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울다가 웃다… ‘반도체 거인’ 대만의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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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신주에 위치한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 TSMC
‘작은 거인’ 대만에 배운다
코로나19 국면에서 경쟁력이 부각된 국가 중 하나는 대만이다. 한때 우리나라를 포함해 아시아의 네 마리 용 중 가장 앞섰으나 중국 정부의 ‘하나의 중국’ 전략에 따라 국제 고립에 빠져 정체의 길을 걷던 대만의 재발견에 가깝다. 1인당 국민소득 기준으로 우리나라를 제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그 중심에 TSMC와 미디어텍을 비롯한 반도체 기업과 산업이 자리 잡고 있다. 미중관계 등 국제질서 변화와 흔히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정보기술(IT) 산업 혁신 같은 외부 요건이 대만 반도체산업의 성장에 크게 작용한 측면이 있지만 동시에 정부의 산업정책 기여도 빼놓을 수 없다.
대만 경제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반도체산업 의존도가 높다. 내수보다는 수출이 경제를 끌고 간다는 점도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그 중심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 TSMC가 있다. 파운드리 분야에서 세계 시장 점유율이 60%에 이른다. 삼성전자, 인텔처럼 설계부터 제조까지 직접 하는 업체가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 컴퓨터나 스마트폰, 차량에 들어가는 시스템반도체 10개 중 절반 내외를 TSMC가 만든다는 얘기다. 클라우드와 인공지능(AI) 자율주행, 5세대(5G) 통신 등에 필요한 고성능 칩을 생산할 수 있는 극소수 기업 중 하나다. TSMC의 기술력이 얼마나 어느 속도로 진화하느냐에 따라 4차 산업혁명의 전개 방향도 달라진다는 분석이 나오는 까닭이다.
TSMC 외에도 반도체 강자가 더 있다. 바로 미디어텍이다. 미국 퀄컴에 이은 세계 2위의 스마트폰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설계 전문 업체다. AP는 컴퓨터 중앙처리장치(CPU)와 같이 스마트폰의 두뇌 구실을 하는 반도체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텔레비전에 들어가는 간단한 칩을 설계하는 작은 업체였으나 2010년대 들어 중저가 스마트폰 브랜드인 샤오미나 오포 등에 AP를 공급하면서 세계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났다. 그 후 불과 10년 만에 반도체 전체 시장에서 7위, 팹리스 업체 중에선 퀄컴과 브로드컴에 이어 3위에 올랐다. 2021년 매출은 약 21조 원에 이른다. 10년 만에 5배 남짓 매출이 불어났다. 보기 드문 성장세다.
▶세계 2위 스마트폰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설계 업체 미디어텍 본사│연합
대만 반도체 기업들의 성공비결
대만 산업사를 되짚어가다 보면 ‘중국의 역설’이 발견된다. 대만에는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완제품 브랜드는 드물다. 한때 HTC(스마트폰), 아수스(PC) 등이 세계무대에 도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좁디좁은 ‘내수시장’이 발목을 잡았다. 단적으로 대만 인구는 서울 인구의 두 배가 조금 웃도는 2400만 명에 그친다. 세계시장에서 도전할 만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그때까지 버틸 수 있는 내수가 중요하다. 현대차와 기아가 세계적인 완성차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던 까닭을 상기하면 된다. 외수(수출 시장)가 있다면 또 다른 얘기가 될 수 있지만 그 시장에 토박이 브랜드가 있다면 이마저도 기대하기 어렵다. HTC가 화웨이나 샤오미를 넘기에는 구조적 한계가 있었단 얘기다.
그렇다면 TSMC와 미디어텍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두 업체 모두 반도체 기업이며 부품 제조·설계 기업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완성품 업체와 상호 보완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업이란 의미다. 이와 더불어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가까우며 내수가 풍부한 중국이 곁에 있다. 중국이 휴대전화 등 완성품 분야에서 몸집을 불려가자 대만의 반도체 기업들도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중국의 자동차 대중화 시기와 우리나라 자동차 업체의 급성장 시기가 겹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중국의 후광이 없었다면 대만의 반도체 기업들의 성공 스토리도 없었을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수년간 이와는 다른 양상이 펼쳐졌다. 미국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뚜렷해진 미중 갈등 상황은 역설적으로 대만에 기회로 작용했다. 1990년대 초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며 세계시장에 진입한 뒤 20년 가까이 대만에는 눈길을 주지 않던 미국이 대만을 중국 견제의 전초기지로 삼는 전략을 구사했다. 대만 반도체 업체로선 새로운 수요처를 확보하는 모양새가 됐다는 얘기다. 사실 이즈음 대만은 화웨이의 자회사 하이실리콘을 중심으로 중국의 반도체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데 위협을 느끼던 터였다. 미 애플이 핵심 칩 위탁 생산을 삼성전자가 아닌 TSMC에 맡긴 것. 이런 경제 외적 환경 변화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연구개발(R&D) 투자에 적극 재정지원
하지만 대만은 현재의 승승장구가 앞으로도 이어질지에 대해 자신하지 못하는 모습이다. 현재의 성공 방정식에도 대만 반도체산업에는 취약점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양상은 놀라울 정도로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바로 세계 가치사슬 위험이다. 장비·소재에서 시작돼 설계·제조를 거쳐 판매로 연결되는 반도체 생태계에서 대만 역시 우리나라처럼 특정 분야에 집중·전문화돼 있다. 대만의 반도체 산업정책의 무게 중심이 ‘자주적 공급망 확보’에 맞춰진 건 자연스러운 결과다.
대만은 2019년부터 이런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한 산업정책을 수립·추진하고 있다. 큰 줄기는 기존의 제조 기반 강화와 소재·장비의 국산화, 우수 인력 유치다. 우선 제조 기반 강화는 대만 북서부에 위치한 신주과학단지에 2035년까지 약 273억 신 대만달러(NTD·약 1조 2000억 원)를 투입해 공장 면적과 생산액을 키우는 것. 이를 위해 토지와 수자원, 전력, 소재 공급을 지원하는 등 제조 생태계를 강화하는 게 뼈대다. 같은 맥락에서 해외에 생산시설을 둔 대만 첨단기업의 복귀(리쇼어링)를 위한 낮은 금리의 대출 지원도 이뤄지고 있다. 리쇼어링 기업 대상 대출 재원은 무려 5000억 NTD(21조 8300억 원)에 이른다.
소재·장비의 국산화를 위해선 세계 선진 기업 유치와 더불어 산·학·연 연계 강화와 연구개발(R&D) 투자에 대한 적극적인 재정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한 예로 스마트 기계나 5세대 통신망 분야에서 100만 NTD(4366만 원) 이상 투자한 외국 기업은 당해 연도 지출액의 5%까지 세액공제를 해주고 있다.
김경락 기자
[자료제공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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