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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재킷·한복 티셔츠… “일상에서 즐길 수 있어야 진짜 문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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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한복디자인프로젝트 공모전 대상 ‘바주요’ 박준용 대표
‘예쁘지만 불편하다.’
‘왠지 특별한 날에만 입어야 할 것 같다.’
‘박물관에선 빛나지만 일상에선 멀다.’
모두 한복에 관한 얘기다. 그나마 추석이나 설에 옷장 깊숙이 걸어둔 한복을 꺼내 입었던 것도 옛일이 된 지 오래다. 요즘엔 한복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 자체가 드물다. 결혼식이나 웨딩촬영에서도 한복 착용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어떻게 하면 한복을 다시 생활 속으로 가져올 수 있을까? 퓨전한복 브랜드 ‘바주요’ 박준용 대표는 이러한 고민 끝에 ‘파격’을 택했다. “작은 변화만으로는 한복이 외면받는 상황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완전히 파격적인 변신이 필요했죠.”
단아한 이미지, 부드러운 원단, 화려한 색감. 기존 한복의 이미지와 가장 동떨어진 것으로 그가 떠올린 것은 ‘군복’이었다. 치마는 카무플라주라 불리는 카키색의 군복무늬로 뒤덮어 한눈에도 군복을 떠올리게 했고 저고리엔 검은 가죽 장식을 덧대 군인의 강인함을 표현했다. 여기에 탄조끼와 군모를 남바위(머리장식), 노리개와 결합해 재해석한 이 한복의 이름은 ‘전사의 숨결, 오래된 대지’. 박 대표는 이 작품으로 8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관한 2025 한복디자인프로젝트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기존과 180도 다른 한복을 만들기 위해 한복과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이는 군복을 콘셉트로 잡았어요. 한복이 가진 고정관념을 깨지 않으면 변화할 수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더욱이 공모전 주제가 ‘한국의 숨결, 오래된 아름다움’이었는데 다른 참가자들은 화려하거나 아기자기한 디자인을 할 것 같아 아예 반대로 가보자 했죠. 군복은 전투에서 병사의 몸을 잘 숨기기 위해 나무, 풀과 같은 자연의 색깔을 차용하는데 이건 산세 좋은 우리나라의 풍광과도 연결되니 한국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에도 제격이다 싶었어요.”



“절복 같다” 놀림에 직접 한복 제작 뛰어든 공학도
박 대표는 동양화에 조예가 깊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부터 한복을 즐겨 입었다. 특히 바람을 넣어 부풀린 듯 풍성한 한복 바지는 소년의 눈에도 멋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한복을 입고 학교에 갈 때마다 친구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절복 같은 걸 왜 입고 다녀?”라는 소리를 듣기 일쑤였다.
이후 옷장에 처박혀 있던 한복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대학생 때다. 모델 배정남이 가죽재킷에 한복 바지를 입은 것을 보고 ‘이거다!’ 싶었다. 이렇게 멋진 한복이라면 비웃음을 사기는커녕 누구나 입고 싶은 마음이 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때마침 중국정부가 한복을 중국 소수민족의 의상이라고 왜곡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한복을 내 손으로 알려보자 싶었다. 2000년생인 박 대표가 3년 전 홀로 바주요를 창업하기로 결심한 이유다.
머릿속 콘셉트는 명확했다. 런웨이가 아닌 골목길에서도 입을 수 있는 한복, 즉 일상에서 언제든 눈치 보지 않고 입을 수 있는 한복을 만드는 것. 문제는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한 그가 한복은 물론 옷에 대한 전문지식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직접 스케치한 그림을 들고 무작정 한복 장인들을 찾아가 제작을 부탁했다. 오랜 세월 전통을 고수해온 장인들은 그의 한복을 낯설게 여겼지만 청년 창업가의 집념은 장인의 고집도 이겨냈다.
그렇게 탄생한 바주요의 대표 상품이 ‘한복 재킷’이다. 한복 깃을 없앤 자리에 블레이저 재킷의 칼라를 달고 기존 한복의 화려한 색감 대신 무채색의 원단을 사용해 그야말로 양복 재킷과 흡사하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다만 안감에 전통문양을 새기고 옷고름을 재킷 안쪽에 술 장식처럼 다는 등 곳곳에 한복의 디테일을 숨겨 놓았다. 또 배래선 등 일상복에서도 돋보일 수 있는 한복의 특징은 더욱 과감히 살렸다. 절개와 분할선의 위치를 기존 한복과 달리한 점은 전문가가 아니라면 눈치채기 힘들지만 착용해보면 금방 느낄 수 있다. 아, 한복도 이렇게 편하고 스타일리시할 수 있구나!
“한복이 특별한 날에만 입는 옷으로 인식되는 가장 큰 이유는 화려한 스타일과 복잡한 착용 방식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출품을 위한 밀리터리 한복과는 달리 색감을 단순하게 하고 바지에 달린 고름을 밴딩으로 바꾸는 등 입기 편하게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죠. 다만 단추를 전통적인 매듭으로 한다거나 재킷 소재를 삼베로 하는 등 한복의 디테일을 유지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연애를 시작할 때 대뜸 고백하면 상대가 받아주나요? 한복도 갑자기 입으려고 하면 어색하니 일상복에 매듭 하나, 자수 하나 더하는 식으로 만들어 친근하게 다가가려 노력한 거죠.”

20대 청년 자신이 최고의 홍보모델
누가 한복을 입었을 때 가장 잘 어울릴까? 박 대표가 떠올린 얼굴은 국내 한식 브랜드 대표들이었다. 특히 이제 막 해외 진출을 시작한 이들은 바주요의 첫 번째 고객이 돼줬다. 박 대표의 막무가내 전략이 또 한 번 통한 것이다. 한식 브랜드 대표들을 무작정 찾아가 인물별로 제작한 한복을 선물했고 바주요의 제품을 착용한 그들의 모습이 언론을 통해 노출되면서 자연스럽게 홍보 효과를 봤다.
“몇 백억 원이 오가는 해외 미팅에 한복을 입고 가면 한식 브랜드 대표로서의 정체성이 훨씬 잘 드러나지 않겠냐는 말씀에 다들 흔쾌히 선물을 받아줬어요. 더욱이 바주요의 한복은 입기도 편하니 비행기를 탈 때 불편함이 없다는 점도 주효했죠. 이후 실제로 한복을 입고 계약을 성사시켰다는 분들의 이야기를 듣곤 무척 뿌듯했습니다. 한복을 입고 전 세계에 한식의 매력을 알리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우리 전통 의복이 참 멋지다는 생각이 절로 들지 않나요?”
두 번째 고객은 박 대표 자신이었다. 20대 청년이 평소에 한복을 입고 다니는 것은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한복을 얼마든지 편하고 멋지게 입을 수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그는 스스로 고객이자 모델이 돼 누리소통망(SNS)에 한복을 착용한 모습을 꾸준히 올렸고 결과는 뜻밖의 수확으로 이어졌다. 국내 한 건축 기업으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받게 된 것이다. 신생 패션 브랜드, 그것도 한복 브랜드가 투자를 받기란 여간해선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투자처와 협업해 전통 스타일의 가구와 신발 제작에도 도전, 한복 패션 브랜드를 넘어 전통문화 생활기업으로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박 대표는 “한복 산업은 시장이 워낙 작기 때문에 정부 사업의 지원을 받거나 후원을 받는 일은 있어도 기업의 투자를 받기는 무척 어려운 일”이라며 “기업에서 전통문화와 콜라보(협업)하는 일은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장기적 관점에서 전통문화를 산업적으로 키울 방법을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장인vs신예 ‘한복 흑백전’ 기획도
전통한복을 현대화한 이른바 퓨전한복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역시 일상에서 입을 수 있는 한복을 만들며 적잖은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대표적인 것이 ‘한복 티셔츠’다. 평범한 반팔 면 티셔츠에 한복 저고리와 고름의 모양을 프린트한 옷을 두고 ‘이게 한복이 맞냐’는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하지만 다소 어색하더라도 끊임없는 시도를 통해 한복을 생활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박 대표의 생각은 여전히 굳건하다.
“한복 티셔츠를 보고 ‘아파트 지붕에 기와만 얹는다고 한옥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데 요즘엔 한옥 카페도 많고 한옥 리조트까지 등장했잖아요. 이처럼 계속해서 전통문화를 일상과 결합하려는 노력을 해야 어느 순간 그 자체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K-콘텐츠가 세계적 인기를 얻으면서 한복도 크게 주목받는 것 같지만 한복 입기 체험과 같은 일회성 소비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전통을 지키는 단 하나의 답은 생활화, 즉 평소에도 입고 싶은 한복을 만드는 데 있어요. 퓨전한복 브랜드의 책임감 역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한복의 일상화를 통해 박 대표가 꿈꾸는 최종 목표는 역시 ‘한복의 세계화’다. 특히 그가 주목하는 또 다른 요소는 한복 장인들의 탁월한 솜씨다. 그들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한복의 고급스러운 소재와 섬세한 자수를 제대로 브랜딩하기만 하면 국제사회에서도 한복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믿는다. 이에 박 대표는 10월 열리는 올해 한복문화주간에 직접 기획한 ‘한복 흑백전’을 진행할 계획이다.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를 패러디한 것으로 명장과 신진 디자이너 20여 명의 한복 작품을 한자리에서 소개하는 행사다.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려면 일단 전통에 대해 알아야 하잖아요. 뉴진스나 김연아 한복을 만든 명장들과 한 달에 한 번 이상 만나는데 그때마다 그분들의 솜씨에 크게 감탄합니다. 지난해 파리 패션위크에서 연 팝업행사에서도 현지인들에게 가장 어필한 게 원단, 자수와 같은 한복의 디테일이었어요. 일본의 기모노가 글로벌 패션기업들이 차용할 만큼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것처럼 우리 장인들의 솜씨 역시 브랜딩만 잘하면 한복의 세계화에 크게 일조할 수 있다고 봐요. 언제든 입고 싶은 한복, 장인의 숨결이 살아 있는 한복이라면 단순한 전통문화를 넘어 패션문화를 선도하는 또 다른 K-콘텐츠가 될 수 있지 않겠어요?”

조윤 기자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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