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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한 번 간 적 없던 촌 할매 6000㎞ 걸으면서 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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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70살이 되는 촌 할매입니다. 2024년 4월 파리행 뱅기표를 예약하려다 글을 올립니다.”
2023년 9월 산티아고 순례길 정보를 나누는 인터넷 카페 ‘까미노(camino)의 친구들 연합’에 올라온 글이 시작이었다. ‘얼룩이 할머니’라는 닉네임의 주인공은 이 글에서 “두 발로 걷는 것 외에는 전부 안되지만 순례길을 걷고 싶다”면서 솔직한 고백을 덧붙였다. “나라 밖으로는 한 번도 나가보지 못했고 카카오톡이나 유튜브 외에는 인터넷도 잘 쓸 줄 모르고 항공권이나 숙소를 예약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데다 영어는 읽고 쓰는 것은 물론 듣고 말하는 것조차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무모해 보이는 그의 도전에 카페 회원들의 응원 댓글이 쏟아졌다.
열흘 뒤 ‘얼룩이 할머니’의 글이 하나 더 올라왔다. 주변의 도움을 받아 비행기표를 끊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는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작점 중 하나인 프랑스 생장까지 이동할 계획을 설명하며 동행을 구한다고 했다.
그때부터 작은 기적이 이어졌다. 비행기를 함께 타고 공항에서 숙소까지 차를 태워주고 갈아탈 기차 탑승을 도와줄 천사들이 줄이어 나타났다. 한 30대 여성은 순례길 초입의 산장을 예약할 수 있도록 밤낮없이 도움을 줬다.
그의 도전이 시작되고 끝을 맺기까지 많은 회원이 댓글로 혹은 현지에서 힘을 보탰다. 체력적 한계에 더해 위경련과 기침, 휴대전화 분실 등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지만 그는 매번 다시 일어섰다. 카페 회원들의 걱정과 응원이 그를 일으켜 세우고 등을 밀어줬다.
그는 결국 출발 50일 만에 순례길 완주에 성공했다. 그 고마움을 담아 자신의 수호천사들에게 나눠줄 요량으로 에세이 ‘촌 할매의 부엔 까미노’를 펴냈다가 돌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 덕분에 강연 요청도 이어졌다.
도전의 가치를 온몸으로 알려준 ‘얼룩이 할머니’ 강정숙 씨를 10월 초 대전에서 만났다. 사진 촬영을 위해 순례길을 걸었을 때 차림 그대로 와달라는 요청에 그는 당시 가지고 간 물건들을 몽땅 챙겨왔다. 그가 충북 보은군에서 짊어지고 온 무거운 배낭이 무엇 하나 허투루 하지 않고 살아온 그의 삶을 말해주는 듯했다. 도전 과정에 대한 어려움과 극복 과정을 들으려던 인터뷰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가 됐다.



산티아고 순례길 도전은 어떻게 시작됐나?
2015년부터 전국 곳곳을 걸었다. 집 앞 자전거 길을 시작으로 제주도 한 바퀴, 전남 해남군 땅끝마을부터 강원 고성군 통일전망대까지 이름난 곳들을 전부 걸은 뒤에는 무궁화호 기찻길까지 몽땅 찾아 걸었다. 그 길에 한 부부를 만나 산티아고 순례길 이야기를 들었다. 가슴이 뛰었지만 영어 한마디 못하는 내가 어떻게 가겠나 싶었다. 그저 꿈만 꾸는데 점점 마음이 커지기에 스스로에게 물었다. “죽어도 갈래?”, “응.” 그날로 인터넷 카페에 가입하면서 준비를 시작했다.

어떻게 혼자 떠날 용기를 냈나?
걷는 것 빼고는 다 걱정스러웠다. 처음 열흘 정도는 일행이 있었지만 나머지는 혼자 다녔다. 국내 도보여행 때도 늘 혼자 낯선 길을 걸어서 괜찮았다. 스마트폰을 산 지도 몇 년 안됐다. 그전까진 지도책을 찢어 가지고 다니면서 길을 찾아 걸었다. 주변에서도 걱정하지 않았다. 산티아고에 간다고 하니 다들 그저 “때가 됐나보다” 하더라.

도보여행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50대 중반 사면초가에 몰린 적이 있었다. 너무 힘들어서 50만 원만 쥐고 제주도로 떠났다. 비행기 값 빼고 하루 5만 원으로 1주일을 버텨야 했다. 220㎞ 제주 일주도로를 하루 평균 30㎞ 이상 걸었다. 3일 정도 걸으니 힘이 들다 못해 걷는데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더라. 일주일 만에 출발점에 도착해 양말을 벗으니 생겼다 터지기를 반복한 물집들로 발바닥이 너덜거렸다. 발톱 세 개는 까맣게 죽어 있었다. 이 길을 걸으며 진짜 힘들면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 순간을 탈피라고 생각했다. 거울 속 내 모습이 마치 전사 같았다. 60세 즈음 본격적으로 걷기를 시작했다. 이대로 늙는다면 우두커니 TV를 보거나 삼삼오오 모여 다른 사람 흉보거나 그런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생각나지 않더라. 몸이 늙는 건 멈추게 할 수 없지만 반대로 정신은 젊어지게 할 수 있다고 하지 않나. 정신을 단련하는 방법 가운데 한 가지가 걷기라는 게 떠올라 그때부터 전국을 걷기 시작했다. 순례길까지 합하면 그간 총 6000㎞를 걸었다. 이제 걷지 않으면 몸과 마음이 불편하다.



걸으면서 뭐가 달라졌나?
걱정을 사서 하는 스타일이라 삶이 참 힘들었는데 걸으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국내 도보여행을 할 땐 보통 전날 출발지점으로 이동해서 자고 해뜨기 전에 출발하는데 나가보면 너무 어둡다. 그 길을 불빛 하나에 의지해 걷는다. 사람은 없고 개 짖는 소리만 요란하다. 심장이 튀어나갈 것처럼 무섭지만 조금만 참으면 해가 뜨고 어두움은 사라진다. 이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 날 문득 내 안에서 나를 괴롭힌 불안과 걱정이 사실 해가 뜨면 별것도 아닌 사라질 연기 같은 것이었구나 싶더라. 지금도 두려운 건 여전하지만 예전처럼 영향을 받진 않는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워낙 모르니까 적극적으로 도움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한번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미처 예약하지 못한 숙소에 일찍 도착한 적이 있는데 말이 안 통하다 보니 들어갈 수가 없었다. 한국 사람이 지나가기만 기다리다 만났는데 어찌나 반갑던지! 붙잡고 도와달라고 사정했다. 엉뚱한 곳에 숙소를 예약해 노숙할 위기에 처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 부족함을 솔직히 드러내고 도와달라고 요청하니 천사들이 선뜻 손을 내밀어줬다.

고비도 많았겠다.
고비가 아닌 날이 없었다.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론세스바예스에서 주비리까지 이동하는데 산을 넘어야 했다. 경사가 심하고 바위도 많은 구간이었는데 순간 넘어지고 말았다. 10㎏이 넘는 가방까지 맨 채라 더 위험했는데 다행히 한 외국 여성이 엎어지는 나를 받아 안아줬다. 이런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차라리 안 힘든 순간을 꼽는 게 쉽다. 너무 아파서 숙소에서 연박할 때가 가장 편했다.

무엇이 끝까지 걷게 만들었을까?
죽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갔는데 어떻게 포기하나. 중간에 택시나 버스를 타고 코스를 뛰어넘는 이들도 있었지만 난 1m도 건너뛰지 않았다. 전 구간을 다 걷는 이들이 전체 순례자의 10% 정도밖에 안된다고 한다. 난 한 발 한 발 모든 길을 직접 걷고 싶었다.

포기하지 않는 것도 능력인 것 같다.
사람마다 지식이나 아름다움, 재물, 권력 같은 자랑거리가 하나씩 있지 않나. 근데 나는 없다. 학력도 길지 않고 가진 것도 많지 않다.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려서 잊고 싶을 만큼 삶이 만만치가 않았는데 걷다 보니 끝까지 해내는 내 모습에 자부심이 생기더라. 그제서야 비로소 내 안에 있는 웅크린 나를 안아줄 수 있었다.

종착점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을 때 느낌이 궁금하다.
온몸이 텅 빈 느낌이었다. 스스로가 너무 장해서 “장해, 장해, 아주 장해” 이 말만 계속 생각났다. 집에 돌아와서도 혼자서 한 번씩 웃었다. “나 산티아고 다녀온 사람이야” 하면서. 주위에서 내가 산티아고에 다녀온 후 예뻐지고 밝아졌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머리는 반백이고 얼굴의 검은 얼룩은 더 짙어졌지만 지금이 제일 예쁜 것 같다. 산티아고를 전부 걷고 온 할매 아닌가.

책까지 냈다.
집에 오니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계속 생각나면서 그걸 표현하고 싶더라. 팔 생각은 감히 하지도 못했고 100권 정도만 만들어서 나를 걱정해준 사람들, 도움을 준 이들에게 선물하려고 했는데 출판사 대표가 팔 생각으로 써야 글다운 글이 된다고 설득해서 방향을 바꿨다. 놀랍게도 많은 분이 봐줘서 2쇄까지 찍었다. 책을 쓴 계기는 하나 더 있다. 예전에 도보여행을 하면서 발목을 심하게 접질렸을 때 나무 하나를 주워서 부목 삼아 수건으로 감고 10㎞를 절뚝이며 걸었다. 그 뒤로 6개월을 못 걸었는데 그때 한 분이 내게 책을 써보라고 하더라. 그냥 한 말일 수도 있는데 그게 내 마음에 톡 씨앗으로 떨어져 자랐다.
순례길을 걸으며 일기를 쓴 건가? 기록이 생생하다.
어느 작가는 도보여행을 몸으로 책을 읽는 것과 같다고 했다. 책을 읽으면 그 감상이 머리하고 가슴까진 들어오지만 내 전체를 관통하진 않는다. 도보여행은 워낙 힘들다 보니 온몸으로 순간순간을 느낄 수밖에 없다. 덕분에 메모나 일기를 남기진 않았지만 날짜 순으로 당시의 이야기를 쓸 수 있었다. 노트북을 사서 전원 켜는 법부터 글 작성법, 메일 보내는 법 같은 걸 배웠다. 1주일에 5일 일하고 하루 쉬는 날 대전에 나와 배우면서 글을 썼다.

도전을 꿈꾸지만 용기가 부족해 망설이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위험이나 어려움이 닥쳐도 포기할 수 없어서 그냥 걸어야 할 때가 있었다. 길이 없는 곳을 걸어야 할 때도 있었다. 힘들었지만 뒤돌아보니 그 경험들이 내게는 전부 길이 됐더라. 처음부터 이만큼 걸어야겠다고 생각했으면 지금까지 걷지 못했을 것이다. 포기하지 않았을 뿐이다. 꿈이 있다면 지금 할 수 있는 만큼만 시작을 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그다음에는 조금 더 가보는 거다. 변화는 소나기를 맞듯 갑자기 이뤄지는 게 아니라 짙은 안갯 속을 걸으며 머리카락이 젖듯, 옷이 젖듯 그렇게 이뤄지는 거라고 한다. 잠시 멈출지언정 포기하지는 말자.



도전은 계속할 건가?
2026년 가을, 산티아고 순례길에 다시 갈 계획이다. 봄 길은 걸었으니 가을 길을 걸어보고 싶다. 기회가 있을 진 모르겠지만 지난번보다 더 천천히 걷고 기회가 된다면 누군가를 돕고 싶다. 순례자들과 포옹도 많이 하고 어금니가 보일 만큼 환하게 아주 많이 웃을 것이다. 이번에도 배낭을 짊어지고 끝까지 걸어보려 한다.

그는 처음 만난 기자에게 늦가을 모기에 물린 것 같다면서 스스럼없이 가져온 약을 꺼내 발라줬다. 다정함은 다정함을 알아본다고 했다. 그의 도전을 성공으로 이끈 천사들은 그의 글에서 묻어난 진심과 계산하지 않는 무해한 다정함에 이끌렸을 것이다. 앞으로도 그가 들려줄 길 위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고유선 기자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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