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의 현장 남영동 대공분실민주주의 산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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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기념관 개관
1987년 1월 14일 서울 용산구 치안본부 대공수사단 남영동 분실 509호 조사실. 이곳에서 참고인으로 조사받던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 박종철 씨가 사망했다. 체포영장도 없이 끌려가 10시간 가까이 구타와 물고문을 당하다 숨졌지만 경찰은 “책상을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며 한 청년의 죽음을 조직적으로 은폐·조작하려 했다.
6·10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의 현장이자 군사독재 시절 불법구금과 참혹한 고문이 자행됐던 남영동 대공분실이 ‘민주화운동기념관(이하 기념관)’으로 재탄생했다. 6·10민주항쟁 38주년인 올 6월 10일 정식 개관한 기념관은 국가폭력의 현장인 남영동 대공분실의 현장을 보존하고 관련 기록·전시물을 볼 수 있는 구관(M2), 대구 2·28민주운동부터 4·19혁명, 6·10민주항쟁에 이르기까지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적 흐름을 보여주는 신관(M1)으로 이뤄져 있다.
2024년 12월 비상계엄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험한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고 새로운 미래를 경험할 공간이 생긴 것이다. 기념관은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옛 남영동 대공분실의 변신
수도권 전철 1호선 남영역에 내리자마자 방음벽 너머로 검은색 벽돌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옛 남영동 대공분실이다. 1976년 당시 간첩을 잡아 취조한다는 명분으로 내무부 치안본부(현 경찰청)가 발주하고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건물로 1983년 두 개 층을 증축해 현재와 같은 7층 건물이 됐다. 과거 ‘국제해양연구소’라는 위장 간판을 달고 있었던 이곳은 군사독재정권에 저항하는 무고한 시민들을 연행해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인권유린의 현장이었다. 이곳의 실체는 1985년 김근태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의장에 대한 고문이 언론에 알려지며 처음 드러났다.
남영역에서 나와 5분 정도 걸으면 기념관 입구에 닿는다. 우선 로비에서 구관 입장을 위해 대기했다. 구관을 관람하기 위해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누리집(kdemo.or.kr)에서 관람 예약을 해야 한다. 오후 1시 30분. 구관 관람 예약 시간에 맞춰 담당자가 예약자들을 불러모았다. 남영동 대공분실에 관한 간단한 안내가 끝난 뒤 예약자들과 함께 구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은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구관에 들어서자마자 대한민국헌법 제12조가 눈에 들어왔다. 1970~80년대 군사독재정권은 국가안보를 구실 삼아 통치와 정당성을 확보하려 했다. 이곳에서 헌법은 철저히 무시당했다. 감시와 처벌은 일상화됐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의 뜨거운 외침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1층 전시실에선 그 시대를 대표하는 결정적 장면들을 영상으로 만날 수 있다.
당시 상황을 재현하듯 건물 곳곳에선 사람들의 함성과 구호 소리가 들린다. 기념관은 구관 건물에 200개 넘는 스피커를 설치해 공간별 ‘사운드스케이프(소리 풍경)’를 지원하고 있다. 전시 동선에 맞춰 설계된 다양한 소리는 공간의 이야기를 더욱 섬세하게 그려낸다.
군사독재정권은 국가의 안녕과 안보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공공연히 간첩 수사를 했다. 독재정권에 충성하는 부역자들은 대공 수사 전담 조직을 꾸려 무분별한 성과를 만드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 이 때문에 1970년대에는 ‘잡은 간첩’보다 ‘만들어낸 간첩’이 많았다. 이로 인해 수많은 시민이 희생당했다. 2층 전시실에선 ‘삼척 고정간첩단 사건’, ‘민청련 사건’을 통해 무고한 시민이 하루아침에 간첩이 되는 지난한 진실규명의 시간을 만날 수 있다. 수많은 간첩 사건의 피해자들에 대한 재심과 무죄 판결, 국가 배상 자료도 정리돼 있다.
509호 조사실과 박종철 열사
3층 옛 특수조사실에선 이곳에서 이뤄진 고문의 실체를 마주하게 된다. 고문 기술자들이 사용하던 칠성판과 몽둥이 등의 고문 도구가 전시돼 있고 전기고문과 멍석말이 등의 고문 장면이 영상으로 흘러나온다. 물고문이 자행됐던 VIP조사실도 볼 수 있다. 옛 특수조사실의 경우 구체적인 고문 내용 등을 전시하고 있어 만 12세(초등학교 6학년) 이하 어린이의 관람이 제한된다.
피조사자들은 이곳에서 엄격한 감시를 받았다. 조사실에는 카메라와 마이크가 설치돼 일거수일투족이 기록됐다. 3층 전시실에선 각 조사실을 감시하던 폐쇄회로(CC)TV 화면을 볼 수 있다. 또한 이곳으로 끌려온 피조사자들이 가장 공포를 느꼈다는 나선형 계단도 화면으로 볼 수 있다. 나선형 계단은 1층 연행자 전용 출입구와 5층 조사실을 연결한다. 눈을 가린 채 끌려온 이들은 자신이 몇 층으로 가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철제 계단의 소리는 공포를 증폭시키고 원형 계단은 공간감을 상실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4층은 민주화를 위해 거리로 나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전시 공간이다. 군사독재정권으로부터 고문과 감시를 당했던 증언과 자료를 볼 수 있다. 박종철 열사도 그중 한 명이다. 그는 1987년 1월 13일 밤, 하숙집에서 치안본부 대공분실 소속 수사관 6명에 의해 연행됐다. 대학 문화연구회 선배이자 민주화추진위원회 지도위원으로 수배받고 있던 박종운을 잡기 위해서였다. 박종철 열사는 5층에 있는 조사실에서 물고문과 전기고문을 받다가 다음 날 숨졌다. 겨우 스물두 살이었다. 당시 사망원인을 미상으로 기록한 사망진단서와 관련 기록물도 볼 수 있다.
5층은 실제 고문이 이뤄졌던 조사실이 있는 곳이다. 통상 지하에 있던 여타 정보기관의 조사실과 달리 지상 5층에 자리 잡고 있다. 15개의 조사실 각각의 문에는 층수 없이 호수만 작게 표시돼 있었다. 조사실은 마주 보지 않게 설계해 문을 열어둬도 서로 볼 수 없게 만들어졌다. 조사실 문에는 밖에서 안을 감시할 수 있는 렌즈가 붙어 있다. 문은 안에서 열 수 없게 밖에만 손잡이가 달려 있다. 조사실 창문은 너비가 30㎝밖에 되지 않는다. 조사와 고문 과정에서 붙잡혀온 사람이 도망가거나 투신하는 걸 막기 위해서다.
고문과 인권유린의 현장을 살펴보는 관람객들의 얼굴에 많은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의 현장인 509호 앞에 발길을 멈추고 오랜 시간을 보내는 관람객도 있었다. 509호는 책상과 욕조, 침대 등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박종철 열사의 추모 공간으로 남아 있다. 김근태 민청련 의장이 고문당했던 515호실을 비롯해 다른 조사실도 누구나 들어가 살펴볼 수 있다.
민주화운동 역사를 한눈에
남영동 대공분실(구관)을 나와 전시 공간인 신관으로 향했다. 신관은 ‘역사를 마주하는 낮은 시선’이라는 건축적 의미를 담아 지하 2층까지 내려가는 동선으로 설계됐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신관 입구에 새겨진 대한민국헌법 제1조가 이곳에서 더 의미있게 다가온다. 이곳에선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더욱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가로 17m 규모의 디지털 스크린을 통해 이승만정권 시절 2·28민주운동부터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5·18민주화운동 등 시대별 주요 사건을 설명한다. 이와 함께 학생·노동·언론·여성 등이 펼친 민주화운동의 역사도 소개한다. 금요일 오후 2시, 토·일요일 오전 11시·오후 2시에는 특별도슨트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두 명의 안무가가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예술적 몸짓과 언어로 설명해준다. 역동적인 그래픽과 음악, 조명이 어우러져 한 편의 뮤지컬을 보는 듯하다. 특별도슨트는 올해 말까지 진행되며 무료다.
지하 1층에서 2층으로 내려가는 길에는 ‘보이는 수장고:오픈아카이브 창’이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수집·관리하고 있는 90만여 건의 민주화운동 사료 중 일부를 볼 수 있도록 보이는 수장고로 만들었다. 현재는 1987년 6·10민주항쟁 전후의 기록과 물품 중심으로 그날의 현장을 재구성했다. 그중 이한열 열사의 사진과 박종철 열사의 유품이 나란히 놓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지하 2층에는 30개의 터치형 액정표시장치(LCD)모니터를 통해 민주화운동 관련 영상을 관람객이 직접 선택해 볼 수 있는 전시 ‘민주의 기억’과 민주주의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할 수 있는 특별전 ‘민주주의, 내일을 꿈꾸다’가 진행 중이다.
교육동인 E건물에는 교육실과 회의실, 민주마루가 조성돼 있다. 민주주의와 인권,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의 현장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될 계획이다. 특히 4층 민주마루에선 기념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함께 보고 느끼는 색다른 경험이 가능하다.
강정미 기자
민주화운동기념관
주소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71길 37
운영시간 매주 화~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추석 당일
관람료 무료
문의 (02)6440-8900
[자료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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