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잔해 걷어내고 잿더미 파헤치며 유물 하나라도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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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이 앗아간 고운사 보물 수습 현장을 가다
지난 3월 발생한 영남지역 산불로 인해 총 36건의 국가유산 피해(국가지정문화유산 13건 및 시·도지정문화유산 23건)가 집계됐다. 국가유산청은 당시 국가유산 재난 위기경보 ‘심각’ 단계를 발령했지만 역대 최대 규모의 화마는 귀중한 유산을 할퀴고 갔다. 경북 의성군에 위치한 천년 사찰 고운사에 있는 국가지정문화유산(보물) ‘연수전’과 ‘가운루’도 그중 하나다. 6월 18일 찾아간 고운사는 곳곳이 화재로 무너져 내린 처참한 모습이었다. 이날 복원에 앞서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은 수습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때이른 폭염 속에서 국가유산청 관계자들은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 채 잿더미가 된 유산들을 수습하고 있었다. 무너져 내리기 직전의 기둥을 압박붕대 감 듯 흰 보강재로 돌돌 감아놓고 무너진 잔해 속에서 그나마 상태가 괜찮은 유물들은 조심스럽게 들어올려 발견 위치와 번호를 적었다. 이 모습을 바라보던 고운사 주지 등운 스님이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자연재해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불교에서 가르치길 무상(모든 것이 덧없다)하다고 하죠. 갑작스러운 일로 안타깝지만 이 또한 받아들이려 합니다.”
유산 피해 복구에 488억 원 투입
국가유산청은 4월 1일부터 국가유산 피해 현장과 주변 상황을 점검하고 유산별 피해 현황을 파악했다. 올해 안으로 부재(구조물의 요소 재료들) 수습과 긴급 보존 처리, 복구 설계 등이 진행될 예정이며 본격적인 복구공사는 2026년부터 추진할 계획이다. 국가유산청과 행정안전부, 각 지방자치단체 등은 이번 유산 피해 복구에 국비와 지방비를 합쳐 488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고운사의 경우 6월 9일 먼저 육안 식별을 통해 표면만 수습하고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인력이 동원돼 수습 작업이 진행됐다. 산불로 인해 전소된 문화유산은 가운루와 연수전. 잿더미의 상부부터 켜켜이 걷어내며 수습 가능한 부재를 최대한 보존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렇게 수습 작업 8일 차인 6월 18일 무너진 잔해 속에서 연수전의 바닥층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수습된 부재들 가운데 복원 시 재사용이 가능한 것을 선별하는 작업이 진행됐다. 복원에 쓰이지 않더라도 보존 가치가 있는 부재는 향후 고운사 안에 별도의 전시 공간을 마련해 연구 및 교육 자료로 활용할 예정이다.
기둥과 기와 등 잔해들을 모아놓기 위해 절 곳곳에는 급하게 임시 공간이 마련됐다. 온도와 습도에 민감한 목재 잔해들은 된장·간장과 같은 장류 보관 시설에, 비교적 덜 민감한 기와는 목욕탕에 펼쳐놓은 상태였다. 한 곳 한 곳 들어갈 때마다 그을린 냄새가 진동했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주지 스님이 제공한 장류 보관 장소는 온도가 25℃ 정도로 유지되고 있어 임시 보관 장소로 적합하다”고 설명했다.
미관보다는 원형에 가깝게
고운사 화재 직후 국가유산청은 12명으로 구성된 조사단을 투입하고 피해 현장을 정밀 진단했다. 이들은 수습한 부재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분류하고 조사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엔 조사일자와 함께 직접 손으로 그린 도면과 수습 과정에서 주운 부재의 위치, 부재의 재료(목부재·석부재·철물·기와 등)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작업에 참여한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김동열 조사원은 “수습 작업은 발굴조사에 가깝다. 계획을 세우지만 단순 작업이 많다” 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일단 전소된 문화유산은 면적에 따라 구역을 나누고 바닥면이 굴곡이면 잔해들이 위치한 곳을 표기해둔다. 예를 들어 A구역에서 23번째로 발견된 부재는 ‘A-23’이라고 번호를 매긴 스티커를 붙여놓고 발견된 위치도 함께 표시해둔다. 그래야 원형을 최대한 알 수 있다.
다음 작업은 기존에 있던 해당 문화유산의 도면을 현장에서 촬영한 항공사진 위에 얹고 대조하는 것이다. 이 부재가 원래 그 자리에 있던 것이 맞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하지만 설계와 현장이 100% 일치하긴 어렵다. 김 조사원은 “유산으로 지정된 건축물에 대해선 국가유산청이 재해를 대비해 평소에 실측을 하고 복원도를 마련해두는데 아쉽게도 고운사 가운루는 2024년 보물로 지정됐기 때문에 정밀 실측에 들어가려고 하던 참에 불이 나서 기본도면만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고운사 수습 현장에 있던 국가유산청 연구사들은 고대 건축, 근대 건축, 건축 기술, 건축 역사, 목조 건축, 디지털 복원 등 다양한 전공의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화재 전 고운사에 왔을 때 본 건물들이 사라졌다. 이 정도로 심각한 줄은 몰랐다”고 안타까워하며 “역사적 의미가 큰 유산이기 때문에 지금 남아 있는 구조물이라도 최대한 살려보겠다”고 말했다.
폐기물 수백 톤, 사람 손으로 일일이
복구나 보존이 불가능한 부재들을 폐기하는 절차도 까다롭기는 마찬가지다. 고운사 공터 한편에 쌓여 있는 수많은 포대자루가 눈에 띄었다. 복구나 보존이 불가능한 잔해들을 야적해놓은 것이다. 비록 화재 현장에서 잿더미가 돼 복원이나 보존이 어려운 부재일지라도 국가유산기본법상 현장 수습 과정에서 반출할 땐 행정기관의 승인을 받게 돼 있다고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설명했다. 한 개당 500㎏에서 1.5톤까지 나가는 포대자루가 200개가량 쌓여 있었다. 현장 관계자들이 흙바닥에서 직접 손으로 주워 담은 것들이다. 수습 현장에 포클레인과 같은 중장비를 들여오기는 어렵다. 불에 탄 기둥은 물만 닿아도 균열이 가고 그을린 돌은 작은 충격에도 깨지기 쉽기 때문이다.
또 다른 보물 가운루 수습 현장도 처참하긴 마찬가지였다.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손상돼 있었다. 개울과 석축(石築)을 통해 그곳에 가운루가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뿐이었다. 곧장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자 국가유산청 직원이 안전모를 들고 헐레벌떡 뛰어왔다. 이미 다 타버린 건축물이지만 땅이 미끄러운 데다 그나마 남은 구조물을 지지하는 지반마저 화재로 연약해진 탓에 다칠 위험이 크다며 안전모를 착용해줄 것을 요청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곳곳에 보강재로 감싸놓은 구조물들은 툭 건드려도 쓰러질 것 같았다.
아찔했던 화재 순간
화재 당시 급박했던 고운사의 사정도 들어봤다. 한 스님은 “당시 주변이 폭격을 당한 것처럼 불바다가 돼 있었다. 5분만 늦었어도 대피를 못했을 것”이라며 “소방관들이 불길 속 온도가 1000~1500℃에 달했다고 했다”고 전했다. 고운사 측은 사찰 건물을 복구하는 데만 700억~800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했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산은 불에 타 앙상했지만 산 고개 너머로 그나마 새순이 돋아나고 있었다. 그 장면을 바라보던 등운 스님이 “불에 탄 나무를 벌목하는 대신 자연 치유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운사를 둘러싼 등운산은 바위로 이뤄져 있고 그 위를 흙이 살짝 덮고 있는 구조”라며 “경사가 심한 데다 토양도 없는 환경에서 인위적으로 나무를 심기보단 자연에 재생을 맡겨보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타버린 과거를 끄집어낼 순 없습니다. 현재를 온전하게 깨어 살아가야지요. 최선을 다해 복구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김광주 기자
고운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
30개 동 중 21개 동 전소
경북 의성군에 있는 고운사는 신라 신문왕 1년(서기 681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 고찰이다. 창건 당시는 고운사(高雲寺)라 했으나 200여 년 뒤 고운 최치원이 이곳에서 수도하면서 가운루와 우화루를 지은 후 그의 호를 따서 고운사(孤雲寺)로 개칭했다. 조선시대 몇 번의 중수를 거쳤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가 승병의 기지로 사용하기도 했다. 1835년 화재로 소실돼 새로 지었으나 1970년대 들어 건물 일부가 다시 소실된 바 있다.
2020년 보물로 지정된 연수전은 조선시대 국왕의 기로소(耆老所·고령의 고위 문관들을 예우하기 위한 기구) 입소를 기념하는 건축물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사례라고 국가유산청은 설명했다. 수준 높은 단청과 벽화, 대한제국 황실을 상징하는 도상들이 풍부해 역사적 가치가 크다. 가운루는 1668년 지어진 것으로 여러 차례의 부분 수리를 거쳤지만 큰 훼손이나 변형 없이 잘 유지돼왔다. 조선 중·후기 건축양식이 잘 남아 있는 데다 계곡을 가로질러 설치된 독특한 사찰 누각 건물로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받았다.
고운사에 화마가 덮친 건 3월 25일이다. 이때 고운사 전체 건물 30개 동 가운데 9개 동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들이 전소됐다. 국가유산청은 이번 화재 이후 소실 위험이 있는 불화(佛畵), 불상 등 문화유산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주변에 물을 뿌리는 등 방염 조치도 취했다. 복원을 위해 부재를 수거한 후 향후 산불 예방 및 재난상황에서의 대처 방안을 연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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