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스타트업’, 다시 기회로 전환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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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문 창업진흥원장 |
또 한번의 위기, 스타트업에 불어닥친 투자 한파
최근 스타트업 투자시장은 ‘혹한기’에 접어들고 있다. 불과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전례 없는 호황을 누리며 수많은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을 배출시켰던 스타트업 투자시장에 거센 투자 한파가 불어닥치고 있는 것이다.
절체절명의 위기였던 코로나19가 주춤해지자 세계 각국이 양적완화 정책을 거둬들이며 유동성 잔치가 끝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 위기는 실물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며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부추겼다. 그리고 그 파장이 금융시장에도 일어나며 스타트업들은 기업공개(IPO) 일정을 연기 또는 철회하고 투자자들은 회수 불확실성 증가로 인해 소극적 투자전략으로 전환하는 등 투자시장이 얼어붙기 시작한 것이다.
투자시장의 가장 큰 이슈는 단연 ‘금리인상’이다.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빅스텝(0.5%p 금리인상)’과 연이은 ‘자이언트스텝(0.75%p 인상)’을 단행했으며 이는 세계 각국의 빅스텝 도미노 현상을 야기하였다. 우리나라 역시 가파른 물가상승을 억제하고 미국의 공격적인 금리인상 및 원화약세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7월 13일 사상 처음으로 ‘빅스텝’을 결정하였다. 이렇듯 글로벌 금리인상 기조, 인플레이션 공포 등이 현실화하면서 투자심리가 급격히 위축되며 투자시장이 더욱 꽁꽁 얼어붙고 만 것이다.
이를 방증하듯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CBInsights에 따르면, 2022년 1분기 글로벌 벤처투자 규모는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던 2021년 4분기(1779억 달러) 대비 약 19% 급감한 1439억 달러를 기록했다. 또한 국내 2022년 1분기 벤처투자 규모 역시 2021년 4분기(2조 4209억원)에 비해 약 14% 감소한 2조 827억원으로 집계돼 벤처투자 열기가 꺾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세계 최대 액셀러레이터 와이콤비네이터(YC)는 ‘최악의 상황을 준비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을 모색하라’고 강조했다.
투자시장의 변화와 스타트업의 대응
이러한 세계적인 투자 한파 속에서 투자시장에는 급격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크런치베이스(Crunchbase)의 글로벌 투자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2년 2분기를 기준으로 초기단계(early-stage)의 경우에는 전년동기(487억 달러) 대비 약 9% 감소한 442억 달러의 투자가 이루어진 반면, 후기(late-stage funding) 및 기술성장(technology growth funding) 단계의 투자는 전년동기(1084억 달러) 대비 약 38%의 큰 폭으로 감소한 667억 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극초기에 해당하는 시드투자(seed funding)의 경우 91억 달러가 투자되며 오히려 전년동기(83억 달러) 대비 약 9.6%가 증가했다는 부분이다.
이러한 결과는 투자자의 입장에서 초기단계의 스타트업은 자금이 수익과 직결되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경기변동의 영향을 덜 받지만 후기단계일수록 시장 상황에 더욱 민감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또한 지금과 같은 투자시장 위축에도 많은 투자자들이 성장 잠재력과 미래 가능성이 우수한 극초기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투자자들이 아직까지 극초기 스타트업에는 ’성장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이후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는 전단계에서 ‘실적’ 중심으로 그 초점이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간 스타트업들은 불투명한 수익성과 취약한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성장성을 담보로 유동성에 의지해 외연 확장을 이루어 왔다. 특히, 소비시장을 중심으로 한 플랫폼 스타트업에 관심과 투자가 집중되어 온 만큼 지금과 같은 실물경제 위기 속에서의 투자시장 재편은 이미 예고된 수순일 것이다. 즉, 플랫폼 스타트업의 성공조건인 외연 확장과 성장 가능성보다 당장 수익을 실현할 수 있는 플랫폼 스타트업에 대한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된 것이다.
이러한 스타트업의 위기 상황에 대한 대비책은 한 가지로 좁혀진다. 바로, ’성장‘보다는 ’생존‘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낭비를 줄여 새로운 기회에 투자하고 수익을 올려 ’런웨이(runway, 생존기간)‘ 연장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러한 이유로 전 세계 스타트업의 구조조정이 현실화되고, 빠르게 성장하는 스케일업(scale-up) 전략에서 당장의 수익성 확보로 전략을 급선회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늘 그렇듯 위기와 기회는 공존하기 마련이다. 급격히 변화하는 투자환경에 맞춰 기술력과 성장성을 갖춘 스타트업들이 혹한기 속 한파를 뚫고 나갈 수 있도록, 스타트업 생태계의 전략적 변화와 함께 정책적 지원을 다시금 정비해야 할 시기다. 그리고 분명한 점은 글로벌과 우리의 스타트업 생태계는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스타트업 중심의 민관협력 스타트업 생태계 모델이 견고하게 구축되어 있다. 즉, 코로나19 시기에 제2벤처붐을 이뤄냈듯 민-관의 협력을 토대로 투자시장 위축의 충격을 완화해 벤처붐을 이어나갈 발판이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위기 속 스타트업, 민-관이 함께 돌파구를 마련해야
이러한 민관협력 스타트업 생태계를 기반으로 우리 스타트업이 또 한번의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도록 생태계 전반에 다양한 지원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가장 먼저, 투자시장 위축에 대응하기 위해 민간자금 유입의 마중물로서 모태펀드, TIPS 등 민관협력에 기반한 정책투자의 역할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그간 우리 정부는 정책자금으로 모태펀드를 꾸준히 출자해 7조 2775억원(2021년 기준 누적액)의 모태펀드를 조성하였으며 이를 통해 2021년에만 3조 9017억원을 투자하며 국내 투자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최근에는 민간투자의 자생적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자금조달과 운용주체를 모두 민간이 맡도록 하는 ‘민간주도형 모태펀드’가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추진 중에 있다.
아울러 TIPS(팁스)는 민간 투자자가 스타트업을 선정하고 정부가 함께 육성하는 대표적인 민관협력 프로그램이다. 최근에는 투자시장 변화에 발맞춰 극초기 스타트업에 대한 자금지원과 투자유치를 돕기 위해 ‘시드 TIPS’를 론칭하여 선발팀을 대상으로 민간 주도하에서 창업 준비부터 시드 투자유치까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책을 마련하였다.
이처럼 모태펀드, TIPS 등 민관협력 투자 프로그램을 강화함으로써 민간 모험자본의 유입 지속성을 제고함과 동시에 성장 가능성이 뛰어난 극초기 스타트업의 지원과 투자를 확대한다면, 투자시장 위축의 부담을 경감시킬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스타트업의 투자유치를 위한 실적을 쌓아가기 위해 판로확보가 생존의 필수 요소로 대두되고 있다. 스타트업의 판로 확대를 위한 지원정책으로 정부는 공공기관의 연간 구매금액의 8% 이상을 창업기업 제품으로 구매하도록 하는 ‘창업기업제품 공공기관 우선구매제도’를 시행한다. 특히 최근에는 스타트업의 공공판로 확대를 위한 공공시장 진출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스타트업들을 대상으로 공공조달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는 등 스타트업의 공공시장 진출을 위해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국내 공공조달 시장이 지난해 기준 184.2조원에 이른다는 점을 고려할 때 창업기업 제품의 공공구매 확대는 공공부문의 구매력을 활용해 스타트업의 성과창출에 기여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공공서비스 질적 향상과 스타트업의 기술혁신 및 성장을 함께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거대한 위기 속에서는 항상 수많은 실패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따라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창업환경을 조성하고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실패하게 되는 많은 스타트업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재창업 지원 프로그램 확대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 일환으로 정부는 민관협업 재기지원 사업인 ‘리본(Re-Born)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정부(중소벤처기업부)와 공공(창업진흥원), 성공한 재창업자, 그리고 끊임없이 도전 중인 재창업기업들이 각자의 기능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상호보완 관계를 매듭(리본)처럼 이어나가는 재창업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해 민-관이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위기 상황으로 인해 많은 스타트업들이 실패를 경험하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러한 시점에 재창업과 연쇄창업에 대한 지원은 창업 안전망으로서 스타트업의 생존전략을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장기적 관점에서 글로벌 밸류 체인(GVC)의 붕괴·재편에 대응 가능한 제조중심의 산업구조 재편을 통해, 글로벌 경제위기 및 스타트업 투자시장 위축에 대한 생존 체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그간 제조업은 국가 경제생산의 근간이 되는 산업임에도 불구하고 ICT 중심의 플랫폼 산업의 급격한 성장에 가려져 왔다. 하지만 제조업은 시장 진입장벽이 높은 반면, 시장에서 자리잡은 이후에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 강인한 체력을 바탕에 두고 있다.
따라서 제조창업의 활성화는 재편되고 있는 플랫폼 스타트업 중심의 투자시장에서 중·장기적인 투자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좋은 방편일 것이다. 특히 GVC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공간적 한계를 지닌 하드웨어(장비 등) 중심의 제조업에서 탈피해 소프트파워 역량을 중심으로 한 제조창업의 신기술(딥테크 등) 기반 고부가가치화가 필요하다. 또한 시스템반도체, 바이오헬스, 미래차, 친환경·에너지, 지능형로봇 등 이른바 ‘BIG5’ 핵심산업을 집중 육성한다면 위기 속 경제성장을 가속화할 미래 먹거리를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이다.
투자시장 위축, 스타트업 생태계 위축 의미하지는 않아
한편, 사회와 산업 전반에 걸쳐 산적해 있는 페인포인트(pain point, 불편요소)는 스타트업들에게 새로운 시장 진출의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ESG 측면에서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로서 스타트업이 투자유치에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미래 신기술·신산업 시장을 주도할 인공지능(AI), 바이오, 신재생에너지 등 딥테크 기반 초격차 스타트업의 선제적 육성과 이들 성장에 대비한 과감한 규제개혁이 이루어진다면 투자시장에 공감과 활력을 불어넣어 침체된 스타트업 생태계의 변화를 이끌어 줄 것이다.
우리는 매년 안전하고 따뜻하게 겨울을 나기 위해 다양한 월동준비를 한다. 스타트업도 이제 막 접어든 투자시장의 겨울을 안전하게 지나가기 위해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것이다.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투자시장의 위축’이 ‘스타트업 생태계의 위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투자 혹한기 속에서도 투자는 계속된다는 것이다. 투자시장 전체적으로 규모가 줄어들 뿐, 혁신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성장 가능성이 높은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지속될 것이다. 또한 이러한 투자위축도 경제흐름 속 하나의 현상인 만큼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기회를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난세의 위기 속에서 진정한 영웅이 탄생하듯 스타트업의 위기 속에서도 유니콘과 같은 유망 스타트업이 탄생하기 마련이다. 민-관이 협력해 지금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 우리 스타트업들이 안전하게 혹한기를 지나 더욱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하여 따뜻한 봄을 맞이하길 기대해 본다.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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