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이 된 K-콘텐츠 세계인의 일상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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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당신에게 귤을 줄 때(영어).’
‘만약 삶이 네게 귤을 준다면(스페인어).’
‘귤이 달지 않은 날에도 웃자(태국어).’
‘고생 끝에 너를 만나다(대만어).’
넷플리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이하 폭싹)’의 각 나라 번역 제목이다. ‘수고 많으셨습니다’라는 뜻의 제주 방언 ‘폭싹 속았수다’를 미국 철학자 엘버트 허버드의 명언 ‘살다가 레몬이 생기면 레모네이드를 만들어라(When Life Gives You Lemons, Make Lemonade)’에 빗대어 바꾼 것이다. ‘시고 떫은 인생도 맛있게 만들어라’라는 뜻으로 레몬 대신 제주 특산물인 귤을 넣었다. 지난 3월 7일 공개 직후 단숨에 41개국 넷플릭스 톱10, 비영어권 TV 부문 글로벌 1위에 오른 ‘폭싹’은 언어의 벽을 가뿐히 넘고 K-콘텐츠의 파급력을 제대로 보여줬다.
9월 17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개최한 ‘2025년 뉴미디어 콘텐츠상’ 시상식에서 ‘폭싹’이 대상을 수상했다. “지역적 특수성을 보편적 정서로 확장해 K-콘텐츠의 문화적 다양성과 확장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평가다.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제주 청춘들의 삶을 사계절의 서사로 담은 이 드라마에서 주연을 맡은 아이유는 ‘2025 K-엑스포’에서 최고 영예인 문체부 장관상을 받았다. 아이유는 “더 많은 세계인들이 K-컬처에 스며들 수 있도록 열심히 좋은 모습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드라마의 인기는 관광으로 연결된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관광공사가 최근 발간한 ‘해외 소셜로 보는 제주 관심 콘텐츠: 체험·활동’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대만·베트남·싱가포르 누리소통망(SNS)을 분석한 결과 ‘폭싹’ 방영 이후 대만에선 ‘해녀체험’ 언급량이 970%, 싱가포르에선 ‘성산일출봉’ 언급이 425% 급증했다.
‘폭싹’은 전 세계인에게 제주를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문화, 역사, 정서가 살아 있는 공간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K-콘텐츠 확장의 새로운 차원을 보여줬다. 그 가능성을 확실하게 입증한 것은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다. 6월 20일 넷플릭스에 공개된 ‘케데헌’은 K-팝 걸그룹 ‘헌트릭스’가 노래로 악귀를 물리친다는 설정을 통해 한국적 소재를 참신하게 고증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공개 석 달이 지난 지금도 ‘케데헌’ 열풍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9월 중순 기준 넷플릭스 콘텐츠 가운데 최초로 누적 시청수 3억 회를 돌파, 역대 최다 시청 기록을 세웠다. 오리지널 사운드트랙(OST)은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과 앨범 차트 ‘빌보드 200’을 동시에 석권했으며 빌보드 200에서는 13주 연속 10위권을 지키고 있다.
‘폭싹’, ‘케데헌’으로 본 K-콘텐츠의 경제 효과
주제곡 ‘골든(Golden)’을 따라 부르는 영상은 전 세계에서 쏟아졌다. ‘말문도 트이기 전에 골든으로 옹알이하는 외국 아기’, ‘우는 아기에게 골든을 들려주면 뚝 그친다’, ‘세 살 아들이 부르는 골든’ 등 각종 영상이 화제를 모으며 글로벌 열기를 더했다. 8월 북미 1000개 상영관에서 열린 싱어롱(관객이 작품 속 노래를 함께 부르며 관람하는 방식) 상영회는 단 이틀 만에 전석 매진되며 북미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대규모 합창은 극장을 넘어 미국 뉴욕 도심으로까지 번졌다. ‘싱어롱 버스’에 오른 승객들이 OST를 따라 부르자 거리 시민들이 손을 흔들며 화답하는 풍경은 SNS를 타고 전 세계로 퍼졌다.
‘케데헌’의 성공은 경제 전반 낙수효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7월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전년 동월 대비 약 23% 늘었고 2025년 누적 관광객은 1000만 명을 넘어섰다. 특히 작품의 주요 배경지인 서울 낙산공원·남산타워·북촌 한옥마을 등에는 외국인 발길이 눈에 띄게 늘었으며 미국·일본·프랑스 등에서 구글 트렌드 연관 검색어 절반 이상(52.4%)이 한국의 특정 장소였다. 북촌(11.8%), 낙산공원(9.6%), 올림픽주경기장(9.6%)이 대표적이다.
‘케데헌’ 효과는 국립중앙박물관 관람객 증가로도 확산됐다. 올 상반기 관람객 수는 2024년 동기 대비 64% 늘어나 2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뮷즈(뮤지엄과 굿즈의 합성어)’ 매출도 34% 늘어 역대 최고액을 달성했다. ‘케데헌’ 속 호랑이, 갓 등 전통 모티브가 인기를 끌며 ‘까치 호랑이 배지’, ‘흑립 갓끈 볼펜’은 입고 즉시 품절됐다. 이 밖에도 작품에 등장한 한식, 한의원, 대중목욕탕 등 한국적 생활문화에까지 외국인의 관심이 커지며 K-콘텐츠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는 성장 산업임을 증명했다.
8월 9일부터 12일까지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2025 캐나다 케이-박람회: 케이-스타일의 모든 것’도 그 예다. K-콘텐츠와 K-푸드, K-뷰티가 결합한 ‘K-스타일’ 전시·체험·공연이 큰 인기를 끌었다. ‘한식 랩소디’ 시리즈 제작사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기획한 ‘요리 토크쇼’에서는 김치, 새우젓 등을 활용한 K-푸드 요리법을 소개했고 웹툰 ‘여신강림’과 드라마 ‘나의 완벽한 비서’ 등에 등장한 메이크업 시연·제품 소개 행사도 열려 K-콘텐츠와 결합한 K-뷰티의 매력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문화의 힘,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동력”
이러한 성과는 국가 전략과 맞물리며 거대한 성장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는 일찌감치 K-콘텐츠의 힘을 국가 전략 자산으로 규정하고 문화적 영향력(소프트파워)을 세계로 확장하는 정책을 추진해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6월 30일 ‘문화강국의 꿈, 세계로 나아가는 대한민국’을 주제로 문화예술계 인사들과 간담회를 열고 글로벌 문화강국 실현을 위한 지원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는 ‘폭싹’의 김원석 감독을 비롯해 제78회 토니상 6관왕 박천휴 작가, 제78회 칸국제영화제 학생 부문 우승자 허가영 감독, 프랑스 문화예술훈장 최고등급 ‘코망되르’ 수훈자 조수미 성악가, 로잔발레 콩쿠르 한국 남성 무용수 최초 우승자인 박윤재 발레리노 등 한국 문화의 주역들이 함께했다.
이 대통령은 “너무 한국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오히려 해외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는 것을 보며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세계도 좋아하는 시대가 열렸음을 확신하게 됐다”며 “국가의 미래는 더 이상 군사력이나 경제력에만 달려 있지 않다. 문화의 힘은 대한민국이 세계 가운데 당당히 설 수 있는 새로운 성장동력”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구 선생께서 염원하셨던 ‘문화강국’의 초입에 서 있다. 국가가 문화예술인의 창작에 날개를 달아드릴 차례”라며 안정적 지원을 약속했다.
문화산업 육성을 위한 후속 움직임도 가시화됐다. 9월 9일 대통령 직속 대중문화교류위원회가 신설됐다. 공동위원장에는 최휘영 문체부 장관과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대표 프로듀서가 임명됐다. 위원회는 음악·드라마·영화·게임 등 대중문화 확산을 위한 민·관 협력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는 컨트롤타워다. 이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문화 역량을 발전시켜서 국민들이 먹고살 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박진영은 그 측면에서 아주 뛰어난 기획가”라고 임명 배경을 설명했다.
K-컬처 300조 원 시대 개막
재정적 지원도 더욱 강화됐다. 문체부의 2026년 예산은 전년 대비 10.3% 늘어난 7조 7962억 원으로 2020년 이후 최대 폭의 증액이다. 정부는 이 예산을 통해 K-컬처의 성장을 가속화하고 국민의 향유 기회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특히 핵심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할 수 있도록 ▲K-컬처 300조 원 시대 개막을 위한 콘텐츠산업의 국가전략산업화 ▲문화예술 향유 기회 확대 및 예술창작·복지 강화 ▲국민 모두가 즐기는 스포츠, 온 국민이 함께 누리는 관광 환경 조성 등에 전략적으로 예산을 배분한다.
정부는 K-팝의 가파른 성장세와 공연 수요에 대응해 중대형 규모 공연 아레나 구축을 위한 연구를 시작했다. 콘텐츠 인공지능(AI) 전환 혁신의 기반이 될 전략·모태펀드 출자를 확대하고 게임, 방송영상, 영화 등 분야별 지원은 물론 AI 활용과 기술 지원을 늘려 K-콘텐츠의 국가전략산업화를 추진한다. 대중문화예술인의 공헌과 업적을 기리고 영상산업의 역사·문화·교육적 전시를 결합한 복합문화공간과 한국 게임 문화를 대표하는 ‘K-게임 라키비움’ 조성도 추진한다.
노벨문학상·토니상 수상으로 이어진 K-아트의 세계적 성과를 확산하기 위해 K-뮤지컬과 K-문학의 지원도 강화한다. 뮤지컬 분야에서는 창·제작 복합공간 임차 및 시범공연 제작 지원과 해외 시범공연 지원 등을, 문학 분야에서는 번역 출판 및 번역아카데미 지원사업을 확대할 방침이다.
관광 분야 역시 K-브랜드와 연계해 신성장 산업으로 육성한다. 서울에 집중된 외국인 관광객을 전국으로 분산하기 위해 관광 기반 시설과 서비스 체계를 혁신한다. 관광기업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혁신을 시도할 수 있도록 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글로벌 관광특구’ 육성도 본격화한다.
한류는 더 이상 일시적인 유행이 아니다. K-드라마가 한국 관광 수요를 견인하고 K-팝을 소재로 한 영화가 수억 명의 해외 시청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한류에서 비롯된 K-브랜드들이 지금 세계를 바꾸고 있다.
이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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