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처럼 살아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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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으로 편의점 도시락에 ‘뚱바(바나나맛 우유)’를 먹고 올리브영·다이소에서 가볍게 쇼핑을 한다. ‘김떡순(김밥·떡볶이·순대)’으로 점심을 먹고 찜질방에 간다. 수건으로 양머리를 만들어 사진 찍고 구운 계란 먹으며 식혜를 마신다. 저녁은 삼겹살에 소주 한 잔, 낙산공원 성곽길을 걸으며 서울의 야경을 만끽한다.
어느 한국인 청년의 부지런한 일상 같지만 사실은 한국을 처음 찾은 외국인 관광객의 알찬 여행 코스다. 관광객만 들르는 장소 말고 한국인이 일상을 보내는 장소에 가서 한국인처럼 살아보는 것, 최근 K-관광의 뉴노멀은 이처럼 K-일상을 체험하는 데일리케이션(Dailycation)이다. 영국 언론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국 관광 물결의 정점에서(On the crest of South Korea’s tourism wave)’라는 기사에서 “한국을 찾는 여행자들은 K-팝 콘서트, K-드라마 촬영지, 테마 카페, 푸드 투어, 웰니스 체험 프로그램 등 다양한 몰입형 체험을 즐기고 있다”며 K-관광의 변화에 대해 설명했다. 홍콩 언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의 팬들이 작품 속에 등장한 장소를 찾아 단순히 사진을 찍는 데 그치지 않고 ‘경험’을 통해 작품을 재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인의 일상’이 관광 상품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소소한 ‘K-일상살이’에 푹 빠진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한류의 지속적인 확산 때문이다. 지난 20여 년간 한류는 드라마(대장금·겨울연가)에서 음악(동방신기·싸이·방탄소년단)으로, 예능(런닝맨)과 영화(기생충), 음식(불닭볶음면)을 거쳐 게임(페이커), 유튜브(영국남자), 넷플릭스(오징어 게임·케데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와 방식으로 전 세계에 전파됐다. 그와 함께 K-라이프스타일도 ‘1+1 묶음 상품’처럼 배달됐다. 최애 아이돌(가장 좋아하는 아이돌)이 배달시켜 먹은 양념통닭, 드라마 속 연인이 한강 둔치에서 즐기는 피크닉, ‘케데헌’의 루미와 진우가 등장한 북촌 한옥마을과 낙산공원 성곽길 같은 ‘한국인의 일상’이다.
두 번째 이유는 관광에 대한 인식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과거엔 여행이 관광 명소를 구경하는 탈(脫)일상의 개념이었다면 이제는 관광과 일상을 결합해 해당 장소의 문화와 사람들을 체험하는, 개인화된 경험으로서의 여행으로 자리 잡고 있다.
관광객의 니즈 변화는 데이터가 증명한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2024년 잠재 방한 관광객이 한국에서 가장 하고 싶은 활동은 길거리 음식·편의점 먹거리 등 식도락(62.2%), K-뷰티 체험(49.7%), PC방·노래방 등 이색 공간 경험(48.9%) 순이었다. 전통적인 명소 관광은 후순위로 이러한 경향은 내국인의 여행 트렌드·소비 패턴과도 일치했다. 한국인의 놀이문화, 소비 방식에 외국인 관광객이 매료됐다는 얘기다.
관광 플랫폼인 크리에이트립의 2024년 상반기 거래액을 살펴보면 외국인 관광객이 자주 찾은 장소는 헤어숍(미용실)이 1위를 차지했고 뷰티숍이 뒤를 이었다. 특히 퍼스널 컬러(개인이 가진 신체와 가장 어울리는 색) 유행은 K-뷰티의 강력한 무기가 됐다. 퍼스널 컬러 진단이 필수 코스로 자리 잡았고 뷰티숍 거래액의 80%를 퍼스널 컬러 상품이 차지했다. 주요 쇼핑 장소 역시 면세점이 아닌 올다아무(올리브영·다이소·아트박스·무신사) 같은 일상 속 로드숍으로 옮겨가는 추세다.
한국의 도시는 풍부한 볼거리와 즐길거리, 편리한 교통편과 높은 수준의 치안 등 이미 데일리케이션에 최적화된 공간이다. 특히 서울은 미국 여행전문매체 ‘트래지 트래블’이 선정한 ‘MZ세대에 가장 사랑받는 도시’ 4년 연속 1위, 여행 플랫폼 트립어드바이저가 뽑은 ‘나 홀로 여행하기 좋은 도시’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K-데일리케이션은 진화 중
K-데일리케이션은 다음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이제까지는 관광객들이 스스로 유튜브와 누리소통망(SNS) 등을 통해 여행 코스와 맛집 투어를 찾고 즐기고 공유하는 방식이 주를 이뤘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민·관이 함께 ‘쉽고 가볍게 체험할 수 있는 로컬 콘텐츠’를 상품화하기 위한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우선 ‘꿀조합’ 상품이 인기가 있다. 숙박·교통·액티비티 예약 플랫폼 클룩에서 인기를 끈 등산 상품, 스포츠 경기 직관 상품을 살펴보자. 경복궁 등 역사 유적지와 인접한 인왕산을 한국인 가이드와 함께 오른다. 등산하려면 차를 타고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는 외국과 달리 도심 한복판에서 접근 가능한 K-마운틴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다. 하산 후에는 막걸리에 파전을 즐기며 마무리한다. 2025년 상반기 클룩을 통한 부산·포항 하이킹 투어의 예약 건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50% 증가했다.
서울 잠실야구장이나 고척스카이돔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은 한국 야구팬의 주말을 온몸으로 체험한다. 잠실야구장을 연고로 하는 LG트윈스나 두산베어스의 경기를 관람하며 한국의 응원문화, 치어리더의 열정적인 몸짓에 환호한다. 혼자 가면 서툴렀을 테지만 여행상품을 구입해 한국인 가이드, 다른 관광객과 함께하면 즐거움은 몇 배가 된다. ‘치맥(치킨과 맥주)’부터 떡볶이, 김치말이국수 등 ‘뉴욕타임스’가 극찬한 먹거리도 즐긴다. 관광객들의 후기를 보면 ‘야구를 몰라도 환상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 ‘서울에서 경험한 일 중 가장 멋진 경험’이라는 극찬이 뒤따른다. 관람을 앞두고 무리지어 ‘삼쏘(삼겹살에 소주)’를 즐기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안경 맞춤 투어·신당동 오컬트 투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도 2025년 초 프로야구 경기 관람에 한복 체험, 남산타워 방문, 공연 관람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결합한 K-응원문화 여행 상품을 출시한 바 있다. 이 밖에도 한국 안경원의 ‘초고속 맞춤 제작’ 인프라를 활용한 안경 맞춤 투어, 공동묘지였던 동네에서 괴담과 전통 무속을 체험하고 떡볶이로 마무리하는 신당동 오컬트 투어 등 생각하지도 못했던 조합의 여행 상품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일상 속 매력 명소를 발굴하려는 지방자치단체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6월 서울시는 ‘서울에디션 25’를 발표했다. 마포구 제비다방, 용산구 해방촌 신흥시장, 송파구 서울책보고 등 도심 곳곳의 매력적인 일상 공간 25곳을 발굴해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을 체험할 수 있는 관광지로 육성한다는 취지다.
문체부가 주관하는 2025 관광특구활성화 지원사업 공모에 선정된 서울시 중구도 데일리케이션 트렌드를 반영해 지역 중심 여행문화 조성에 나섰다. 명동·을지로·장충동 등 지역별 역사·문화 스토리텔링을 바탕으로 팸투어·체험 프로그램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경기도와 경기관광공사는 오산시 교촌치킨 체험장에서 직접 치킨을 만들어 보고 용인 에버랜드와 한국민속촌 등을 방문하는 연계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수원을 연고로 하는 야구팀 KT위즈의 경기를 관람하고 수원화성 관람, 수원왕갈비 식사로 이어지는 상품도 출시됐다.
한국의 친구가 늘고 있다
정책적으로도 ‘한국인처럼 살아보기’를 상품화하려는 시도가 늘어났다. 한국관광공사는 네이버와 함께 9월 17일부터 12월 15일까지 외국인 관광객에게 한국인이 선호하는 맛집과 인기 있는 K-컬처 체험콘텐츠를 제공하는 ‘비로컬(BE LOCAL)’ 캠페인을 시작했다. 비로컬 캠페인은 ‘한국인처럼’, ‘한국인이 즐기는 모든 것’을 여행으로 소비하고자 하는 외국인 관광객의 여행 트렌드를 반영해 마련됐다. 네이버지도에서 ‘BE LOCAL’ 탭을 클릭하면 해당 지역 현지인이 많이 찾는 장소와 즐길거리 등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으로 제공되는데 한국어로 작성된 리뷰도 다국어로 확인할 수 있다.
이제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관광은 단순한 ‘방문’이 아니다. 한국은 한정된 명소가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가치관, 소비문화를 직접 체험하는 하나의 살아 있는 무대가 되고 있다. 전통시장과 편의점, 카페, 동네서점과 같은 공간이 문화교류의 장으로 변하면서 여행의 목적도 ‘보는 것’에서 ‘참여하는 것’으로 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K-관광은 단기적 체험을 넘어 한국 사회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차원으로 진화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한국인의 일상 속 공간을 경험하면서 한국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K-관광을 통해 한국의 ‘친구’가 늘어나는 셈이다.
홍성윤 매일경제신문 기자
K-관광 혁신 TF 출범
민관 문화콘텐츠 전문가 총출동
관광산업 전반 혁신
전 세계적으로 K-컬처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늘어나는 방한 수요와 지역관광 활성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광 혁신 민·관 협력체가 구성됐다. 9월 3일 출범한 ‘K-관광 혁신 전담팀(TF)’에는 관계부처와 학계·업계 전문가, 유관기관 인사 등 20명의 인사가 참여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대한민국 대표 브랜드 전략가로 알려진 노희영 식음연구소 대표, 외국인 대상 여행 플랫폼을 운영하는 크리에이트립의 임혜민 대표, 영상 기반 숙박 예약 서비스를 개척한 트립비토즈의 정지하 대표 등이 참여해 기업가적 시각과 소비자 경험에 대한 전문성을 통해 세계시장 감각과 디지털 혁신 전략을 정책에 녹여낸다. 다양한 국내외 여행 경험을 소개해온 태원준 작가와 25만 명 구독자를 보유한 국내 여행 콘텐츠 유튜버 ‘우니의 끼니’, 심리 전문가 김경일 아주대 교수, 한국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며 외국인의 눈으로 한국을 바라본 방송인 알베르토 몬디도 함께한다.
TF에서는 방한시장 확대, 관광수용태세 개선, 지역관광 혁신, 관광산업 경쟁력 강화 등을 핵심 과제로 집중 논의하고 분야별 실무분과를 운영해 현장 중심의 해법을 마련할 예정이다. 또 지역별 간담회를 열어 현장 의견을 적극 수렴하고 관광산업 전반의 혁신을 뒷받침할 종합 정책을 구체화한다. TF에서 도출된 과제들은 관광분야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국가관광전략회의 안건에 반영하고 이재명정부 관광정책 비전을 실현할 정책 수립에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최 장관은 “관광은 경제 저성장을 돌파하고 지역소멸을 극복할 대한민국의 핵심 전략산업”이라며 “민·관이 함께하는 K-관광 혁신 TF를 통해 방한 관광의 질적 성장, 지역 균형발전, 소상공인과 주민이 함께 누리는 관광 생태계를 만들어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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