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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새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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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는 많은 것을 바꿔놨다. 사람들의 얼굴과 표정은 마스크로 가려졌고 악수와 키스를 하는 이는 무모한 사람으로 간주됐다. 학교, 사무실, 공연장 등 매일 가던 공간의 출입이 제한되자 사람들은 온라인으로 안부를 전하고 회의를 했다. 수십 년 전 유명 배우 커플의 이혼 사유였던 ‘사랑하니까 헤어진다’는 말이 졸지에 예의를 지키는 에티켓으로 변한 것이다.
지난해 한 대학교에서 6개월간 강의할 기회가 있었는데 같은 학번 학생들이 서로 존댓말을 하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대부분의 수업과 만남이 온라인으로 이뤄졌고 사회적 거리두기 규제가 풀린 뒤에도 다들 마스크를 하고 있기에 가까워질 기회가 적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배려보다는 경계하는 마음이 앞서고 서로를 의심의 눈으로 보게 됐다. 대학생뿐 아니라 전 세대에 걸친 변화였다.
몇 주 전 연극 공연을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그 공연은 ‘자유석 시스템’이어서 조금 일찍 극장에 가야 했다. 지정석이 아닌 경우엔 입구에 줄을 섰다가 차례로 들어가야 했기 때문이다. 아내와 나는 비교적 앞쪽에 줄을 서 있었는데 그때 업무상 중요한 전화가 오는 바람에 줄에서 이탈해야 했다. 아내는 우리 뒤에 서 있던 여성에게 웃으며 양해를 구했다. “저희 남편이 잠깐 전화를 받으러 갔는데 다시 와서 여기 서도 되겠죠?” 여성의 대꾸는 싸늘했다. “새치기를 하겠다는 건가요?” 따지고 보면 새치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의지가 역력하게 느껴져 아내는 한발 물러섰다. “예. 그럼 저희가 맨 뒤로 갈게요. 근데 이게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일은 아니지 않나요?” 그러자 그 여성의 입에서는 더욱 앙칼진 소리가 튀어나왔다. “기분 나쁘잖아요!”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공연장에 들어간 그 여성은 자기 옆자리에 가방을 올려놓았다. 혹시 친구 자리를 대신 맡아놓는 건가 하는 의심에 유심히 쳐다보니 역시 뒤쪽에 서 있다가 들어온 여성이 웃으며 그 자리에 앉았다. 명백한 새치기였다. 당장 달려가서 왜 새치기를 하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어느덧 불의를 보고도 잘 참는 게 버릇이 된 나는 한숨을 쉬며 허탈하게 웃어야 했다. 시인 김수영은 고궁을 나서며 ‘왜 나는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라고 일갈했지만 나는 작은 일에도 분개하지 못하는 어른이 됐다는 자괴감이 몰려왔다.
공정함이 화두인 시대다. 그런데 공정이라는 게 똑같은 출발선에 서 있다가 다 같이 출발하는 달리기 같은 것이라면 너무 얄팍하고 표면적이다. 누군가는 운이 좋아 충분히 훈련을 하고 뛰겠지만 누군가는 체력 조건이 더 안 좋은 상태에서 출발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 진정한 공정함이란 각자의 능력이 아니라 상대방을 배려하는 측은지심에서 온다. 부자 아빠를 둔 아이의 1000원과 가난한 집 아이의 1000원이 다르듯이 각자가 처한 상황은 천차만별이다. 이를 다 알 수 없기에 ‘내가 좀 손해를 봐도 괜찮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편성준
유머와 위트 넘치는 글로 독자를 사로잡은 작가.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했다. <부부가 둘 다 놀고 있습니다> <살짝 웃기는 글이 잘 쓴 글입니다>를 썼다. 현재 다양한 채널에서 글쓰기와 책쓰기 강연을 하고 있다.


[자료제공 :icon_logo.gif(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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