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스키를 아십니까? “우리 쌀로 만든 K-위스키로 세계 시장 도전”
작성자 정보
- 공감 작성
- 작성일
본문

스마트브루어리 오세용 대표
‘위스키 맛의 70% 이상은 오크통이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위스키의 대명사인 ‘스카치 위스키’의 경우 최소 3년 이상 오크통에서 숙성 과정을 거친다. 투명한 위스키 원액은 오크통 안에서 시간을 머금으며 숙성된다. 위스키의 향과 맛은 이 과정에서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와인 역시 오크통 숙성 과정을 거친다. 위스키나 와인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오크통 숙성 과정을 우리 술에 적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오크통 숙성 소주 즉, 전통적인 증류식 소주를 오크통에서 숙성한 한국식 프리미엄 증류주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오크통 숙성 소주는 전통 소주의 깊은 맛을 살리면서도 위스키처럼 묵직하고 풍부한 풍미가 특징이다. 최근에는 오크통 숙성 소주를 찾아 즐기는 마니아층도 늘고 있다.
스마트브루어리는 오크통 숙성 소주를 생산하는 대표적인 양조장이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마한오크 40(알코올 도수 40%)’은 보리로 만든 전통 위스키와 달리 쌀로 만든 증류 원액을 2년 가까이 오크통에 숙성해 쌀의 은은한 단맛과 오크의 진한 향을 느낄 수 있다. ‘쌀스키(쌀로 만든 위스키)’라고도 불리며 위스키 마니아들에게도 호평 받고 있다. 알코올 도수가 더 높은 ‘마한오크 46’, ‘마한오크 52’ 등은 출시되자마자 품절되기 바쁘다. ‘마한오크 46’은 ‘2024 우리쌀·우리술 케이(K)-라이스페스타’에서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오세용 스마트브루어리 대표는 “우리나라 주세법상 소주로 분류되지만 제작 방식으로 보면 엄연한 위스키”라며 “우리 쌀로 만든 한국의 위스키(Korean Rice Whiskey)를 세계에 알리는 게 목표”라고 했다.
오 대표는 술과는 거리가 먼 이력의 소유자다. 서울대학교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재료공학 석사,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IBM 본사에서 일하다 국내로 돌아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서 부사장까지 역임하며 15년간 일했다. 2009년 삼성전자 퇴직 후에는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초빙교수, SK하이닉스에서 제조·기술 부문 대표를 맡기도 했다. 화려한 이력을 뒤로하고 고향인 충북 청주에 홀로 양조장을 창업한 건 2019년이다.
국내를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을 이끌다 1인 양조장의 대표로 변신해 아직은 생소한 오크통 숙성 소주로 ‘K-위스키’의 새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오 대표를 만났다. 청주 미원면에 있는 스마트브루어리엔 숙성 과정이 한창인 오크통이 줄지어 있었다.
반도체 기업에서 일하던 분이 양조장을 만든 이유가 궁금하다.
술을 좋아했다. 자주 마시기도 했고. 공대 출신이다 보니 술을 마실 때면 ‘이 술은 어떻게 만드는 걸까’, ‘왜 이런 맛이 날까’ 생각하곤 했다. 술에 대한 궁금증이 늘 있었다. 업무적으로는 외국 기업인들을 만날 일이 많았다. 함께 술을 마시기도 하고 술을 선물하고 받는 일이 잦았다. 그때마다 주로 위스키나 와인을 함께 마시고 선물했다. 가끔은 우리 술을 외국인들에게 자랑하고 싶었지만 위스키나 와인에 익숙한 외국인들에게 막걸리나 소주 같은 술은 한계가 있었다. 외국인들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우리 술을 내가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양조 기술은 어떻게 익혔나?
2009년 경기대학교와 농업기술실용화재단이 공동 설립한 양조전문 교육기관인 ‘수수보리아카데미’에서 우리 술 만드는 법을 배웠다. 이론부터 실습까지 열심히 배워서 직접 만든 술을 시음해보니 재미있더라. 이후 시간 날 때마다 우리 쌀로 다양한 술을 만들었다. 궁금증이 생기면 전문가나 양조장을 찾아가 물어보고 연구했다. 책도 많이 봤다. 한국 책은 물론 일본이나 미국 등 해외의 양조기술서도 많이 찾아봤다. 필요한 책은 번역해서 볼 정도였다.
결국 양조장을 열었다.
2015년 은퇴 후 본격적으로 양조장 창업에 나섰다. 사실 연구부터 제조, 마케팅까지 사람을 모아서 하면 조금 쉬웠을 거다. 그러나 바닥부터 모든 속성을 파악해서 혼자 해보고 싶었다. 규모의 경제는 나중에 추구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양조장 창업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양조장은 2019년 4월 문을 열었다. 사실 어떤 술을 어떻게 만드느냐로 오래 고민했다. 결론은 증류주였다. 발효주에 비해 유통기한 등의 제약이 적고 세계 시장을 노릴 수 있겠다는 계산이었다. 쌀로 만든 증류식 소주를 시작으로 위스키처럼 오크통에 숙성한 K-위스키를 비롯해 보드카, 진 등을 만들어 세계로 진출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시장의 반응은 어땠나?
처음에는 큰 반응이 없었다. 시음회를 열면서 시장의 반응도 보고 피드백을 받아서 연구를 거듭했다. 그러다 2022년 한 매체가 연 주류품평대회에서 쌀 소주 2종과 쌀로 만든 보드카가 대상을 탔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관심도 받고 판매량도 늘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전통주에 대한 관심이 커지기도 했고 취향에 따라 다양한 술을 즐기는 트렌드도 한몫했다.
오크통에 숙성한 제품이 특히 인기다.
쌀로 만든 증류 원액을 오크통에 넣어 2년 가까이 숙성 과정을 거친다. 그러면 쌀의 단맛과 오크통에서 나온 진한 풍미가 어우러져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위스키처럼 진한 호박색이 나는 것도 특징이다. 쌀로 만든 술에서 이런 맛과 향이 난다는 것에 놀라는 이들이 많다. K-위스키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해주는 이들도 있다. 그런 반응들을 보면 뿌듯하고 더 열심히 술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크통에 따라 술 맛도 달라지나?
위스키를 숙성할 때는 주로 와인이나 다른 위스키를 숙성할 때 쓰던 오크통을 사용하곤 한다. 오크통에 밴 향과 풍미를 위스키 숙성에 활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포르투갈에서 수입한 새 오크통을 사용해서 특유의 맛과 향을 살렸다. 최근에는 충북 영동에서 생산하는 오크통으로 우리만의 맛과 향을 잡아가고 있다.
진이나 보드카도 생산하고 있다.
진이나 보드카는 세계적으로 많이 즐기는 증류주다. 우리 쌀로 만든 진, 보드카도 세계 시장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특히 보드카는 무색(無色)·무미(無味)·무취(無臭)가 특징인데 쌀로 만든 보드카의 향과 맛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쌀 위스키와 함께 또 다른 매력으로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가장 중요한 건 맛과 품질이다.
증류식 소주는 원료를 발효한 뒤 증류해 만든다. 고두밥(증기로 찐 밥)을 물, 누룩과 함께 발효시켜 술덧을 만들고 이를 증류하는 식이다. 공정이 복잡한 데다 누룩은 조건에 따라 가변성이 심해 생산량이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공정은 단순화하고 품질의 변화를 없애는 데 주력하고 있다. 고두밥 대신 튀긴 쌀가루를 쓰고 누룩 대신 입국(한 종류의 균만을 쌀에 접종해 배양한 것)을 사용해 가변성을 최대한 줄이는 데 집중했다.
반도체 기업을 이끌었던 경험이 양조장 운영에도 도움이 되나?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평생 시간을 바치며 치열하게 일했던 시간과 경험이 도움이 된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쳐도 걱정되지 않는다. 돌파력이 생겼다고나 할까. 반드시 길은 보인다.
그래도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지 않나?
쌀이 남아돈다지만 양조용으로 구입하는 쌀값은 싸지 않다. 양조자 대부분이 선호하는 햅쌀은 특히 비싸다. 가격이 싼 정부미 혜택을 소규모 양조장이 누리긴 쉽지 않다. 법적인 한계는 더 많다. 우리 주세법상 위스키라고 명명하려면 맥아가 들어가야 한다. 증류한 소주를 오크통에서 숙성한 술은 소주로 분류된다. 제조 방식이 아무리 위스키와 같아도 위스키라고 할 수 없으니 한계가 있다. 막걸리에 비해 높은 세율도 걱정거리다. 전통주의 정의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만든 술은 지역 특산주나 민속주 같은 전통주와는 거리가 있다. 우리 술이 더 다양해지고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통해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선 새로운 범주, 규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이를 위해 소규모 양조장의 의견을 듣고 개선점을 찾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
세계 시장을 공략하려면 할 일이 많겠다.
지난해 글로벌 기업에 다니던 딸을 영입했다. 내가 양조 과정을 책임진다면 딸은 마케팅과 유통을 맡고 있다. 우리의 목표는 오로지 ‘잘 만들어진 술’이다. 보리로 만든 위스키와 비교해 우리 쌀로 만든 K-위스키도 훌륭하다는 걸 세계 시장에서 평가받고 싶다.
강정미 기자
[자료제공 :

관련자료
-
링크
-
이전
-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