈나?
첫 연애가 깨졌을 때다. 대학에 들어갔을 때 내가 좋아하면 상대도 나를 좋아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좋아하는 상대에게 내 감정을 거부당한 후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사랑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했을 때다. 그땐 확 죽어버리고 싶었다. 그때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내일 연극 연습이 있으니 몇 시까지 나오라는 거다. 그 약속을 지켜야 된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충동적인 감정이 싸악 사라졌다. 사랑이 아니라도 살면서 경쟁하고 실패하고 낙오하고 이런 순간들이 올 수밖에 없다. 그런 순간들을 잘 극복하고 여기까지 왔지만 내가 이겨냈으니 당신도 이겨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정말 힘들 때는 전문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길 바란다. 우리 사회는 정신건강의학과를 찾는 걸 꺼려하고 숨기려 한다. 상담이나 약물이 꼭 필요한 순간이 있다. 나도 정말 힘들 땐 병원을 찾았다. 그게 어렵다면 전화로라도 도움을 요청하길 바란다. 전화 한 통이 주는 힘은 크다.
배우라는 직업은 감정 소모가 크고 대중의 평가와 악플도 따라다닌다.
연기를 하면서 오히려 감정을 해소하는 경우가 있다. 다양한 역할을 하면서 평소에 표출하지 못했던 감정을 표현하니까. 가끔 혼자 여행을 떠날 때도 있다. 작품을 하면서 팽팽해진 영혼을 느슨하게 만드는 시간이다. 운동도 하고 K-팝 댄스도 배우면서 스트레스는 날리고 내 몸과 마음 건강을 챙기곤 한다. 대중의 시선은 오히려 즐기는 편이다. 이름이나 얼굴이 대중에게 알려진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알아봐주고 반겨주면 즐겁고 좋다. 사인도 열심히 해주고 사진도 찍어준다. ‘기생충’ 덕분에 요즘엔 해외에서도 알아보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알아봐줄 때 맘껏 누릴 생각이다.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지나간 스타가 될 거 아닌가. 악플은 가끔 본다. 다행히도 상처는 안 받는다. “배우라는 직업은 어떤 평가든 따라올 수밖에 없다. 다만 악플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거나 깊이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냥 쓰레기통에 감정을 버리고 싶은 사람도 있으니까. 악플에 너의 존재 가치를 침해당할 필요가 없다”는 선배들의 조언이 도움이 됐다.
경쟁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나도 여전히 경쟁하고 또 경쟁한다. 이건 비단 배우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경쟁을 하며 살아간다. 그러면서 나와 타인을 비교하고 끊임없이 평가한다. SNS가 발달한 요즘 그래서 더 좌절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기보다 자기 자신에게 집중해야 한다. 그러면 더 멋지게 변해가는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출연작 중에 지금 마음이 힘든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는 내가 연기한 생선 장수 은희부터 가장의 무게를 짊어진 기러기 아빠 한수(차승원 분), 다운증후군 쌍둥이 언니를 둔 해녀 영옥(한지민 분), 하나 남은 아들을 잃을 뻔했던 춘희(고두심 분), 고등학생 딸의 임신 소식을 듣게 된 아빠 호식(최영준 분), 평생 엄마를 원망하며 그리워했던 트럭 만물상 동석(이병헌 분)까지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상처도 사연도 많지만 결국 저마다의 힘으로 행복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며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낮과 밤이 다른 그녀’는 낮에는 50대가, 밤에는 20대가 되는 취업준비생의 이중생활을 그린 드라마로 취준생과 중년층이 공감할 만한 이야기와 감동이 있다.
지금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라는 작품에 “밤이 길겠지만 반드시 아침은 옵니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아무리 밤이 긴들 아침은 오고 힘든 시간도 분명히 지나갈 것이다.
강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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