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한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6·25 전사자 발굴 유해 11위 영면에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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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희생한 호국영령 11위(位)가 비로소 깊은 영면에 들었다. 육군은 6월 16~18일 국립영천호국원과 국립대전현충원, 국립서울현충원에서 6·25전쟁 전사자 11명의 유해를 합동 안장하는 행사를 엄수했다고 밝혔다.
오두용 하사(상병·이하 현 계급)와 김영기 하사, 주영진 일병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김익장 이등중사(병장)와 이찬규 이등중사, 정인학 일등중사(하사), 김석연 일병, 강성순 하사, 함상섭 하사, 조영호 일병의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박용수 일병의 유해는 2024년 동생 박광수(베트남 참전용사) 씨가 영면에 든 국립영천호국원에 안장됐다.
고인들의 유해는 6·25전쟁으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전후방 각지에서 2000~2024년 사이 발굴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유전자 시료 채취에 참여한 유가족 DNA 정보를 바탕으로 이들의 신원을 최종 확인했다.
합동 안장식은 국기 및 고인에 대한 경례, 조사(弔辭), 종교의식, 헌화 및 분향, 조총 및 묵념, 영현 봉송 순으로 진행됐다. 국립영천호국원에서 열린 합동 안장식은 정유수(소장) 제50보병사단장 주관으로 치러졌다. 6월 18일에는 국립대전현충원(고창준 육군참모총장 직무대리 주관), 국립서울현충원(김호복 수도방위사령관 직무대리 주관)에서 합동 안장식이 열렸다. 각 합동 안장식에는 유가족을 비롯해 국방부와 보훈 관계자, 장병 등이 참석했다.
1931년생인 오두용 하사는 1951년 8월 3일 적근산 734고지 전투에서 대규모 중공군에 맞서다 전사했다. 김영기 하사는 같은 해 태어나 1953년 7월 금성지구 전투에서 숨을 거뒀다. 정전을 10여 일 앞둔 시점이었다. 1932년 태어난 주영진 일병은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한 지 6일 만에 1950년 8월 기계·안강 전투에서 전사했다.
1930년생인 김익장 이등중사는 6·25전쟁이 일어나자 자원입대했다. 1사단 소속으로 후방지역의 잔적 소탕과 38도선 진격작전을 수행했고 1950년 스무 살의 나이로 전사했다. 이찬규 이등중사는 1923년생으로 1951년 10월 백석산 전투에서 숨을 거뒀다. 이 이등중사의 아내는 평생 남편을 기다리다 2019년 91세 나이로 별세했다.
정인학 일등중사(1932년생), 함상섭 하사(1925년생), 조영호 일병(1929년생)은 1953년 7월 적근산·삼현지구 전투에서 교전을 벌이다 전사했다. 적근산·삼현지구 전투는 국군 제7·11사단이 강원 철원군 원남면 주파리 일대에서 중공군 4개 사단을 격퇴해 전선을 안정시킨 공방전이다. 조 일병의 가족은 비극적인 근현대사를 압축하고 있다. 둘째 형인 조을호 씨가 6·25전쟁에 참전했으며 넷째 동생인 조임호 씨는 의용군으로 참전한 뒤 복귀했으나 무장공비의 피습으로 생을 마감했다. 큰형인 조균호 씨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다.
김석연 일병은 1922년생으로 1950년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했다. 1931년생인 강성순 하사는 생후 11개월 아들을 뒤로한 채 6·25전쟁 발생 당일 운천·포천·의정부 전투에서 전사했다. 박용수 일병은 1928년생으로 양양·강릉 전투에서 북한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
고창준 육군참모총장 직무대리는 조사에서 “육군 전 장병은 선배님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으로 지켜온 대한민국이 더욱 빛날 수 있도록 국군의 사명을 완수하는데 진력하겠다”며 “아직도 찾지 못한 또 다른 호국영웅의 유해를 마지막 한 분까지 가족의 품으로 모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고유선 기자
‘끝까지 찾아야 할 121723 태극기’ 캠페인
산야에 묻힌 호국영웅들 끝까지 찾고 기억
호국영령의 희생과 헌신을 끝까지 기억하고 아직까지도 수습되지 못한 채 이름 모를 산야에 홀로 남겨진 영웅들을 찾는 국가의 노력은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국가보훈부는 2025년 6·25전쟁 75주년을 맞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국군 전사자 12만 1723명(2024년 말 기준)을 기억하는 ‘끝까지 찾아야 할 121723 태극기’ 캠페인을 6월 초부터 진행 중이다. 1번부터 12만 1723번까지의 고유번호를 가진 태극기 배지를 만들어 동참을 희망하는 국민에게 배포하고 있다. 국산 자주포 K9 제작 과정에서 나온 폐철을 활용해 만든 배지는 미수습 전사자들의 귀환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참전용사 유골함에 태극기를 씌운 형태로 디자인됐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2000년부터 6·25전쟁 전사들의 유해를 찾아 가족의 품에 전달하는 유해발굴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다. 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으나 아직까지 빛을 보지 못하고 땅 속에 묻혀 있는 호국영웅들을 찾는 작업이다. 지금까지 발굴한 국군 전사자는 총 1만여 구다. 이중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총 256위다.
국유단은 전사자 신원 확인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 채취 활동도 진행하고 있다. 활동을 시작한 2014년부터 2024년까지 10년간 1만 1966명의 유전자 시료를 확보했다. 이는 현재까지 확보한 유전자 시료 7만 2573명의 17%에 해당한다. 이를 통해 74명 호국영웅의 신원을 확인했다.
이근원 국유단장은 “그동안 발굴된 유해에 비해 신원이 확인된 호국영웅이 많지 않다”며 “유가족 유전자 시료 확보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유전자 시료 채취는 6·25전쟁 전사자의 친·외가를 포함해 8촌까지 참여가 가능하다. 제공한 유전자 정보를 통해 전사자 신원이 확인될 경우 1000만 원의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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