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ADHD 환자 급증 방치 땐 우울·공황장애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이 치료의 첫걸음”
작성자 정보
- 공감 작성
- 작성일
본문
ADHD 전문가, 반건호 경희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대화를 할 때 이야기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다 불쑥 상대의 말을 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한다. 업무를 제때 끝내기 어렵고 해야 할 일을 꼭 한 가지씩 빼먹는다. 정리정돈이 잘 안 된다. 생각이 많아 밤에 잠이 들기 어렵다. 무기력하게 있다가도 어떤 일은 모터가 달린 것처럼 지나치게 열중한다.’
내 이야기처럼 느껴진다면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ADHD)’를 의심해볼 수 있다. ADHD는 아동기 남아에게만 나타나는 질환이 아니다. 최근에는 성인 ADHD 환자도 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2년 ADHD로 병원 진료를 받은 환자 14만 7283명 가운데 41.6%(6만 1331명)가 성인 환자였다. 국내 의학계에서는 성인 ADHD 환자 수를 82만 명 이상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높은 관심과는 별개로 질환에 대한 부정확한 정보와 편견도 많다. ADHD를 질병이 아닌 개인의 성향으로 보거나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나아지는 질환으로 생각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ADHD는 전전두엽의 발달이 상대적으로 느려서 나타나는 ‘뇌 질환’이다. 전전두엽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행동을 통제하고 집중력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제때 치료를 받지 않으면 평생 증상을 안고 살 수도 있다.
반건호 경희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ADHD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해온 인물이다. 37년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일하며 ADHD가 아동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님을 느끼고 2012년 ‘성인 ADHD 진료지침’을 발표했다. 국내에 ADHD 개념이 자리잡기 전 한국형 ADHD 검사·평가·교육도구 개발에도 참여했다. 2022년에는 ADHD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대중서 ‘나는 왜 집중하지 못하는가’를 펴냈다. 이어 지난 7월 스웨덴 웁살라대 정신의학과 로타 보그 스코글런드 교수의 책 ‘여성 ADHD-투명소녀에서 번아웃 여인으로’를 번역하는 등 여성 ADHD 연구에도 힘을 쏟고 있다. 반 교수는 “‘사고뭉치’, ‘공부 못하는 아이’ 등은 미디어가 만들어낸 편견”이라며 “ADHD를 제대로 이해하고 나아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치료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했다.
ADHD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이유가 뭔가?
과거 ADHD는 청소년기에 이르면 점차 회복되는 질병으로 봤다. 그러다 1987년부터 이 질환에 대한 세계보건기구(WHO)의 정의가 바뀌면서 성인 환자까지 인정하게 됐다. 진단 기준 연령도 높아졌다. ADHD는 성인이 돼 갑자기 발병할 수 없다. 어린 시절부터 증상이 있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한 연령기준이 2013년 이후 7세에서 12세로 높아졌다. 이에 따라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리기가 더 쉽다는 점도 환자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마지막으로 여성 환자의 증가다. 코로나19 이후 우울증으로 병원을 찾는 20~30대 여성이 10배 이상 급증했다. 우리 사회에서 정신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이다. 2030 여성들이 우울증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ADHD로 진단을 받는 사례가 늘었다. 우울증은 성인 ADHD의 대표적 증상이다. 더불어 질병에 대한 정보가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스스로 병원을 찾는 이들이 늘었다.
ADHD는 선천적 요인이 크다고 들었다. 유전 가능성이 높은가?
많은 정신질환은 선천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이다. 즉 ADHD 유전자를 갖고 있더라도 주변 환경에 의해 증상이 발현될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거다. 현대사회는 ADHD에 취약하다. 도시생활, 경쟁적인 사회 분위기는 증상이 쉽게 발현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유전적 요인 중에 가장 강한 것이 키다. 키는 100% 부모 한쪽을 따라가게 돼 있다. ADHD는 키 다음으로 유전 요인이 강하다. 통계적으로 70%는 유전된다고 본다. 실제로 아동 ADHD 환자를 진료하다 보면 부모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성인 환자들이 호소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뭔가?
앞서 이야기한 대로 ‘우울’이다. ADHD 환자의 특징 중 하나가 상대에게 잘 공감하지 못하는 거다. 어릴 때는 이게 ‘억울함’으로 나타난다. 진심으로 하는 행동인데 친구들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만 하는 사람으로 보고 점점 따돌리게 된다. 그러면 학교생활이 재미없어지고 그런 시간이 지속되면 결국 우울해진다. 또 다른 어려움은 자꾸 미루게 되는 습관이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다. 집중이 안 되니 자꾸 미루고 결국 약속을 못 지킨다. 직장생활은 모든 게 약속이다. 그러니 회사생활이 힘들 수밖에 없다. ‘나는 안 된다’는 생각에 자존감이 떨어지기 쉽다.
ADHD라고 하면 보통 산만하고 시끄러운 사람을 떠올리지 않나?
ADHD는 시간이 지나면서 증상이 계속 바뀐다. 특히 사춘기 전후로 과잉행동은 차츰 줄어든다. 하지만 과잉행동이 사라진 게 아니라 형태가 달라지는 거다. 머릿속으로 안절부절못하고 불안정해진다. 또 산만함과 반대되는 대표적 증상은 ‘멍 때리는’ 것이다. 의학용어는 아니지만 이걸 ‘조용한 ADHD’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병원을 찾아오는 사람 중에는 변호사나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도 있다. ADHD가 있으면 학업에 어려움을 겪기 쉽지만 그렇다고 반드시 학업 성적이 나쁘다는 건 아니란 얘기다. ‘공부 못하는 아이’, ‘사고뭉치’ 등의 이미지는 미디어가 만들어낸 이 질환에 대한 편견이다.
직접 번역한 스코글런드 교수의 책에서는 여성 ADHD 환자를 ‘투명소녀’, ‘번아웃 여인’이라고 표현했다. 여성 환자는 또 다른 특성이 있나?
과거에는 ADHD를 남자아이에게만 발병하는 질환으로 여겼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아동기 ADHD의 남녀 비율은 5대 1로 남아가 우세하지만 성인기에 접어들면 1대 1로 성비가 같아진다. 연령에 따라 성비가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는 사회가 남성과 여성을 다르게 대하는 탓이다. 남자아이가 문제행동을 보이면 치료를 통해 적극적으로 고치려 하는 반면 여자아이는 문제행동 자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압박한다. 더욱이 여성들은 자기문제를 감추고 스스로 교정하려고 애쓴다. 진짜 문제는 내면의 혼란을 감추기 위한 태도가 과장된 완벽주의, 강박증, 불안, 섭식장애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거다. 여성 ADHD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모범생(투명소녀)’, 완벽을 추구하다 지친 ‘번아웃 여인’으로 표현되는 이유다.
증상의 양상이 무척 다양하다. 진단은 어떻게 내리나?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첫 번째는 자가 테스트인 자기보고(스크리닝)다. ‘중요한 일을 끝내고 나서 마무리 짓는 데 어려웠던 적이 있나’,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하는 모임에서 얼마나 자주 이탈하나’ 등 ▲주의력 ▲과잉행동 ▲충동성을 항목별로 평가한다. 이후 기계로 주의력검사(CAT)를 한 뒤 의료진이 직접 환자를 인터뷰한다. 자기보고 검사에서 ‘약속을 자주 까먹는다’는 항목이 나오면 인터뷰에서 어느 정도인지 심층적으로 확인하는 식이다. 또한 면담을 통해 증상이 ADHD 때문인지를 명확히 한다. 개인의 기질이나 경험, 신체 질환 등 다른 데 원인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가능한 경우 생활기록부도 확인한다. 어린 시절 발생하는 ADHD를 진단하는 데 중요한 자료다. ‘공부는 잘하지만 산만하다’, ‘명랑하지만 대인관계에 어려움이 있다’는 등의 한 줄이 단서가 될 수 있다.
약물치료는 꼭 필요한가? 중독성·부작용은 없나?
노력을 통해 스스로 증상을 완화하는 사례도 있다. 하지만 뇌에서 벌어지는 일을 의지로 통제하는 건 쉽지 않다.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라고 하고 싶다. ADHD 치료제로 쓰이는 메틸페니데이트, 아토목세틴 계열의 약은 주의·집중력을 조절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에 작용해 각성 상태로 만든다. 식욕부진 등의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지만 청소년의 키 성장에는 영향이 없다. 아까 말했듯 키는 100% 유전이다. 지나치게 많은 용량을 한 번에 먹지 않는 이상 중독 우려도 없다. 처방 용량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무척 까다롭게 관리한다.
성인 ADHD는 우울증을 동반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치료의 우선순위는?
성인 ADHD 환자의 84%는 최소한 한 가지 이상의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우울, 강박, 공황장애, 중독, 수면장애, 식이장애 등이다. ADHD를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이 같은 공존 질환까지 얻게 되는 거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 증상을 치료하는 게 먼저다.
최근 산만함, 충동성 등 ADHD 환자의 특성이 창의력, 열정과 같은 긍정적인 에너지로 연결될 수 있다고 보는 학계의 노력도 눈에 띈다.
발명가 에디슨, 애니메이션 제작자 월트 디즈니, 잉그바르 캄프라드 IKEA 회장도 ADHD를 앓았다. 이들은 엉뚱함, 몽상, 즉흥성으로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성공을 일궜다. 모두 ADHD의 특성과 관련이 있는 것들이다. ADHD 환자는 에너지가 많다. 문제는 그 에너지를 사회에서 요구하는 방식대로 쓰려고 하니 번아웃이 온다. 어떤 질환이 있을 때 그 증상을 없애려고만 하지 말고 거기서 장점을 찾고 이를 강화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아동 환자의 보호자에게는 학급 반장을 시키라고 조언한다. 알아서 학교도 일찍 가고 시키지 않아도 청소를 한다.
주변 사람들과 사회도 함께 도와야 할 것 같다.
한 사람이 가진 99%의 장점을 보지 않고 ADHD 환자라는 1%의 특성만 보는 게 문제다. 특히 우리 사회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이 심하다. 예를 들어 당뇨병의 경우는 ‘아, 저 사람은 당뇨가 있구나’라고 생각하지만 ADHD는 ‘환자=ADHD 자체’라고 생각한다. 또 시력이 안 좋으면 안경을 쓰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ADHD가 있다고 하면 채용에 불이익을 주는 등 거리를 둔다. 사람보다 질환이 우위에 있는 거다. 중요한 건 교육이다. 교육은 질병에 안 걸리도록 하는 게 아니라 질병을 가지고도 잘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거다. ADHD는 분명 나을 수 있는 질환이다. 자주 물건을 잃어버리고 깜박하는 ADHD 환자를 질책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ADHD의 특성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 나아질 수 있다고 믿어주는 것이 ADHD 치료의 지름길을 만들어준다.
조윤 기자
박스기사
정부, 마음건강 서비스 강화
심리상담 ‘전 국민’ 확대
정부가 ‘전 국민 마음건강 강화’에 나선다. ‘정신질환 예방-조기 발견-치료-복귀’ 전 과정의 연계성을 강화하고 이를 위한 투자를 대폭 늘린다. 윤석열정부의 국정과제인 ‘예방적 건강관리 강화’의 일환이다.
먼저 정신건강 관리의 패러다임을 ‘예방 중심’으로 전환한다. 이를 위해 누구나 필요한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심리상담 서비스 프로그램을 2024년부터 도입한다. 우울 중간위험군, 자살유가족 등 정신건강 중위험군 등 8만 명을 우선 대상으로 전문 심리상담을 연간 8회 이상 제공(바우처 지급)한다. 2026년 이후에는 서비스 대상을 전 국민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자살 예방 전화상담도 활성화한다. 2024년까지 48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고 상담사는 100명으로 늘린다. 이를 통해 전화 응대율을 현재 60%에서 75%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치료·재활 측면에서는 정신질환자의 긴급 외상치료 지원을 강화하는 한편 입원에 대한 거부감을 완화하는 데 주력한다. 현재 전국 10곳에 마련된 권역정신응급의료센터는 2024년까지 12곳으로 늘린다. 일반 응급의료센터에도 정신응급환자를 위한 전용 병상을 2병상 이상 구축할 방침이다. 아울러 현재 17개 시·도에서 운영 중인 정신건강복지센터 위기개입팀을 확대 개편한다. 정신응급환자 발생 시 지역사회의 현장 대응 기능을 강화하는 차원이다.
[자료제공 :(www.korea.kr)]
관련자료
-
링크
-
이전
-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