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경계에서 30년 호스피스 환자들의 마지막 여정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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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박명희 팀장
눈앞으로 다가온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어떨까? 내년을, 다음 계절을, 내일을 기대할 수 없다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할까? 이 물음에 답을 주는 대신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는 이들이 있다. 전국 호스피스·완화의료 기관의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이다.
호스피스·완화의료는 임종이 가까워진 환자나 치료가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은 말기 환자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편안하고 존엄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돕는 의료 서비스다. 국내에는 가톨릭계를 중심으로 1965년 들어왔다. 하지만 ‘죽음’이라는 단어를 금기시하는 문화 탓에 잘 모르거나 거부감을 갖는 이들이 적지 않다.
올해 ‘세계 호스피스의 날(10월 11일)’을 앞두고 방문한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이하 센터)의 분위기는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따뜻한 조명, 빛이 들어오는 큰 창, 소파가 있는 휴게실은 꼭 여느 집의 거실 같았다. 10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성당도 있었다. 환자는 물론 보호자도 언제든 와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곳이다. 성당 안 책상에는 작은 노트가 한 권 있었다. 힘들 때 혹은 용기가 필요할 때 마음을 쏟아내라고 배려해놓은 것 같았다.
병동 안내를 맡은 박명희 센터 팀장은 “내 집 같을 순 없지만 환자와 보호자가 최대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공간을 꾸몄다”고 말했다. 그는 1991년 서울성모병원에 간호사로 입사해 병원 생활의 대부분을 호스피스 병동에서 보냈다. 그는 현재 23개 입원 병상 외에도 가정형·자문형, 소아청소년 대상 등 전체 호스피스 서비스가 원활히 돌아갈 수 있도록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30년 동안 이곳에서 수많은 환자의 마지막을 지킨 박 팀장에게 호스피스의 가치와 필요성,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해 물었다. 존엄한 삶의 마무리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고 준비해야 할까?
호스피스 병동의 분위기가 예상과 달리 밝다.
다른 병동에 있다가 자원해 이곳으로 왔는데 나도 처음에는 우울하고 무거운 분위기일 것 같아 걱정했다. 그런데 첫 출근 날, 봉사자와 환자가 트로트를 부르고 있더라. 그 모습을 보며 죽음보다는 남아 있는 삶에 초점을 맞춰서 환자들이 오늘 하루를 의미 있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진정한 호스피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30년 전이면 지금보다 호스피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을 때인데 자원한 이유가 있었나?
일반 병원에서 암 환자들을 돌봤는데 더 이상 치료가 어려워지는 순간이 오면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죄책감이 들었다. 팀장님과 상담했더니 마지막까지 환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있다면서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추천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호스피스·완화의료가 꼭 필요한가?
삶의 마지막 시기에는 의료적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 암 말기의 경우 평균 7~8가지, 많으면 10가지 통증이 나타난다. 통증 조절이 이뤄져야 식사도 하고 잠도 잘 수 있는데 그게 안되면 몹시 힘들다. 그래서 호스피스 입원 상담 때마다 말씀드린다. 지금 숨도 차고 굉장히 아픈데 이런 것을 편안하게 해주는 곳이 호스피스라고. 환자와 가족들이 죽음을 잘 받아들이고 마지막을 편안히 준비할 수 있도록 심리적인 부분에도 도움을 드린다.
스스로 원해서 오는 환자들이 많나?
아직은 많진 않다. 병원을 통해 의뢰받은 환자가 연 700명 정도인데 그중 10~15%는 설명을 듣는 것조차 거부한다. 문 앞에서 쫓겨나는 경우도 있다. 설명을 듣고도 한참 고민하다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호스피스 서비스 유형이 다양하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돌봐주는 입원형, 집으로 찾아가는 가정형, 입원 병동에 머물면서 도움을 받는 자문형, 아이와 부모에게 도움을 주는 소아청소년완화의료 등 네 가지 유형이 있다. 자문형은 입원형과 헷갈릴 수 있는데 주로 호스피스에 대해 안내하고 상담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유형별로 장단점이 있어서 어떤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집에서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가정형 선호가 많지 않나?
아무리 호스피스 병동을 집처럼 꾸며놨다고 해도 환자에게는 집이 가장 편한 장소일 수밖에 없다. 다만 가족이 없거나 돌봐줄 사람이 마땅치 않거나 가족을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병원에 오는 분이 많다. 본질적인 마음은 다 집에 있고 싶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나 역시 삶의 마지막 순간이 오면 집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싶을 것 같다.
퇴원 비율이 45%나 된다고.
다른 호스피스 기관은 대부분 사망 후 퇴원하지만 우리 기관은 가정형으로 서비스를 전환하는 방식으로 절반 정도가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서도 무통 주사 등을 통해 통증을 조절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때문이다. 일단 아프지 않아야 집에 있을 수 있지 않나. 힘들어서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환자는 집에서 임종을 맞는다.
‘국가 호스피스·완화의료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신규 호스피스 이용자는 입원형 1만 4609명, 가정형 617명, 자문형 3914명 등이다. 입원형과 가정형, 입원형과 자문형 등 여러 유형을 함께 이용한 이용자까지 합하면 전체 이용자 수는 총 2만 4318명이다.
가정형 이용자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는 낮은 수가와 부족한 인력 등을 이유로 운영하는 기관 수가 많지 않아서 또는 가정에서 환자를 돌볼 만한 여유가 없어서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2025년 5월 19일 기준 호스피스 전문기관으로 지정된 총 202곳 가운데 가정형 호스피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의 수는 39곳으로 전체의 19.3%다.
통증 치료뿐 아니라 요법 치료도 있다고.
미술, 원예, 네일아트 등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다른 프로그램으로 요법 치료를 한다. 환자와 함께 보호자도 할 수 있다. 환자를 가장 가까이에서 돌보는 보호자가 힘들면 환자에게 영향이 간다. 오늘은 네일아트를 했는데 여자 환자는 물론 남자 환자들의 반응도 좋았다. 정성스럽게 손톱을 가꿔주는 손길에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든다고 하더라.
호스피스 간호사로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
아침에 출근했는데 통증 때문에 힘들어하던 환자가 “세 달만에 처음으로 누워서 잤다”고 말하는데 정말 행복하더라. 누워서 자고 숨 한 번 시원하게 쉬고 벌컥벌컥 물 한 잔 마시는 게 우리에게는 당연하지만 환자들에게는 너무나 힘든 일이다.
기억에 남는 환자들도 많겠다.
암 병동에서 친해진 청년인데 내가 호스피스로 오고 얼마 안돼 왔더라. 20대 후반으로 나랑 나이대도 비슷했다. 임종 방으로 옮겨진 후 너무 무섭다며 안아달라고 했다. 용기를 내서 안아줬는데 그 순간 그의 호흡이 멎었다. 그때는 감정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환자의 마지막 여정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다는 생각과 함께 간호사는 어머니와 같은 품성을 지녀야 한다는 걸 느꼈다. 엄마와 둘이 살다 엄마가 암으로 떠나고 홀로 남겨진 딸도 마음에 남는다. 엄마 죽으면 따라 죽겠다는 말을 늘 해서 걱정됐는데 어느 날 강원 정동진에서 일출 사진과 메시지를 보내왔더라. 이제 걱정하지 말라고. 엄마한테도 새출발하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지금도 잘 살고 있길 바란다.
사별 프로그램도 있다고.
환자가 떠난 후 가족이 일상으로 복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사별 지지가 이때 굉장히 큰 역할을 한다. 외국에선 사별 프로그램을 호스피스의 굉장히 중요한 역할로 본다. 특히 어린아이를 먼저 보낸 경우 부부가 이혼하거나 단절되기도 하고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해 수년 동안 매일 납골당을 찾는 분도 있다. 사별의 슬픔을 알아봐주고 인정해주는 게 중요하다. 간호사·자원봉사자들이 사별 가족에게 연락을 하고 이야기를 들어준다. 매년 두 번씩 사별 가족 모임도 갖는다. 울면서 왔다가 후련한 표정으로 돌아갈 때 보람을 느낀다.
삶과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호스피스·완화의료에 지원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많이 말렸다. 아직 젊은데 왜 그런 곳에 가냐고 했다. 그런데 여기 있는 동안 굉장히 감사했다. 죽음은 정말 가까이에 있다는 걸 배웠다. 11개월 아이부터 노인까지, 어느 순간이나 상황에서도 죽음이라는 건 닥칠 수 있다. 그래서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려고 매 순간 노력한다.
자원봉사자도 많다고 들었다.
현재 60명 정도가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봉사하고 있다. 주중에는 손주들 돌보고 주말에만 오는 할머니도 있고 30대 직장인들도 온다. 교육도 받고 면접도 봐야 하고 무엇보다 보상도 없지만 보람 하나로 다들 열심히 임해줘서 감사할 따름이다.
호스피스·완화의료 확산을 위해 필요한 게 있다면?
인식 개선 활동이다. 의료진 가운데도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잘 모르는 이들이 있다. 호스피스에 대한 교육과 홍보가 많이 이뤄진다면 편안하게 삶을 마무리하는 이들이 많아질 것 같다.
고유선 기자
*세계 호스피스의 날
세계 호스피스·완화의료 연맹(WHPCA, Worldwide Palliative Care Alliance)이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한 인식은 물론 해당 서비스에 대한 지지를 높이기 위해 지정한 날. 매년 10월 둘째 주 토요일로 이날은 세계 곳곳에서 관련 행사가 열린다. 우리나라도 2013년도부터 매년 기념식을 개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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