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콕 육아 대신 러닝 육아! “육아에 지쳤나요? 유아차 밀며 함께 달려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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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차 런 동호회 ‘캥거루크루’
6월 1일 일요일 오전, 서울 용산구 용산공원에 유아차를 끌고 온 가족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 손엔 ‘떡뻥(어린이 쌀과자)’을, 다른 손엔 ‘뽀로로’ 음료수를 든 유아차 속 아이들은 이른 아침에도 하나같이 밝은 표정이었다. 유아차 아래엔 속을 든든하게 해줄 퓨레 등 여분의 ‘전투식량’이 가득했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들 역시 활기가 넘쳤다. 쇼트팬츠에 운동화, 선글라스까지 장착한 이들이 아침 일찍 모인 이유는 뭘까?
이들은 러닝 동호회 ‘캥거루크루’의 회원들이다. 러닝을 좋아하는 부모들이 만 2세 전후의 아이들을 유아차에 태우고 다른 가족들과 함께 달리는 것이 목표다. 전국적으로 러닝 열풍이 불면서 각종 러닝 동호회가 생겨나고 있지만 유아차 러닝 크루는 캥거루크루가 최초다. 회원들은 매달 정기 런 모임을 갖고 계절마다 기부 런 행사도 연다. 출산으로 달리기를 그만둬야 했던 러너, 육아를 하며 급격히 떨어진 체력을 끌어올리고 싶어하는 부모, 아이와 특별한 추억을 만들고 싶은 이들 70여 명이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날 서른 팀의 가족이 모두 모이자 유아차 부대는 일제히 출발선으로 향했다.
“꼭 완주하지 않아도 돼요. 무리하지 말고 자기 페이스에 맞게 뛰면 됩니다.”
캥거루크루를 이끌고 있는 안정은 씨의 말에 유아차가 하나둘 거리로 미끄러져 나오기 시작했다. 용산공원 미군 장교숙소에서 진행된 이날 정기 모임은 순환구간을 왕복하는 총 5㎞를 달리는 것이 목표였다. 혼자 달리는 것도 쉽지 않은데 유아차를 밀며 달리는 것이 가능할까? 의구심은 잠시, 유아차에 손을 올린 채로 부모들은 익숙한 듯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아빠, 나무 키가 엄청 커.” “달려~ 까까~ 달려~” 아이들은 바퀴가 굴러갈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감상하며 제 나름대로 러닝을 즐겼다. 부모 러너들은 서로에게 “파이팅”을 연호하며 힘을 북돋아줬다.
전용 유아차는 선택, 아이 간식은 필수
캥거루크루는 2024년 5월 ‘제1회 유아차 기부 런’을 시작으로 결성됐다. 러너들 사이에선 오래전부터 유명 인사였던 안 씨가 주축이 됐다. 그는 한국 최연소(만 30세) 세계 6대 마라톤 완주 기록 보유자다. 250㎞ 고비사막 마라톤 종주에 성공했고 160㎞ 구간을 37시간 동안 달린 이력도 있다. 출산 이후 잠시 삶에서 운동을 내려놨을 때 유아차 런은 다시 스퍼트 라인에 서는 계기가 됐다.
“처음 유아차 런을 제안한 건 가수 션 씨였어요. 여러 마라톤 대회를 함께하면서 친분이 있었는데 출산 후 제가 운동을 안 하고 있으니 유아차 런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했어요. 10년 전쯤 그가 먼저 도전했는데 그때까지도 하는 이가 많지 않았거든요. 과연 사람들이 모일까 걱정한 것과 달리 첫 모임에만 서른 가족 가까이 참여했어요. 모두가 무척 행복해했고 마음이 맞는 분들과 곧장 캥거루크루를 결성했어요. 그리고 한 달 뒤 두 번째 행사를 개최했는데 첫 번째 모임보다 두 배가 넘는 일흔 가족이 모였죠.”
특별한 달리기를 위해선 몇 가지 준비물이 필요하다. 일반 유아차도 상관없지만 달리기 전용 유아차가 있다면 훨씬 수월하다. 달리기 전용 유아차는 무게가 가볍고 흔들림이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 아이를 위한 선글라스, 선크림, 간식, 물, 물티슈도 필수다. 계절에 따라 선풍기나 담요도 챙기면 좋다.
유아차 런에서 가장 힘든 점은 양팔을 자유롭게 쓸 수 없다는 것이다. 흔히 달리기할 때 팔꿈치를 굽혀 양팔을 젓는 ‘팔치기’가 불가능하다. 요령은 양손을 번갈아가며 한 손으로 미는 것이다. 혹여 아이가 보채거나 울 땐 먹을 것을 주거나 잠깐 달리기를 멈추고 다독여줘야 한다. 걷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유아차에서 내려주고 일정 구간 같이 걷는 방법도 있다. 달리는 유아차가 위험하진 않을까? 이러한 걱정과 달리 현장에선 유아차 안에서 잠이 든 아이도 여럿 보였다. 안 씨는 “생각보다 아이들도 러닝을 잘 즐기니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여유롭게 웃었다.
22개월 첫째, 뱃속 둘째와 5㎞ 완주
이날 안 씨는 딸 로하와 함께 5㎞를 약 40분 만에 완주했다. 뱃속에 9개월 된 둘째 아이까지 품은 채였다. 임부, 산부 모두 운동은 필요하고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22개월인 로하는 생후 8개월 때부터 유아차 런을 함께했다. 해외에선 자녀가 10개월 이후 유아차 런에 참여하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로하는 걸음마를 일찍 뗀 덕에 러닝까지 도전할 수 있었다. 서양인과는 체격과 발달속도에 차이가 있는 만큼 유아차 런은 12개월을 전후로 시작하는 게 가장 좋다는 게 안 씨의 설명이다.
로하는 러닝을 하고 온 날은 잠도 잘 자고 컨디션도 더 좋다고 한다. 무엇보다 러닝을 하면서 자신감도 커졌다. 이러한 모습을 지켜보며 캥거루크루 모임에선 피니시 라인을 통과한 아이들에게 메달을 걸어주고 있다. 달리기를 통해 성취감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다. 안 씨는 “러닝을 하며 ‘파이팅’을 하도 외치다 보니 로하는 평소에도 ‘할뚜이따(할수있다)!’ ‘자신이떠(자신있어)!’ 같은 말을 자주 한다. 달리기 하고 받은 메달을 할머니, 할아버지,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자랑하기 바쁘다”며 미소지었다.
유아차 런을 즐기는 아이들을 보면서 부모들도 혼자 달리던 때와는 다른 감정을 느낀다. 이전과는 러닝을 하는 목적도, 방법도 다르기 때문이다. 과거 고립·은둔청년이었다고 밝힌 안 씨는 자신을 구해준 달리기가 가족의 행복까지 더해주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20대 때 취업을 못해 집밖에 나가지 않던 시절이 있었어요. 사람들과 눈도 못 마주칠 정도로 대인기피증이 심했죠. 그때 다시 살아갈 힘을 준 게 러닝이었어요. 러닝을 하는 동안은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고 미웠던 사람도 용서가 되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까지 생기죠. 그런 순간을 내 모든 걸 줘도 아깝지 않을 아이와 함께하면 행복감이 두 배, 세 배로 더 크게 느껴져요.”
“유아차 런은 특정 시기만 느낄 수 있는 행복”
안 씨는 유아차 런을 넘어 ‘임산부 런’을 알리는 데도 힘쓰고 있다. 대체로 우리나라에선 임신 중에는 운동은 삼가야 한다는 의견이 일반적이지만 그는 임신 후기에도 가벼운 러닝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임신부가 정말 운동을 해도 괜찮을지, 적당한 운동량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기 위해 해외 논문까지 뒤져가며 공부했다. 결론은 임신 후기를 기준으로 일주일에 150분, 즉 매일 20분 정도는 러닝을 해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가 이처럼 운동에 열심인 이유는 엄마가 된 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면서다. 두 아이를 임신한 뒤 외부 활동량이 줄어들면서 또 다시 우울증이 찾아왔다. ‘내 인생은 이렇게 끝나는 건가’ 싶을 때마다 운동화 끈을 조였다. 덕분에 우울증을 이겨낸 것은 물론 출산 후 회복도 더 빨랐다. 엄마도 얼마든 달릴 수 있고 성장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은 임산부를 위한 러닝을 주제로 책도 쓰고 있다. 그는 엄마로서 당당하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와 함께 달리는 또 다른 이유라고 말했다.
“엄마가 됐다고 해서 아이만을 위해 살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사는 엄마,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엄마가 되고 싶어요. 아이는 엄마가 하는 모습을 보고 따라해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가장 좋은 엄마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캥거루크루의 목표는 유아차 런을 전국으로 확산하는 것이다. 특히 5월 3일 서울광장 일대에서 개최된 ‘2025 서울 유아차 런’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공식적으로 유아차 런이 열린 것은 처음이었다. 안 씨는 행사에 홍보대사로 참여했다. 1000개 팀을 모집하는데 1시간 반 만에 접수가 마감될 만큼 관심이 뜨거웠다. 서울시에서도 매년 행사 개최 뜻을 내비치는 등 긍정적인 반응이다.
“유아차 런은 육아를 하며 운동까지 할 수 있는 정말 좋은 문화예요. 아이들은 바깥놀이를 하니 즐겁고 부모는 여럿이 함께 달리며 수다를 떨다 보면 스트레스가 금방 풀려요. 그러고 나면 온전히 행복한 감정으로 육아를 할 수 있게 되고요. 지금 캥거루크루의 아이들이 조금 더 크면 키즈 런 대회도 만들어볼 생각이에요. 유아차 런, 키즈 런은 생애 특정 순간에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거든요. 집에서 하루 종일 아이와 실랑이하느라 지쳤다고요? 지금 당장 유아차를 끌고 나와 달려보세요!”
조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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